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이성적인 교감과 감성적인 교감으로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 주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우리는 말하는 것에 익숙한가 아니면 듣는 것에 익숙한가 고민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듣는 것이 더 쉽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상대가 전달하는 정보가 내 정보와 일치하지 않았을 때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어렵지만 '나'는 그 정보가 잘못되었다 인식하여 고쳐주려 하기 때문이다. 나도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졌다 생각했고 그런 생각들은 나의 시야를 좁히게 했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단어로는 들리는 것과 듣는 것의 차이점을 찾는 것은 아주 쉽다. 노래를 들을 때 그 리듬을 즐기는 것은 듣는 것이고 노래를 틀고 상대와 얘기하는 것은 노래가 들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듣는 것은 정신적인 힘이 들어가고 집중력을 요구한다. 반대로 들리는 것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내 귀에 들리는 것이다 마치 소음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점은 무엇이냐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 상대가 내게 말했을 때 한 번이라도 상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고 고민한 적이 있는가? 그것은 뻔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 말한다면 나는 상대가 말하는 뜻을 완벽히 이해하고 상대의 생각과 감정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나? 당연히 아니다. 내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모아 온 정보를 상대가 내게 주는 정보와 끼어 맞춰 상대를 이해하는 척을 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갓난아이를 처음 키우는 부모님은 아이가 왜 우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며 경험을 통해 배운다. 여기서 큰 문제점은 아이가 성장했을 때 그리고 아이가 울었을 때 그때의 경험이 되살아나 갓난아이 시절에 달랬던 방법을 적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갖고 있는 정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를 대하는데 그 방법은 서로를 위한 것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이기적인 부분도 이해한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에 누구에게나 보살핌과 사랑, 그리고 이해를 받고 싶어 한다 또한 자신의 만족을 위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싶어서 상대에게 선을 행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또한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상대를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그들의 본심을 들으려 노력한 적이 있을까?
말하는 것이 더 쉽다고 얘기했는데 그 이유는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상대의 생각을 전달받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말싸움을 예를 들어보면 그 싸움에는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밖에 없다. 듣기 때문에 싸운다고 말하지만 그건 들리기 때문에 싸우는 것과 같다. 상대가 어째서 화를 내고 있는지 정말 깊이 생각한 적이 있는가? 오히려 상대가 그런 생각을 갖고 그런 말들을 하기 때문에 내가 화나서 나도 참지 못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들리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고 말하는 분이 계시는데 싸우고 있을 때는 흥분한 상태라 상대를 이해하려 듣는 자세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가 엄마한테 혼나고 있을 때 분명 아이도 그 상황을 설명하고 싶고 잘못된 행동, 마음을 가졌지만 그래도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하고 싶어 할 수도 있지만 엄마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화만 더 낼 것이다는 생각을 가져서 아이는 침묵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분명 엄마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정말로 잘못된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도 아이는 어쩌면 본심을 얘기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한 가지만 분명하자면 듣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도 왜 듣는 자세만 얘기하냐 물어볼 수 있는데 듣는 자세가 올바르고 경험도 많고 익숙하다면 말하는 상대에게 집중했을 때 그 상대가 진심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세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동시에 나 자신이 상처를 안 받는 방법이기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자기 방어이다.
말에는 감정이 섞여서 나온다.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판단할 수 있는 나 자신이 필요하다. 반대로 진심일 경우에도 상대의 마음을 눈치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진심을 들을 수 있다면 결정은 내가 하면 되니까. 마지막으로 심리치료가 가능한 이유는 들어주는 심리치료사가 있기 때문이다. 듣는 것이 준비되어 있는 분들, 환자의 마음을 그리고 환자도 모르는 진심을 알아가는 분들이 있기에 상담치료가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까. 나 또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