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공부 리얼하게 2편
서울대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고 나서 미친듯이 공부에 몰두했다. 방송반을 탈퇴한 각오도 있었고, 또 모의고사 때 주목받았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계속 생각했다.
모든 걸 바꿔야만 했고, 간절히 바꾸고 싶었다.
평소에 듣던 록음악 테이프는 모두 모아서 버리고, 대신 3M 이어플러그를 사서 귀에 꽂았다.
아침에 30분씩 버스를 타고 올 때는 시간이 아까우니 "우선순위 영단어"라는 노란색 표지의 영단어 책을 매일 외웠다. 당시 버스는 실내가 꽤 어두웠는데, 보통 맨 뒷자리 앉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단어를 외우거나 피곤하면 잠깐 졸거나 그랬다. 자습시간에 영단어를 외우는 건 시간이 아까우니 버스에서만 외우자고 생각했고, 외운 것을 스스로 백지에 테스트 한 뒤 오답노트 만드는 작업만 학교에서 했다. 6개월 정도가 되니 오답노트에 적힌 단어들만 외우게 되었고, 1년이 지나니 적어도 수능 영어 문제를 풀 때 모르는 단어가 거의 없었다.
아침 8시 부터는 0교시 자율학습이 시작되고, 나는 보통 7시 20분쯤 학교에 도착하곤 했는데, 대부분 가장 먼저 교실에 들어가는 편이었다. 1등으로 교실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았는데, 가끔 우연히 어떤 녀석이 나보다 먼저 나와있으면 괜시리 신경이 쓰였고, 그래서 다음날은 더 일찍가곤 했다.
수업시간에는 최대한 열심히 집중했다. 당시는 수능이 중심인 시절이라 학교 내신이 중요하지 않았지만 공부는 결국 다 똑같고, 학교 수업 때 배운 것이 기초가 되어 수능 공부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 당연히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졸리면 교실 뒤로 조용히 나가서 서서 수업을 듣곤 했다.
바로 아랫 학년들부터 학교급식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1학년 때는 도시락을 2개씩 싸가지고 다녔다. 3교시가 끝나면 늘 도시락 한 개를 먼저 까먹었는데, 배가 고파서도 그랬지만 쉬는시간 10분동안 밥을 먹으면 식사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그렇게 했다.
그렇게 일찍 밥을 먹으면 점심시간 1시간 동안 귀에 이어폰 꽂고 노래를 들으며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 남들 밥먹는 시간에 나는 공부한다는 뿌듯함에 도취되어서인지 공부 효율이 꽤 높았던 시간이었다.
밤이되어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되면 당시 펜 모양으로 생긴 물파스(졸음사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란색 형광펜 처럼 생긴 모양으로 펜 촉 부분이 둥글고 눈 밑에 바르면 파스 성분이 나오는 아이디어 상품이었다)를 항상 준비해 두었다가, 눈 밑에 발라가며 잠을 쫓고는 했다. 매일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집에가면 보통 12시 반정도.
이렇듯 고등학교에 입학해 첫 모의고사를 본 뒤, 서울대 가고 싶다는 목표 때문에 미친듯이 공부에 몰두하고 있던 나였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넘지 못할 벽을 만나 좌절할 일이 있었는데, 바로 수학이었다. 사실 이토록 공부할 시간을 아껴가며 노력하던 것도 결국 약점이었던 수학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적은 난적이었던가. 1학기 기말고사 때 난생 처음 맞아보는 점수를 받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수학의 정석을 1년 동안 미리 공부했었다.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는지 내 수학실력은 점수만큼 형편 없었다. 실력 좋은 여자 선생님에게 거의 1년 동안 1:1로 과외를 받았는데, 선생님과 함께 풀 때는 이해한 줄로 알고 있었던 내용도 혼자 풀어보니 어느 것도 명쾌하게 이해되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는 수학을 싫어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심지어 교내 수학 경시대회에서 상도 탔었던 내가 60점이라니... 이게 고등학교 수준인건가? 진짜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패닉에 빠졌다. 생전 처음 학교 시험에서 60점을 맞은 것이기에 좌절할 법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래서는 서울대에 갈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그냥 반짝 스타에 머물라는 말인가?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도망가거나 좌절하고 있을 여유나 시간이 없었다.
