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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찬란 Feb 12. 2018

두 개의 방

  나에게는 순간의 방과 기억의 방이라는 두 개의 방이 있다. 나는 순간의 방에서, 현재를 보낸다. 현재의 일상을 지내기 위해 손가락은 바쁘게 움직이고, 나에게는 발가락 사이에 맺힌 물기를 닦을 시간도 없다. 그 방의 공기는 빠르게 움직이고 햇살에 부서지는 먼지마저 소낙비처럼 잽싸다. 쏜 화살 같은, 순간의 방을 지나면 일시적으로 모든 것이 정지하는, 기억의 방이 있다. 기억의 방에서 모든 것은, 오도카니 움직임을 멈춘다. 어둡고 컴컴한 방은 가진 모든 습기를 내뿜고는 차갑게 멈춘다. 모든 것은 움직이지 않고 먼지조차 천천히 숨을 쉬는, 그것은 나의 기억의 방이다.


  조그만 기억의 방에 누우면 지나간 것들이 떠오른다. 숨 쉬듯 꿈꾸었던 시절의, 자잘한 기억이 뽕뽕 솟아난다. 스치듯 지나갔던 사람도, 폭풍 같았던 사람도, 그리고 그때 그 사람도 여기저기에서 돋아난다. 사람은 기억을 더듬고 추억을 그리워하며 사는 존재라지만, 내 기억의 방은 더듬기엔 너무나 많은 파도가 너울댄다.


  기억의 방은 순간의 나에게 카세트를 쥐어주며, 라디오 앞에서 대기하다가 좋아하는 노래를 타이밍에 맞추어 녹음하던 그 순간으로, 자꾸 끌어당긴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꿈꾸었던 것과 포기해야 했던 것, 물기가 어린 이야기들이 다시 내 머릿속 카세트테이프 속에 저장된다. 기억의 방은 지금마저도 바쁘게 스쳐가는 순간 살이인 나에게, 문득, 잊지 말라며 손에 기억과 추억을 쥐어준다.


 나는 순간의 방에서 새로 올 기억의 숲을, 씩씩하게 나무를 꾹꾹 밟아가며 심고 또 심는다. 언젠가는 이 순간의 방도 기억의 방이 될 것이다.


 지난날, 이 기억의 방이 그 순간의 방이었듯이.



- 정찬란 남김

- 추천 음악. 정승환-눈사람

https://youtu.be/8DtJe6ZFy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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