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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혜령 변호사 Sep 03. 2021

삶은 동사(動詞)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 한 구절을 좇아 가을을 맞다

유달리 올해는 날씨의 변화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에어컨 없이 어찌 살까 하다가, 창문 연 채 수박과 얼음물로도 더위가 가셔지다, 인견 홑이불에 닿은 살갗에 찬 기운이 스미면서 8월을 지났다. 오늘, 푸른 하늘이 선명하고 대기와 바람은 더없이 쾌청한 9월의 셋째 날이다. 


적당히 달궈진 햇빛에 모든 사물이 제 선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창 밖을 보면서 되뇌어본다. 

올 가을에는 많이 보고 움직이면서 이 계절을 제대로 느끼리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지. 


작가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에서 이런 문장을 남겼다.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이상 강의 끝."

-김연수, <소설가의 일>, 217-218쪽



소설 작법을 산문으로 풀어낸 이 책을 2014년에 읽고 나는 '삶은 동사(動詞)'라는 한 구절을 얻었다. 김연수의 표현이라 생각하고 다시 책을 뒤졌는데 찾지 못했다. (더 찾아봐야지.) 삶은 움직씨로 이루어지는, 그래서 움직임의 연속이며, 더 이상 서술어 자리에 동사를 쓸 수 없을 때 멈춘다는 새삼스러운 이 정의가 내 표현이라면, 아마 위에 쓴 김연수의 문단에서 말미암은 것일 테다. 


가을이 되었으니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겠다. 시간을 내는데 조건을 붙이지는 말아야지. 같이 있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사람과 보내기에 이 계절은 짧다. 길가에 핀 이름모를 꽃 말고, 특정한 장소에 있는 특정한 꽃을 보겠다.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겠다. 김연수의 문장을 좇아 2021년 가을을 감각하고 가을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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