내가 딱해보이셨는지 어머니께서도 기회가 닿는 대로 주변 지인들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하고 해결 방법을 수소문 하시고 다니셨다. 당시에는 인터넷 강의도 없던 시절이고, 노량진이나 강남 교육 특구에 가서 특별한 강의나 문제집을 접할 기회도 없었기에 딱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없었다. 그저 텔레비전 방송시간에 맞춰 EBS를 보는 수준이랄까?
그러던 상황에 구세주 같은, 하지만 아주 황당한 해결책을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가 알고 지내던 한 수학선생님에게 우연히 내 이야기를 하던 중 답변을 듣고 오신 것이었다. 그 해답은 아주 단순했다. 어떤 수학 문제집이든 상관 없으니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일곱 번만 풀어볼 것. 틀린 문제만 다시 푸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일곱 번 풀 것.
어떤 수학 문제집이든 상관 없으니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일곱 번만 풀어볼 것
요즘 애들한테 이야기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까?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할까?
당시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이 너무나 간절하게 바라던, 바로 그 해답이라고 굳게 믿고 확신했다.
구체적 원리는 알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짐작하기로는 이건 분명히 되는 방법이었다.
다만 실행하냐 못하냐의 문제가 남았을 뿐.
아니 얼마나 빨리 실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 뿐이었다.
일단 문제집을 골라야 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98년에는 블랙박스 라는 이름의 문제집이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새로운 문제집들이 시중에 막 쏟아지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수학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 강자가 존재했으니, 요즘 학생들도 공부한다는 바로 그 "수학의 정석"이었다. 나는 실력도 아니고 기본 편만 풀어봐도 단원 제일 마지막 부분에 있는 고난도 문제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풀 수 없을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봐야할 수능 시험은 과거 학력고사, 본고사 때와는 달리 문제가 엄청 쉬워졌고, 기본 개념에 충실하면 수학적 사고력 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고1 이었지만 문제의 본질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학의 정석에 다시 도전하지는 않기로 했다. 솔직히 수학의 정석을 7번 다 풀어낼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선택한 문제집이 "개념 원리" 였다.
개념 원리는 일단 쉬운 개념을 제법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기본기가 탄탄한 교과서 같은 느낌이었다. 또 예제가 수준별로 나와 있어서 내게 딱 맞는 교재라고 생각했다. 다만 단점은 문제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한 단원을 마치려면 여러 단계를 걸쳐 마지막 고난도 문제까지 풀어야 했는데, 책 자체가 대략 5~600페이지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곱 번이나 풀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못할 것도 없으리라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겁 없는 7번 풀기 대장정의 막을 올렸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지만 일주일 정도 쉰 이후에는 다시 학교에 나가 자율학습에 참여해야 했다. 당시 나는 과학과 수학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공통과학을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는 재미있어서 였고, 공통수학을 공부한 이유는 실력이 부족해서 였다.
첫번째 1회독을 할 때는 끔찍한 기분으로, 정말 인내심 만으로 견뎌가며 풀었던 것 같다. 우선 모르는 내용이 너무 많았고, 해설을 봐도 완전히 이해했다는 느낌이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위로가 되었던 것은 아직 첫번째 보는 것이니 일곱 번을 다 채우면 이런 막연한 느낌도 사라지겠지, 하는 믿음 아닌 믿음이었다.
틀린 문제는 번호에 틀렸다는 표시를 해두며 뒤로 뒤로 넘어갔는데, 뒤쪽으로 갈 수록 더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이해가 그만큼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만 얼른 1회독이 끝나기만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또 풀고 또 풀었다.
