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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학과 학생 Feb 20. 2024

[우울증 극복기] 세 번째 이야기

선택을 못한다는 건 모르기 때문일까?

후생유전학, 오른쪽에 보이는 오각형은 DNA의 정보를 변경하지 않고 유전적인 정보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생물학적이나 유전적일 경우 우울증에 걸린다는 뜻이 아닌 태어나서부터 남들보다 더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심리사회적 요인이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와 같이 복합적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가장 기초적인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우울증은 신경내분비, 염증 및 면역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생성되는 중추신경계의 신경전달 변화 및 뇌의 구조적 변화와 관련된다. 관련된 주요 신경전달물질은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글루타메이트 및 GABA(가바)이다.

의아할 수 있겠지만 우울증도 유전적일 수 있다. 우리는 DNA 정보를 통해 여러 인체에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데 아시다시피 DNA 정보는 유전적이다. 이 말은 즉, 병리학적인 것도 저장할 수 있기에 우리가 잘 아는 유전적인 병은 이와 같이 발병된다고 했었다. 하지만 현대과학에서 새로 나온 논문에서는 DNA의 정보를 바꾸지 않고 정보를 추가하는 요소가 존재해서 암, 자가면역질환, 정신병 혹은 당뇨 같은 병이 유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후생유전학이라 부른다.

후생유전학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전자의 염기(DNA) 서열을 변형 없이 오로지 염색질 구조의 변화만을 일으키게 한다(그림참조). 한마디로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 유전적인 물질이 DNA에 붙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는 뜻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해서 모두 다 유전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출이 되었을 때 유전적인 힘을 더 받아 이와 같이 발병될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이 모든 설명은 생물학적일 뿐 심리학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회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 눈물을 흘린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화를 내는 사람일 수도 혹은 삼킬 수도 아니면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심리를 표현하는 성격과 생물학을 논하는 정신은 상호 보안적이면서도 다른 거다.


차를 타고 한 시간을 가고 나니 또 다른 큰 병원에 도착했다. 걷는 것에 문제가 없었기에 엄마랑 내려서 입원하기 위해 병원에 들어갔다. 그렇게 또 대기했고 계속 기다리게 하는 곳이 병원인가 보다 싶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와 엄마를 데리고 청소년 정신병동에 갔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조심스럽게 얘기하자면 내가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거실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몇몇 아이들은 TV를 보고 있었고 한 아이는 머리를 벽에 수차례 박고 있었다. 물론 간호사분들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내가 그 길을 지나 상담실로 가기까지 쿵! 쿵! 쿵! 소리를 몇 번이나 내더니 간호사가 말려서인지 소리는 멈췄었다. 모든 병동이 이러진 않겠지만 처음이었던 나는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상담실에서 의사를 만나고 전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를 건넸다. 사실 공포감에 휩싸였던 나는 의사와 처음에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혹시 입원을 해야 하는 게 의무적인 걸까요?"


"음.. 처방을 받긴 했는데 의무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 의지에 따라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그 말씀은 입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네. 처방을 받아서 오긴 했는데 입원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보통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을 받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씀이지만 저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의무가 아니라면 가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마음이 바뀐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빠가 보고 싶습니다"


의사는 흔쾌히 나와 엄마를 보내줬고 우리는 집에 대중교통을 타고 왔다.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벗어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편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연락을 받은 아빠는 나와있었고 같이 카페 가서 차를 마셨다.


아빠는 자기 탓이라고 미안하다는 얘기를 계속하셨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단지 공부가 어렵고 내 기분이 우울했던 것인데 그게 아빠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식이 잘못되면 다 부모 탓이라고 하는 사회를 믿기 때문에 사과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엄마는 달랐다. '너의 기분을 남이 해소할 수 없는 노릇, 그건 가족이 도와줄 수 있지만 해소할 수는 없는 것.' 요렇게 단정 지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존중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음날은 평일이었기에 나는 등교를 했고 학교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그렇게 잘 지내나 싶었다. 그다음 주에 학교를 가니 나와 얘기했던 선생님을 만났다. 


"병원에는 잘 다녀왔니? 어떻게 됐는지 선생님이 물어봐도 될까?"


"네. 입원을 권했는데 사실 입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집에 왔고 다시 학교에 나왔어요"


"그랬구나. 그래도 입원해서 조금이나마 푹 쉬었으면 좋았을 텐데"


선생님의 마지막 문장은 시간이 흘러서 이해됐다. 그때는 정신병동이라는 편견이 가득한 공간이고 심지어 공포감에 휩싸였던 곳이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핵심은 바로 휴식이었다. 사회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의사분들과 간호사분들이 계신 곳에서 정신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마음의 휴식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씀이었다. 그럴 수 있는 공간이었다면 나도 아마 입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2주가 지났을 때였을까? 선생님께서 나를 찾으셨고 나는 다시 면담하러 갔다.


"선생님이 쭉 지켜봤는데 의사를 만나서 치료를 진행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치료요?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학교도 잘 다니고 있는 거 같은데"


"그렇지? 그렇지만 너와 수업하는 모든 선생님들이 관찰하고 얘기해 본 결과 조금은 네가 우리를 믿었으면 한단다"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치료를 받으면 될까요?"


"안 그래도 외국인 신분으로 국립 병원에 가는 건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문제 될 일 없어. 여기는 스페인이고 나는 스페인 사람이란다. 거기다가 너의 선생이기도 해.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말고 (--) 병원에 (--) 의사분을 찾아가면 된단다. 그분은 선생님 친구이기 때문에 예약만 잡고 가면 너를 진료해 주실 거야."


"정말요? 감사합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집에 돌아갔고 이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금 봐도 너무나 감사했던 우리 선생님이시다. 내 기억엔 이 대화가 선생님과 마지막 대화였고 그 이후에 가끔 선생님께 이메일로 연락을 드렸지만 답변하지 않으셨다. 훗날 심리학과 들어가서 인지심리학에서 심리상담학 부분이 나왔을 때 알게 된 사실인데 환자가 타인을 의지하지 않도록 그리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무관심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배웠다.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선생과 학생이 학교 외에서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메일 외 연락처를 주고받는 것은 불법이다). 그렇기에 선생님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고 존경하는 마음을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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