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질문하며 성장하는 AI와 영업팀의 이야기 - 3화
“Chris… 이건 누가 쓴 거예요?”
2025년 10월, 목요일 오후 4시.
회의실 공기는 늘 그렇듯, 커피와 약간의 피로로 채워져 있었다. 모니터엔 고객에게 보낼 메시지 초안이 떠 있었고, 민준 과장은 그 문장을 한 줄 한 줄 따라 읽다가 중간에서 멈췄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썼어요?”
그 질문엔 칭찬과 경계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민준 과장의 칭찬은 늘 조심스럽다. 15년 동안 수많은 ‘유행하는 툴’을 봐왔고, 그때마다 현장은 결국 사람이 뛰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건 진짜 도움이 된다”와 “이건 곧 사라진다” 사이에 아주 두꺼운 벽이 있다.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아니라… AI요.”
민준 과장이 잠시 웃었다. 반사적으로 나온 웃음이었다. 믿기지 않을 때 사람은 웃는다.
그는 다시 화면을 봤다. 그리고 이번엔 웃지 않았다.
“AI가… 이런 톤을 낼 수 있어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키보드를 멈추고, 누군가는 의자에 등을 붙였다. 딱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가 프로젝트 1과 2에서 만들었던 건 ‘예측’이었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건 ‘언어’의 문제라는 걸.
그리고 영업은, 결국 언어로 완성된다.
프로젝트 2가 성공한 뒤, 팀의 표정이 달라졌다.
72.3%를 처음 봤을 때처럼 “이거 믿어도 돼요?”라는 질문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대신 질문의 결이 바뀌었다. 모델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모델을 전제로 ‘다음’을 묻기 시작했다.
“Chris, 모델이 추천한 상위 200명 리스트 있죠. 이번 달은 그걸로 가면 될 것 같아요.”
주영이가 말했고, 민준 과장은 바로 이어서 덧붙였다.
“근데… 이번엔 솔직히 이게 더 중요해요.”
그가 말한 ‘이거’는 리스트가 아니었다.
“우리가 누구한테 연락해야 하는지는 이제 알아요.
왜 유망한지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고요.
근데 문제는… 메시지예요.”
민준 과장은 자신의 메일함을 열어 보여줬다.
서로 다른 회사, 서로 다른 담당자에게 보낸 이메일이 비슷한 톤으로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 중 몇 개는 회신이 왔고, 대부분은 오지 않았다.
“이건 제 말인데요.”
그가 한 메일을 클릭했다.
“정중하게 썼어요. 충분히 논리적이에요. 근데 회신이 없어요. 왜죠?”
그때 내가 떠올린 건 숫자가 아니었다.
‘온도’였다.
똑같이 정중해도, 사람은 문장의 온도를 느낀다.
똑같이 논리적이어도, 사람은 “내가 이해받고 있나”를 먼저 판단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CRM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새 1·2화에서 다뤘던 ‘예측’의 영역을 지나, 영업의 마지막 관문에 도착해 있었다.
“어떤 말을 해야 관계가 열릴까?”
영업 메시지를 잘 쓰는 건 단순히 문장력이 아니다.
진짜 어려운 건, 상대가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가끔 고객은 바쁘고,
가끔 고객은 내부 정치에 지쳐 있고,
가끔 고객은 “또 영업이야?”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걸 모른 채, 단 한 통의 메시지로 관계를 열어야 한다.
민준 과장은 메시지를 쓰기 전 항상 잠깐 멈춘다.
그 멈춤은 계산이 아니라 배려에 가까웠다.
“Chris, 제가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요?”
그가 어느 날 늦은 저녁, 커피를 들고 내 자리 옆에 앉으며 말했다.
“거절이요?”
“거절은 괜찮아요. 거절은 결과잖아요.
근데 제가 무서운 건… 상처 주는 거예요.”