드디어 두번째 2회독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연필로만 풀었던 문제집을 지우개로 싹 다 지우고, 새로 풀기 시작했다. 1회독을 끝마치는데 대략 여름방학이 다 소모된 것 같았다. 약 한 달 반 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2회독은 조금 더 속도가 붙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느렸다. 그도 그럴 것이 틀린 문제들을 또 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좀 충격이었다. 심지어 틀렸던 객관식 문제를 다시 풀어보면서 같은 오답을 고르고 있다니! 이래서 공부를 못하고 수학을 못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뭔가 안도감이 느껴졌다. 적어도 틀린 문제를 이렇게 또 틀리고 있으니 내 실력이 형편 없다는 사실 만큼은 확인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일곱번 풀라고 말씀해주신 그 선생님의 큰 그림 속에서는 이런 내용도 담겨있었겠구나! 그렇게 믿음이 더 강해졌다.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들여 2회독을 마쳤다. 하루에 최소한 8시간 정도는 수학에만 투자하는 나날들이었다. 문제집 풀이 내용을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풀기 시작했다.
3회독의 시작이었다. 대략 9월 정도였을 것이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인지 문제 풀이 속도도 더 빨라졌다. 친구들 중에는 내가 이미 맞았던 문제도 다시 푸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일단 이유는 내게 이 방법을 소개해 주신 그 이름도 모르는 수학 선생님이 틀린 것만 다시 풀라고 하신 적이 없고, 그냥 일곱 번 전체를 다시 풀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3회독을 할 때는 중반이후 계산능력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경쾌하고 신난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꺼이 모든 문제를 다시 풀고자 시도했고 그 과정은 점점 쉽게 느껴졌다.
맞춰내는 문제에서 일종의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단순히 답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뭔가 알아간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수학이 이런 것이구나... 하나의 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틀렸던 문제들을 다시 풀면서 이번에는 약 1/2정도를 새롭게 맞출 수 있었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 때쯤이 되어서는 나 스스로 수학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것을 이미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오답을 분석하고, 해답을 공부한 뒤 다시 이해가 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일들도 잦아졌고, 비슷한 유형을 더 풀어보고 싶어 수학의 정석에서 같은 단원 문제들을 찾아 비교해 풀어보며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해가기도 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3회독은 분명 더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내 가을이 되었고 4회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내 4회독을 멈추게 되었다. 중간 정도를 풀 때쯤 그만 풀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대략 10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로는 개념 원리 대신 여러 문제집들을 한권씩 빠르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어떤 문제집도 개념 원리만큼 양이 많은 경우는 없었고, 거의 모든 유형을 다루고 있는 경우도 없었다.
밥 먹을 시간 아껴가며 거의 4개월 넘게 수학에만 매달렸는데, 4회독을 하면서 내가 깨달았던 것은 내 경우는 이제 더이상 5회독, 6회독, 7회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고, 공부를 통해 자유를 얻는가 하나의 비법이었다.
공부에 지지 않고 그 공부를 이겨버리는 것. 결국 나를 이기는 것이 공부라는 걸 배웠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수학실력이 부쩍 성장해 있는 것은 어쩌면 별로 놀랍지 않았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토록 내가 믿고 따르려 했던 "일곱 번 풀이"의 원칙을 나 스스로 내려놓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가르침을 여전히 충실히 따르고 있었고, 일곱 번 풀이의 원칙이 여전히 강력한 해결책이라는 데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4번째 풀이에서 그만둬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감히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나의 놀라운 성장 경험이었다.
수학 문제집을 일곱 번 풀겠다고 다짐, 실천하는 동안 내내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되는 것인지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물어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학교에 갇혀 자율학습 하는 것 이외에, 이미 가지고 있었던 개념원리 문제집 외에는 선택할 대안도 없었던 내가, 아주 단순하고 무식하게 집중했던 4개월간의 노력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나에게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수학에 대한 자유는, 곧 수학에 대한 기쁨이었고, 공부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공부의 단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나 스스로 직접 경험하고 깨닫는 시간이었다.
