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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연희 Jul 07. 2022

치과에 온 굿보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점심을 먹고 들어오니 오후 첫 환자가 웨이팅 룸에서 기다리고 있다. 미리 확인해 둔대로 여섯 살 난 사내아이가 슈퍼맨 티셔츠를 입고서 엄마 손에 붙들려 앉아 있다. 지나가는 유니폼 입은 나를 힐끔 올려다보는 시선에서 똘망한 뭔가가 느껴진다. 후훗, 뭘 좀 아는 눈빛인데?


아이들은 연령대, 또는 타고난 성격에 따라 치과 환경에서의 행동 양상이 천차만별이다. 하긴 어른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 무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따라온,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심성을 가진 아이들이 백점. 위험을 감지했는데 어른들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으면 빵점이다. 치과 치료의 성공만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말이다. 빵점은 치료 못 받고 집에 가야 한다. 만약에 일반 첵업이 아니라 충치 치료였는데 실패하면 소아전문 치과에 가서 마취 가스나 수면마취를 동원해야 치료할 수 있다.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에게도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어스틴? 자, 들어오실까요?"


그렇게 함박웃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살살 달래서 진료실로 안내한다. 엄마와 함께 복도를 걸어오는 발걸음이 제법 가볍고 미소를 잃지 않는 모양새를 보니 오늘 아주 쉽게 풀릴(?) 것 같다. 밤톨처럼 큰 눈이 귀엽기 그지없다. 여섯 살이면 아직 어린데도 이렇게 의젓하다니. 오후 일과의 시작이 발랄하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어스틴이 의자에 앉으려다가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본다.

오, 이런 일은 의외인데? 어디 들어나 보자. 

"그럼요, 물어보세요"

"오늘 저 아픈 거 하나요?"

아, 어쩜 이렇게 또박또박 예쁘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유치원 선생님이라면 반할 것 같다. 

"아니에요~ 하나투 안 아파요, 우리 어스틴 걱정 말고 어서 의자에 누워서 젤 위까지 주욱 올라오세요~"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에 가려서 나의 울트라 캡숑 돈워리 미소를 보여주기란 쉽지 않았지만 드러난 눈을 통해 오늘 너를 최대한 안 아프게 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힘껏 실어 보낸다. 실제로 여섯 살 받이 아이들이 받게 되는 클리닝이라는 것이 아플만한 일이 전혀 없다. 다만 전동으로 돌아가는 팔러셔의 소리가 조금 무섭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정도? 


작은 몸을 덴탈 체어에 앉혀 놓고 파란 냅킨을 회색 슈퍼맨 티셔츠 위에 둘러준 다음 직각으로 세워졌던 의자를 천천히 눕혔다. 팔러셔의 전동 스위치는 바닥에서 발 페달을 밟아 조정하는데 일종의 미세한 돌가루가 섞인 페이스트를 적당히 떠서 진행한다. 포도맛이 나는 페이스트는 알약 캡슐 같은 일회용 용기에 담겨 있는데 클리닝 하는 사람에 따라 왼손에 쥐고 할 수도 환자의 냅킨 위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떠서 쓸 수도 있다. 


이것저것 세팅한 후에 몸을 돌려 어스틴의 입속에 팔러셔 핸드피스를 넣어 왼쪽 아래부터 문지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치아를 막 마치자마자 어스틴이 본인의 가슴 위에 놓인 페이스트 용기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이게 뭐예요? 이게 뭐예요?" 음성이 가파르고 울음이 섞여 나온다. 

"응? 아, 이건 아까 설명한 페이스트야, 포도맛 나지? 이게 있어야 어스틴 이빨을 깨끗하게 닦아줄 수 있어요" 

말을 마치고서 다음 이빨에 핸드피스를 갖다 대는 순간 대성통곡이 터져 나온다. 

"노! 노! 노! 싫어요! 안 할 거야! 노! 노!"

