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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연희 Sep 11. 2022

고양이를 향한 짝사랑

정말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펫스마트에서 처음 봤을 때, 네가 그렇게 못된 아이인 줄 미처 몰랐어. 

자유로운 영혼인 듯 좁은 전시 칸막이 사이를 여유 있게 구르고 걷던 너. 잘 놀면 성격도 좋은 줄 알았지.

매일 함께 있었던 것처럼 익숙한 너의 얼굴은 알고 보니 어딘가에서 다운로드한 핸드폰 배경화면의 그 녀석이랑 닮았서였어. 몇 년씩이나 매일 보던 사진인데 왜 몰랐는지. 너여야만 했겠지. 


태어난 지 9주라고 했는데 어른 팔뚝 길이도 안 되는 녀석이 쓰다듬기만 해도 어찌나 할퀴고 물어대던지. 길고양이 생활을 해서 세상 풍파에 시달린 줄 알고 마음이 미어져서 내 팔다리 바쳐 할큄 당해주고 물려준 거 넌 모르겠지. 칠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건 너의 성격이지 길고양이 생활이랑 아무 상관없다는 거였다. 


아니, 뭐, 그래. 안 만지면 일부러 와서 물지는 않지. 하지만 그게 말이 되니? 같이 사는 응? 가족인데, 아침에 일어나면 허그, 자기 전에 허그, 외출 나갔다 오면 뽀뽀 이 정도는 기본 아냐? 그리고 또, 괜히 기분 좋고 요새 많이 못 놀아준 것 같을 때 나비 동요도 3절까지 손 맞잡고 부르고 배 마사지도 해주고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그때마다 꼭 그렇게 쉬악질을 해대고 3단 점프로 어깨까지 올라와서 퍽퍽 쌍팔 펀치를 날리고 그래야 하냐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밥 달라고 할 때 요사스러운 건 또 어떻고. 처음 왔을 때부터 울지도 않고 어쩌다 울어도 뱃속 깊은데서부터 나오다 만 것 같은 소리밖에 못 내길래 그게 또 안쓰러워서, 뭐 달라고 할 때마다 넙죽넙죽 얼마나 잘해줬니. 밥 달라고 할 때만 슈렉 고양이 뺨치는 표정과 온몸 코스프레, 심지어 아빠가 줄 때는 발 사이로 오가며 인사까지 한다며. 밥 다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숙생 모드로 돌아가고. 흥, 칫, 뽕이다.


사랑한다.


저녁 시간, 나와 남편이 1층 거실 각자의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으면 넌 우리 중간쯤 마룻바닥에 길게 누워서 그루밍을 하지. 한쪽 어깨에 무게를 실어 고개를 살짝 들고 반대쪽 팔부터 시작해서 꼬리까지 주욱 훑고 내려가는 몸단장. 자태가 귀여워서 "나비야" 곱게 불러보지만 다 들었으면서도 눈도 꿈쩍하지 않는 너. 너는 정말 못됐어.  


한 생명을 책임지지 못할 것 같았다. 그게 두려워서 내 가정을 꾸리고 동물 좋아하는 아이들과 산 지 오래되었어도 반려동물 생각은 감히 못해 봤어. 

아롱이, 장남이, 세리, 그 밖에 이름도 지어주지 못했던 많은 고양이, 강아지들. 함께 컸지만 부모님 손에 어디론가 버려지고 팔리고, 그렇게 책임지지 못한 채로 내 가솜속에 멍이 되어 남아버린.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거운 일이니까. 내 부모님 일이라도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거두고 정성스럽게 키우신 그동안만의 진심으로도 하나님은 다 괜찮다고 하실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집 나간 아롱이를 길에서 마주쳤던 그 순간, 흰털에 검댕이가 묻어 행색이 말이 아닌 그 아이를, 그래도 나를 알아보고 일행을 떠나 내게로 달려왔던 그 순간, 몇 번 쓰다듬지도 못했는데 짧은 눈길 후에 돌아간 그와, 비 오는 어느 날 등굣길에 전봇대 밑에 피 흘리고 축 늘어져 있던 그 아이를 잊을 수 없기에 너를 만나기까지 내게는 제법 긴 터널이 있었던 셈이다. 