민준 과장은 예전에, 정말 필요한 타이밍에 연락했다가 고객에게 한마디 들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 그럴 정신 없어요. 제발 좀…”
그 한 문장이, 몇 년이 지나도 그의 메시지 타이핑 속도를 늦춘다.
영업 메시지는 성과를 만드는 도구이면서도, 누군가에겐 감정을 건드리는 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조심스럽고, 조심스러운 만큼 기회도 놓친다.
그리고 나는 그 지점에서 생각했다.
“예측은 시스템이 됐는데, 말은 아직 개인기다.”
우리 팀이 GPT-4를 붙이겠다고 했을 때, 처음 반응은 두 가지였다.
“오, 이제 메일도 AI가 다 써주는 거예요?”
그리고
“근데 그거… 너무 티 나지 않아요?”
둘 다 맞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었던 건 “대필”이 아니었다.
우리는 영업사원의 언어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영업사원의 언어를 더 좋은 형태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3의 목표는 이렇게 정의했다.
고객 상황을 요약해서 AI에게 전달하고
AI가 메시지 초안을 제안하되
반드시 “왜 이런 톤이 적절한지”까지 설명하게 만들고
영업사원은 그 설명을 읽고 자기 문장을 선택하게 한다
한마디로, AI가 말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말을 선택하는 과정’을 더 명확하게 만들고 싶었다.
우리는 과거 영업 대화 8,000건을 모았다.
메일, 콜 스크립트, 상담 기록, 고객센터 티켓, 그리고 영업사원의 메모까지.
솔직히 말하면, 그 데이터는 아름답지 않았다.
“다음 주에 연락 주세요”라는 말 뒤에, 영원히 연락이 없는 기록
“가격만 알려주세요”로 시작해서 “검토해볼게요”로 끝나는 대화
감정이 섞인 영업사원의 메모: “이 고객 예민함”, “대표가 화났음”, “기대하지 말자”
고객의 짧은 회신: “네.” “확인.” “바쁨.”
텍스트 데이터는 숫자보다 더 인간적이고, 그래서 더 지저분하다.
하지만 나는 그 지저분함이 오히려 희망이라고 느꼈다.
‘영업의 진짜 현장’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대화를 그냥 모델에 먹이지 않았다.
라벨링부터 시작했다.
고객 반응: 긍정 / 중립 / 거절 / 무응답
대화 단계: 첫 접촉 / 재접촉 / 제안 후 / 견적 후 / 협상 중
고객 신호: 관심(페이지 방문/다운로드) / 부담(일정 연기/짧은 답) / 불만(부정 어휘)
영업 의도: 설명 / 질문 / 제안 / 팔로업 / 관계 유지
라벨링은 힘들었다.
특히 “중립”과 “무응답” 사이가 가장 어려웠다.
사람은 말을 안 해도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GPT-4에게 처음 요청한 건 단순했다.
“이 고객에게 보낼 이메일을 작성해줘.”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깔끔했다.
정중했고, 구조도 완벽했고, 문법도 흠이 없었다.
그런데 팀원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이거… 너무 ‘회사’ 같아요.”
“너무 정석이라서 오히려 부담스러워요.”
“고객이 읽으면 ‘아, AI가 썼네’ 하진 않을까요?”
민준 과장은 결정타를 날렸다.
“Chris, 이 문장… 이 사람이 쓴 것 같지 않아요.”
맞는 말이었다.
영업 메시지는 ‘완벽한 문장’이 아니라 ‘이 사람이 보낸 문장’이어야 한다.
고객은 문법을 평가하지 않는다.
사람을 평가한다.
그래서 우리는 프롬프트를 완전히 바꿨다.
우리는 GPT-4에게 메시지를 바로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상황을 먼저 이해시키는 카드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이런 형태였다.
