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비_장국영을 추모하며
2003년 4월 1일은 내가 대학생이 된지 정확히 한 달째가 되는 날이었다. 치열한 입시의 터널을 지나 도달한 서울의 어느 대학 캠퍼스에서 나는 마침내 획득한 대학생으로서의 자격을 누리며, 한편으로는 그토록 상상해왔던 수많은 대학생활의 낭만들의 허무한 부재를 느끼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달이 넘어간 4월의 첫째 날, 모든 뉴스에서 "만우절의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그의 죽음을 보도했다.
"만우절의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은"
그러나 너무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위안을 주는 듯한 수식어로 나는 그가 정말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났음을 실감하였다.
일 년 중 단 하루 거짓말이 용서되는 4월 1일의 만우절.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거짓말처럼 그렇게 장국영은 우리의 곁을 떠났다.
홍콩이 낳은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 중 하나인 왕가위의 페르소나를 묻는다면 그 누구의 이견도 없이 바로 "양조위"가 그 답이다. 그러나 사실 왕가위의 영화에서 "양조위"는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의 남은 인생을 뒤 따른 것이다. 사랑받으나 그 사랑을 다시 주지 못하는 상처 입은 청춘의 무모한 감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 사랑을 기억하는 아비. 방황하고 거칠지만 단 하루도 사랑이 없었던 적이 없는 나날들. 아비정전은 왕가위의 수많은 걸작 들 중에서도 오직 하나뿐인 작품이다. 마치 우리 일생에 청춘이라 부르는 나날들이 단 한번뿐인 것처럼.
그 단 한번뿐인 청춘의 나날들에 대한 왕가위의 나르시시즘과 무한한 애정이 아비가 속옷 바람으로 거울 앞에서 맘보 춤을 추는 명장면을 낳는다. 나의 청춘 역시 그토록 거친 나날들 (Days of being Wild)이 될 것이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2003년 4월 1일, 스무 살의 나는 그렇게 그의 죽음을 맞았고, 그 날 저녁 영화 "아비정전"에서 그가 맘보춤을 추는 그 장면 만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보고 또 보았다.
스무 살의 만우절이었던 그 날, 그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버렸다는 것.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 나의 단 한 번뿐인 거칠고 푸른 청춘의 나날들이 지나와 버렸다는 것.
나는 그 모든 것을 오늘 단 하루 만은 그저 "만우절의 거짓말"이라고 믿으며 잠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