사랑한다.


분명히 너도 어느 까다로운 집안 출신이 아닌 아메리칸 숏헤어에 캘리코 잡종인데 어찌 그리 몸이 부실한 지, 철 따라 알레르기 돋아 온 몸에 부스럼 생기면 하루 종일 몸을 긁고 털어서 온 집안에 피딱지와 털이 나부끼고, 소화능력이 부실해서 아무 이유도 없이 헤어볼은 헤어볼대로, 먹은 음식은 또 그대로 토해내는 일이 너무 많았지. 병원도 많이 다녔지만 그때마다 원인도 모르고 너는 너대로 고생해서 이제는 식사량 조절에, 소화를 돕는 약, 알레르기 유발하지 않는 그레인 프리 사료로도 모잘라 그때 그때마다 심혈을 기울인 리서치로 매번 위기를 벗어나는 너. 그리고 나. 


나는 고양이가 헤어볼을 토하는 동물이며, 생선 맛을 싫어할 수도 있으며 온갖 시중의 토이는 다 싫어하고 스틱형으로 생긴 간식도 다 마다할 수도 있다는 것을 너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온몸의 털이 부스럼 때문에 뭉태기로 빠지고, 먹기만 하면 토할 때마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로 한 것을 되새긴다. 새로 지어 이사한 집의 2층 카펫 바닥에 토한 것을 샤우트 카펫 스테인 리무버 스프레이와 키친타월 빼빠질로 씨름할 때마다, 아무리 해도 누르스름한 얼룩이 없어지지 않아 어느 날 아이들 방 창문에서 햇빛이 길게 들어오면 여기저기 무늬가 생겨버린 카펫 바닥을 볼 때마다, 그리고 생전 동물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남편의 한숨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책임의 무게를 돌아본다.


사랑한다.


벌써 7년 동안이나 거의 매일 내가 '손' 하면 너의 그 포동한 손바닥을 올려놔 주기를 설명도 하고 시범도 보이고 졸라도 보고 으름짱도 놓아봤지만 때로는 매우 따분한 눈빛으로, 대게는 '한 번만 더하면 화낸다'는 눈빛으로 일관하는 너.  


어쩌다 폼나는 가구점에 들러서 동공이 흔들릴 만큼 마음에 쏙 드는 가죽소파를 만나고 남편이랑 흥분해서 앉았다 일어났다 두 손을 맞잡다가도 우리 마음속에 너의 발톱에 난도질당한 우리 집 이십 년 묵은 소파가 떠올라서 서로 말없이 가게 문을 열고 나오기를 몇 번 했는지 너는 모른다.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고 우리 두 아이들과 남편은 너를 사랑한다.

대학에 간 너의 오빠와 언니는 수시로 너의 사진을 요구하며 너를 보고 싶다고 하지. 너도, 집도 그립다는 뜻이란다. 자기 방 청소는 게을리하면서도 너의 토사물과 똥과 요란하게 흩어놓은 리터 가루들을 빗자루질하는 일까지 둘이 묵묵히 해 온 것 너도 잘 알지? 그들에게는 그것이 사랑이다.   

 

너의 똥을 치울 때, 너의 몸을 씻길 때 나는 아롱이와 장남이와 세리를 떠올린다. 미처 나와 내 부모님이 준비되지 않아 책임지지 못했던 내 어린 시절의 작은 생명들 말이야. 그리고 기도한다. 그때는 그렇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게 해 달라고, 우리 사랑에 책임을 지게 해달라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시라고. 2층에 마루를 깔게 해 주시고 네가 아플 때마다 기적적으로 고비를 넘길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리라 믿는다.   


사랑한다, 나비야. 

우리 오래오래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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