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 Yundi Li
피아노 : Yundi Li
https://youtu.be/T3ILPWUgnaw?si=8GOqPjpRE5rIGORJ
2001년 겨울학기, 2학년 설계 스튜디오에는 한기가 돌았지만 성민의 자리는 뜨거운 열정이 넘쳤다. 성민은 거대한 건축 모형의 구조를 세우고 있었고, 이현은 그 옆에서 계단을 만들기 위해 베스우드(Basswood) 조각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고 있었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눈이 충혈된 성민이 손을 멈추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베스우드(Basswood) : 모형 재료로 쓰이는 고급 나무 합판
"선배, 힘들죠? 이거 한 입 먹어봐요."
이현이 내민 건 반쯤 녹은 초콜릿이었다. 성민이 초콜릿을 입에 물자, 이현의 손가락 끝에 묻어 있던 시큰한 본드 냄새와 달콤한 초콜릿 향이 코끝을 스쳤다. 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이현을 오랫동안 쳐다봤고, 이현은 얼굴에 미소를 보였다.
“시간이 많이 늦었다, 현아. 지금 만들고 있고 계단만 완성되면 바로 집에 들어가자.”
“네”
둘은 곧 자리를 정리하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설계 스튜디오를 떠났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이현이 아쉬운 듯 말을 꺼낸다.
“선배, 저 배고파요.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안돼. 지금 너무 늦었어."
"......"
"그러나, 오늘 내가 이현이에게 일을 많이 시켰으니... 간단히 뭐 먹고 들어갈까?”
둘은 재빨리 학교 앞에 있는 우동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간이 늦었지만 성민도, 이현도 서로 헤어지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푸짐한 양의 덴푸라 우동 나베를 하나 시키고 따뜻한 사케 한 병도 주문했다. 시간이 지나도 나베의 양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빈 사케 병만 테이블 위를 점점 차지할 따름이었다.
사케 기운이 올라오자 이현의 뺨은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젓가락으로 나베 속의 불어터진 우동 가닥을 만지작거리며 성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선배, 아까 설계실에서 나 쳐다볼 때 무슨 생각 했어요?”
성민은 잔에 남은 사케를 들이켜고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아 사실, 이현이 입에 초콜릿이 묻어서 그걸 재미있게 쳐다보고 있었어.”
“뭐라고요? 너무해요.”
성민은 나베 위로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하얀 증기를 바라보며 혼자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사실 네가 너무 예뻤어. 너무 예뻐서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어. 만들던 모형도 더는 못 만들겠더라...')
......
"현아, 시간이 많이 늦었다. 이제 집에 들어가자. 오늘은 많이 늦었으니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게"
둘은 아쉬운 듯 우동집을 빠져나왔다.
'왜 내 귀에는 클래식이 안 들리는 걸까'
이지협 지음 / 연암사
[EBS 라디오 '정경의 클래식 클래식'] 클래식 살롱 - 1 I 2025년 9월 18일 방송
https://youtu.be/y0N2dRmSOg4?si=RlcPuPhkWtypuCmU
[EBS 라디오 '정경의 클래식 클래식'] 클래식 살롱 - 2 I 2025년 9월 25일 방송
https://youtu.be/CE7ydU3_YNo?si=_CVThWzHzK14hdUG
[EBS 라디오 '정경의 클래식 클래식'] 클래식 살롱 - 3 I 2025년 10월 02일 방송
https://youtu.be/_AkS2A_SQcQ?si=lSNgz9bjQldODZ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