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삶의 마지막 소식은 '스팸 문자'처럼 보일까?

클릭하기 두려운 모바일 부고장, UX/UI 리디자인 프로젝트

by Designer Nine

"띠링." 토요일 오후, 낯선 번호로 문자가 왔다. 수신자 확인이 어려운 상황에 내용을 확인하니, 바로 보이는 알 수 없는 영어 링크(URL) 하나.


[부고] 故000님 별세... bit.ly/xv2...


순간 손가락이 멈칫했다. '이거 눌러도 되는 건가? 혹시 스미싱(사기) 문자 아냐?' 부고 소식을 받고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슬픔이나 애도가 아니었다. '의심', 그리고 막연한 '거부감'이었다.

삶의 가장 엄숙한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 어쩌다 클릭하기 두려운 '스팸 문자' 취급을 받게 되었을까?


Gemini_Generated_Image_4hgd9k4hgd9k4hgd.png 요즘 거짓 부고 문자로 링크 접속을 유도하는 스팸 사례가 늘고 있다.




1. 디자이너의 눈으로 본 '죽음의 UX'


나는 직업병처럼 시중에 나와 있는 모바일 부고장 서비스들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데스 디자이너'로서 분석한 기존 부고장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사용자에 대한 배려 없음'이었다.


• 압도적인 어두움: 죽음은 엄숙해야 하니 검은색을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작은 모바일 화면 가득 채워진 칠흑 같은 검정(#000000)은 조문객에게 예우를 넘어선 심리적 압박감과 공포를 준다.


• 불친절한 정보 전달: 고인의 이름보다 '謹弔(근조)'라는 한자가 더 크게 박혀 있거나, 계좌번호 복사가 안 되어 종이에 따로 적어야 하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 사라진 고유성: 고인이 생전에 따뜻한 분이었든, 호탕한 분이었든 상관없이 모든 부고장은 똑같은 국화꽃 그림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엄숙함이 아니다. '게으른 디자인'이다. 나는 오늘, 클릭하고 싶은, 아니 "클릭해도 안전해 보이는 가장 정중한 초대장"을 설계해 보기로 했다.


refer.png 기존 부고장 디자인 서치 흔적. 폰트, 컬러, 텍스트 구성 대부분 비슷하다.




2. 그림이 아니라, '경험'을 설계하다


작업을 시작하며 나는 바로 색을 입히지 않았다. 대신 정보의 뼈대(Wireframe)를 다시 세웠다. 좁은 모바일 화면에서 조문객이 가장 편안하게 정보를 얻으려면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야 할까?


와이어프레임.png 와이어프레임 구성안


나는 여기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바로 '지도 이미지의 삭제'였다.

기존 부고장은 잘 보이지도 않는 약도 이미지를 억지로 구겨 넣느라 정작 중요한 고인의 사진이나 추모 메시지가 밀려나기 일쑤였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조문객에게 필요한 건 '보는 지도'가 아니라 '찾아가는 길'이다.


나는 불필요한 이미지 공간을 비워내고, 하단에 [장례식장 오시는 길] 버튼 하나를 명확하게 배치했다. 이 버튼을 누르면 T맵이나 카카오네비 같은 내비게이션 앱이 바로 실행된다. '보는 경험'에서 '행동하는 경험'으로의 전환이다.





3. 검은색의 무게를 존중하되, 공포는 덜어내기


뼈대를 세운 뒤에는 색(Color)을 고민했다. 핀터레스트, 비핸스 대신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고성의 바다 사진들을 꺼내보았다.


강원도 고성 바다.png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성 바다 사진 중 하나



거기엔 쨍한 파란 하늘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낮의 바다, 비가 그치고 조금은 흐리지만 선선한 바람의 체취가 느껴지는 바다, 빛을 머금은 깊고 푸른 밤바다 등.. 여러 개의 바다 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색감에서 '새로운 죽음의 색'을 찾았다. 무조건적인 검은색의 배제가 아니다. 기존의 관습적인 검은색이 주는 무게감은 존중하되, 그 자리에 '깊은 안식'과 '품격'을 채워 넣는 톤 조절(Tone & Manner) 과정을 찾아갔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설계한 3가지 타입의 디자인을 하단에 공개한다.