어스틴은 중간 없이 꼭짓점 데시벨로 소리쳐 울면서 양손 헹가레로 입을 막는다. 진료실 한쪽에 앉아서 어스틴의 치료를 바라보고 있던 엄마 역시 당황해서 뛰쳐 와 영어가 아닌 아랍어(그들의 모국어)로 진정시켜 보지만 어스틴은 막무가내로 보호용 선글라스 밑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완강하게 저항한다. 엄마가 움켜쥔 손목이며 얼굴이 무섭게 떨리며 소리를 질러대니 삽시간에 치과는 전쟁통으로 돌변했다.  


아니, 어느 부분에서 무서워진 걸까. 겨우 이빨 두 개만에 이 모든 것이 공포로 둔갑한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처음부터 폭풍을 가장한 고요였을 뿐.


공포감이 극에 달한 아이들 중 일부는 정반대로 나이스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과장스럽게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계 상황이 올 때까지 페이크 모드인 것이다. 남들과 다르게 의료진들에게 이것저것 성숙하고 친절하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현재 상황을 다 알고 있고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공포를 저 깊숙이 숨기고 나는 오늘 굿 보이니까 제발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들리지 않는 아우성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공포를 느끼고 반응하는 정도는 다 다를 수 있다. 우리 모두 다르게 생긴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피부 색깔이나 입술의 크기나 눈동자의 색깔처럼 우리가 날 때부터 받은 외면적 번호표와는 조금 많이 다르다. 공포심을 내면에 받아들이고 세상에 내어 놓는 반응의 기작에는 참으로 많은 '그 사람의 내면'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행동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깊이와 진행을 그대로 드러내는 전자와 숨기는 후자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주변 사람들이 이미 그 감정을 인지하게 되므로 해결 방법을 함께 모색하거나 후처리를 도울 수가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혼자서 일정 부분의 진행을 감당해야 하고 주변 또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감정적 고립이 고조되고 후처리가 곤란해질 수 있다. 사회적으로 원만한 인간상을 얘기할 때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는 주변과 감정을 나누며 소통하는 것을 꼽는 것을 고려한다면 후자의 행동은 삶의 어떤 단면에서든 본인이나 주변이 힘들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위장했는가로 그 양상의 진행 정도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칫솔과 치약, 색색깔 치실이 담겨 있는 덴탈 키트와 병원에 비치된 큰 토이박스에서 직접 고른 요술 공을 양손에 쥐고 복도를 나가는 어스틴은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가면이 벗겨지고 나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울다가 치료를 못 받은 아이들은 비록 눈물범벅으로 치과를 나가도 나를 돌아보고 애써 배시시 웃곤 한다. 나의 정성과 달래던 말들, 웃는 얼굴을 기억하며 미안한 마음, 어쩔 수 없는 공포감이 뒤섞여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작고 얇은 행동의 레이어들이 수도 없이 쌓여서 인생 어떤 순간의 결정지들을 채우고, 결국 완벽한 인간이 없다고 여기는 것처럼 저마다 흠을 가지고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성인들에게 '정신적 정상'의 잣대를 들이대면 피해 갈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같은 생각인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저 공포감이 유발한 단발 해프닝으로 보는 것이다. 부모의 기대감과 나의 공포감 사이에서 타협을 보지 못하고 졸지에 벌어진 해프닝. 그럴 수 있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탁해졌을 때쯤 나의 목소리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향한다. 어스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다.


"어스틴, 괜찮아. 클리닝 까짓 거 안 해도 돼. 정말. 근데 다음부터는 있지, 무서우면 무섭다고 얘기해도 돼. 엄마한테 해도 되고 치과 언니들한테 해도 되고. 그렇다고 할 일을 안 하게 되는 건 아냐, 그렇지만 적어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러고 나면 우린 더욱 친해질 수 있어. 그럼 무서운 일도 조금씩 달라진단다. 그리고, 무서운 거 말고도 슬프거나 힘들어도 다 얘기해. 왜냐면 어스틴은 혼자가 아니야. 이 세상은 다 같이 사는 곳이야. 그걸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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