고객: 식품 업종 / 직원 35명 / 최근 2주간 프리미엄 기능 페이지 6회 방문
기존 히스토리: 작년엔 예산 이유로 보류, 하지만 최근 가이드 다운로드 2회
현재 단계: 재접촉 2회차
고객 톤: 답장이 짧고 건조함 ( “확인했습니다” 수준 )
영업 목표: 상담 유도 ❌ / 부담 없이 ‘다음 대화’ 열기 ✅
금지어: “오늘 미팅 가능하실까요?” 같은 압박형 문장
권장 톤: ‘이해 + 선택권 + 짧게’
그리고 GPT-4에게 이렇게 요청했다.
이 고객에게 보낼 메시지 초안 2개
각각의 문장이 왜 이 톤인지 설명
“고객이 부담을 느낄 만한 표현”을 체크해서 표시
영업사원이 수정할 수 있게, 핵심 문장만 요약
이때부터 결과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회의실에서 민준 과장이 멈춰 읽었던 문장은 이거였다.
“최근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를 동시에 검토하고 계실 것 같아,
급하게 결정을 요청드리기보다는
나중에 편하실 때 다시 보실 수 있도록
참고 자료 한 가지만 조심스럽게 공유드립니다.”
누군가가 작게 말했다.
“와… 이거, ‘지금 당장 답하라’는 느낌이 아니네.”
민준 과장은 화면을 더 아래로 스크롤했다.
AI가 함께 출력한 “이유 설명”이 있었다.
첫 문장: “상대의 상황을 인정 → 방어심을 낮춤”
둘째 문장: “결정 압박을 제거 → 관계 유지 모드로 전환”
셋째 문장: “선택권을 고객에게 남김 → 반응 가능성을 열어둠”
그 설명을 읽던 민준 과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Chris… 이거 나보다 더 사람 같아요.”
그 말은, 칭찬 같았지만 사실은 작은 충격이었다.
영업사원이 가장 자존심을 거는 영역이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칙을 세웠다.
AI 문장을 그대로 보내지 않는다.
대신, AI가 제안한 이유를 읽고 사람이 수정한다.
A/B 테스트는 두 그룹이었다.
그룹 A: 기존 방식 (영업사원이 직접 작성)
그룹 B: AI 초안 + 이유 설명을 참고해 영업사원이 편집
결과는 흥미로웠다.
AI 문장을 그대로 쓰는 경우는 오히려 성과가 들쭉날쭉했다.
그런데 “참고해서 고친 문장”은 안정적으로 좋아졌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GPT-4의 가치는 ‘자동 작성’이 아니라
“왜 이 말이 좋은지”를 설명해주는 능력에 있다.
그게 사람의 직감을 구조화해준다.
민준 과장은 더 이상 “데이터가 뭘 알아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AI야, 이 고객은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내가 이 문장을 보내면, 상대는 어떤 감정일까?”
“가격 얘기를 지금 꺼내는 게 맞아?”
그리고 AI가 답하면,
민준 과장은 잠깐 생각한 뒤 이렇게 말했다.
“오케이. 그럼 이렇게 바꾸죠.”
그 장면이 나에겐 이상하게 감동적이었다.
‘베테랑이 AI에게 배우는 장면’이어서가 아니다.
베테랑이 자기 말을 다시 성찰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AI가 말을 대신한 게 아니라,
민준 과장이 더 인간적으로 말하게 된 것이다.
“83.7%는 ‘누구에게’와 ‘왜’를 해결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알았다. 영업의 마지막 승부는 ‘어떻게 말하느냐’다.
GPT-4는 문장을 만든 게 아니다.
우리 팀이 말의 구조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상대의 상황 인정 → 압박 제거 → 선택권 제공’
이 패턴을 우리가 스스로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는 게 더 중요하다.
민준 과장은 이제 고객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전, AI에게 묻는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한다.
인터랙션 사이언스는 결국 ‘질문의 문화’다.
AI가 똑똑해질수록,
사람이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영업은 더 이상 소모전이 아니라 관계가 된다.”
우리는 결국 대시보드를 뜯어고쳤다.
기술이 아니라 **‘보여주는 방식’**이 사람을 바꾼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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