3. Solution: 새로운 마침표의 제안


총 3개의 타입으로 디자인을 분류했다.



Type A. [Midnight Sea] 고성의 밤바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거대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고성의 바다 4개의 사진 중, 원하는 사진을 선택해 메인에 노출할 수 있다.


제목 없는 비디오 - Clipchamp로 제작 (2).gif 짧은 예시(*이름은 가상입니다)


기존 부고장의 검은색이 주는 무게감은 유지하되, 공포감을 덜어낸 '딥 네이비(Deep Navy)' 컬러를 메인으로 사용했다. 가장 큰 특징은 상단의 아치형(Arch) 프레임이다. 이곳에는 영정사진 대신,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자연(파도, 숲, 하늘)이나 추상적인 이미지를 담을 수 있다. 이는 고인이 육신을 떠나 '별'이 되고 '바다'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갔음을 상징한다. 텍스트 역시 "별이 되어 떠나셨습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남은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안식을 준다.




Type B. [Editorial Beige] 마지막 편지

"우리의 영원한 친구, 당신을 기억합니다."


Section 2.png 기존 매거진 형식과 부고장 형식을 반반 섞은 형태의 디자인
제목 없는 비디오 - Clipchamp로 제작 (1).gif 짧은 예시(*이름은 가상입니다)


부고장은 왜 꼭 근엄해야만 할까? 해당 디자인은 매거진의 한 페이지정갈한 에세이 표지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따뜻한 미색(Beige) 배경에 흑백 사진을 배치하고, FAREWELL(작별)이라는 영문 헤더와 날짜를 넣어 세련됨을 더했다. "우리의 영원한 친구"처럼 고인을 수식하는 문구를 가장 크게 배치하여,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조문객들이 가장 먼저 기억할 수 있도록 타이포그래피에 힘을 주었다.




Type C. [Journey Log] 아름다운 소풍

"000 님, 아름다운 소풍을 마치고 떠납니다."


Section 3.png SNS, 은행, 예약 서비스 UI 디자인 부분 참고. 고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가장 적합하지 않나 싶다.
제목 없는 비디오 - Clipchamp로 제작 (3).gif 짧은 예시(*이름은 가상입니다)


고인이 생전 가장 행복해했던 순간을 메인으로 내세운 디자인이다. 등산을 좋아했거나, 바다를 사랑했던 고인의 '생전 모습(Life Style)'을 화면 가득 채웠다. 사진 속 고인이 어떠한 것을 좋아했고, 자신이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는지에 초첨을 두었다. 또한, 장례식이 슬픈 이별의 장이 아니라, 고인의 '아름다웠던 소풍(인생)'을 추억하고 배웅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4. 디자인이 바꾼 죽음의 온도


디자인 하나 바꿨을 뿐인데, 차가운 액정 속 죽음의 온도가 달라졌다. 공포가 아닌 '추억'으로, 의심이 아닌 '신뢰'로.


나는 이 디자인이 단순히 시안(Draft)에서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현재 이 디자인을 실제 앱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기존에 만들고 있는 앱 등록이 끝나면 실행할 예정이다) 머지않아 나의 브런치 구독자분들 중, 원하시는 분들께 가장 먼저 '나의 모바일 부고장 만들기' 체험 링크를 보내드릴 예정이다.


언젠가 내게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 온다면, 내 개인적인 취향은 Type A(밤바다)를 고르고 싶다. "저 깊고 푸른 바다처럼 잘 놀다 갑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여러분은 자신의 마지막 초대장으로 어떤 디자인을 고르고 싶으신가요?
댓글로 여러분의 취향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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