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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ove Mar 19. 2016

슬립온 슈즈와 봄의 자유

Slip on the "Spring"

3월 19일 토요일, 외출을 준비하려고 창문을 열어 날씨를 확인했다. 누가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처럼 맑은 하늘에 너무나 식상한 줄 알면서도 마침내 내뱉게 되는 그 말. 


"이제 정말 봄이구나."


그리고 나는 겨울 내내 서랍 안 쪽에 묵혀 있던 덧신 양말을 꺼내어 신었다. 그리고 너무나 좋아하는 "슬립온 슈즈"를 신고 집을 나섰다. "봄" 하면 개나리 진달래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지만, 나는 오늘 슬립온 슈즈에 몸을 싣고 마음껏 봄을 환영했다. 덧신 양말을 신을 때 가려지지 않는 발의 3/4 정도가 되는 살갗, 그리고 발 끝으로 느껴지는 슬립 온 슈즈의 편안함이 더 이상 추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로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슬립온이란 발이 미끄러져 들어간다는 뜻으로 신발을 편하게 신고 벗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며, 묶는 끈이나 죔쇠가 달려 있지 않은 신을 수 있는 모든 신발의 총칭이다. 2014년 봄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애용하는 패션 일상 아이템이 되었다. 실제로 굳이 비싼 명품을 사지 않아도 슬립온 슈즈는 놀랍도록 발이 편하고 가볍게 걸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끈과 죔쇠로부터의 해방. 신발과 발을 굳이 다른 매개체로 밀착시키려 하지 않아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구두처럼 남 녀의 분명한 성별 구분도, 운동화처럼 그 기능이 엄격히 구별되어 있지도 않다. 슬립온의 목적은 오직 편안함과 자유로운 일상이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 뿐이다. 



봄만큼 '자유'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계절이 또 있을까. 그 옛날 "프라하의 봄"도 그랬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이 계절에 모든 자연이 겨울의 은둔을 마치고 생명을 태동시키는 자유를 허락받는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시즌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며, 사랑의 시작이 은유되기 시작한다. 남녀가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 무슨 무슨 "데이"가 모두 이 계절에 몰려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주며 고백하는 것도 식상하고 낯간지럽지만 봄에 하는 건 괜찮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 남자가 슬립온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면 좋겠다. 신발장에서 동면하던 슬립온을 신고, 한강 변에서 너무나 따스하게 봄스러운 날씨를 만끽하다가 나는 그만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Slip on the "Spring"  


슬립온 슈즈처럼, 나는 이미 화사해져 버린 "봄"에 미끄러져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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