중학생 시절 미리 수학의 정석을 보고 온 것이 왜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었고, 아무 도움 없이 흔해빠진 수학 문제집 한 권을 붙들고 씨름하던 시간이 오롯이 내 실력으로 쌓이고 체화되는 것을 경험했다.
간절했기에 붙잡았던 가르침이었는데, 믿고 나서 보니 나를 바꿔 놓았고, 내 수학 실력을 바꿔 놓았다.
이것이 내가 수학을 어려워 하고 힘들어 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전하는 도전이자 메세지다.
나는 기꺼이 일곱 번 풀이의 비법을 소개하는 편이며, 그럴 때마다 자세를 고쳐앉고 진지한 눈빛으로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권한다.
만약 네가 정말 수학을 잘 하고 싶다면 어떤 문제집이든 상관없으니 일곱 번 풀어보라고.
그 때 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학생이 아무리 수학실력이 형편없을 지라도 내가 가르쳐 주는 대로(내가 그랬듯) 일곱 번만 풀면 너도 분명히 수학을 잘 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울 가지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도 이미 경험했던 일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들 중 대다수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란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약도 입에 넣어야 병을 고치는 법. 다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고민만 하다가 집에 돌아간다. 변화없는 지루한 일상 속으로 말이다.
사실 나는 내 조언대로 실천했다고, 그래서 수학이 달라졌고, 공부가 달라졌다고 와서 증언한 학생을 아직 단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전혀 도움되지 않는 짓을 해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머니를 통해 나에게 수학 문제집 일곱 번 풀어보라고 권했던 그 선생님도 내 소식을 듣지 못하셨을테니 말이다.
아마 비슷한 이유로 그 선생님은 평생 자신의 가르침이 누구에게 적용되었고, 누가 그 비법을 실제 따라해보았을지 모르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분은 같은 이야기를 나 이외에도 많은 학생들에게 전하셨으리라 생각하며, 나도 같은 이유로 새로 만나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뻔하고 뻔한 결말의 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내게 있어서 일곱 번 풀이하는 공부 방법은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고마운 스승이자, 나의 강력한 무기였다. 이후 나는 수학을 아주 잘하는 학생이 되었고, 항상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기반으로 공부 계획을 세우곤 했다.
2학년 때 수학1을 처음 공부하면서 한번도 선행학습을 하지는 않은 것이 불안하지 않았다. 1학년 때 공통수학의 기초가 아주 단단하게 자리잡혔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처음 배우는 내용이었어도 그것을 이해하고 내것으로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공통수학보다는 오히려 훨씬 더 적은 노력으로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수학의 매력은 풀이 과정과 결과가 모두 명료하고 객관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수학 공부만큼 공부의 원리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공부도 없다고 생각한다. 수학의 반대편에 있을 것 같은 문과 과목 중의 괴수, 철학도 알고보면 그 핵심에 수학을 담아 놓고 있다.
이러한 역설이 보여주듯 수학은 분명 하나의 지식이면서도 동시에 여러 지식을 다루는 방법론 그 자체 라고 생각한다. 수학은 논리로 이루어진 학문인 동시에 논리를 배우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이 경험은 공부 자체에 대한 나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주었고, 그 덕분에 훨씬 적은 노력으로도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다들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소중한 추억도 많았고, 행복한 시간들이 참 많았던 감사의 시간들이었다. 공부 덕분이었다.
2학년은 꽤 빠르게 지나갔다. 후배들을 만나서 선배의 자리에 서 본다는 것을 처음 경험하기도 했고, 학교 행사나 축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을 경험하며 여러모로 성장하고 변화를 경험했다.
이내 3학년이 되었고, 수능시험 준비가 점점 더 바빠졌으나 그 기간도 내게는 흥미롭고, 설레는 시간들이었다. 평소 긴장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공부는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을, 시간이 걸려도 그 시간이 날 배신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능시험에 대한 걱정이 날 집어삼킬 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험생활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나서, 나는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