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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 Apr 16. 2023

07. 영화보는 시각장애인

영화 보는게 취미인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보통은

안 보이는데 어떻게 봐?

재미가 있기나 할까? 싶을거다.



같은 집에 사는 시각장애인이 한 명 있었다.

동시를 짓기도 했던 K는

가끔 목욕을 할 때,

'바이바이 버블 (Bye Bye Bubble)' 이라고 했다.



선천적인 시각 장애로 인해

청각이나 후각이 매우 예민했다.

수돗물이 똑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수도꼭지가 잘 잠겨지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한 두 번이어야지.

"야, 오늘 청소하는거 잊지마"

"야, 빵 타는거 같다, 잘 봐야해"

"야. 오늘은 수도꼭지 잘 잠궈, 그거 낭비야"

이런 잔소리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좀 눈엣가시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한참 힘들 때라 밤에 많이 울었는데,

하필 내 옆 방이라서 깰 까봐 무서웠다.



아무튼 그러한 그녀는 왠종일 방에 처박혀서

영화를 보는 게 취미였다.

방에는 영화 DVD가 쌓여있고,

돈 생기면 콜라와 영화 DVD를 모았다.

그리고

점자 타자기로 제목을 붙였다.


K의 점자타자기. 신기함



한번은 하우스에서 모두 영화를 보러 갔는데,

레고닌자 무비였다. 

우리 집 사람들은 정신연령이 매우 낮아서 .. 

이런 애니메이션을 주로 보았는데, 

진짜 보기 싫었지만, 암튼 보러갔다.



K는 그래도 초딩 연령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무비는 보기 싫다고 했는데

아마 나초와 콜라를 먹으러 같이 온 거 같다.



영화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어느 순간 중간에 자고 말았는데, 

K가 날 부르는 소리에 깼다. 화장실을 간다는 거였다.

그래서 손을 잡고 같이 갔다 왔는데,

내가 졸았다고 하면 또 

그치 재미없지~ 블라블라, 남들한테 얘가 영화보다가 잤대.

그렇게 떠벌릴까봐 말을 하지 않았다.ㅎㅎ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K를 챙기려고 봤는데,

K가 그토록 생생한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봤다.

그동안 이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영화보다 K의 표정이 더 재밌었다.



영화 음악에 따라서 대사에 따라서
달라지는 표정이 참 신기했다.

시각장애인은 아무래도 

어떤 표정을 지으면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하는지 잘 모르니까.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표정을 짓는 거겠지.



이런 식




엄청 이상했다. 어떤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스펙타클한 상상을 하는 거 같았다. 

음악 자체가 스펙타클하니까ㅎㅎ

그 영화에 흠뻑 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레고닌자 무비.. 재미없을 거 같은데~ "라고 했던건 아마도 

아동용을 본다는 열등감 느끼지 않으려고 방어한 것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엄청나게 즐기고 재밌게 보는 그녀가 참 신선했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많이 날려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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