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 고성의 바다 앞에서 '마침표'를 고민하다.
오전 9시, 강남역 11번 출구. 나는 매일 그 거대한 인파 속의 하나였다. 3년 11개월. 내가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수천 개의 배너를 만들고, 수만 번의 마우스 클릭을 했다. "더 눈에 띄게, 더 자극적이게, 더 사고 싶게." 나의 디자인은 늘 누군가의 지갑을 열기 위한 외침이어야 했다. 화려해야 했고, 시끄러워야 했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섰다. 더 이상 '소비'만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치듯 퇴사를 하고 내려온 곳은 강원도 고성. 서울의 소음이 사라진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죽음'이라는 단어와 마주 앉았다.
디자이너는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다. 우리는 돌잔치 초대장을 예쁘게 만들고, 청첩장에 가장 고운 종이를 고른다. 생의 시작과 축복은 이토록 정성스럽게 디자인하면서, 왜 생의 마지막인 '죽음'은 디자인하지 않을까?
왜 영정사진은 꼭 검은 리본에 갇혀야 하고, 부고 문자는 스팸 메시지처럼 건조해야 할까. 내가 그토록 열심히 만들었던 상세페이지들은 제품이 단종되면 사라지지만, 누군가의 삶을 정리하는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
이곳 고성의 파도는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난다.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생각했다. 삶이라는 문장이 아름다우려면, 그 끝에 찍히는 '마침표'가 아름다워야 한다고. 엉망진창으로 갈겨쓴 문장이라도, 마침표를 정갈하게 찍으면 꽤 괜찮은 여운을 남긴다는 것을.
나는 이제 소비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기억되는 마침표를 디자인하고 싶어졌다. 단순히 팔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남기기 위한 디자인을 하기로 했다.
나는 오늘부터 스스로를 '데스 디자이너(Death Designer)'라 부르기로 했다. 거창한 장례지도사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떠나는 길목에, 국화꽃 그림 대신 그 사람이 좋아했던 색깔을 입혀주고 싶을 뿐이다. 두렵고 무서운 죽음이 아니라, '그동안 잘 놀다 갑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위트 있는 엔딩 크레딧을 만들어주고 싶을 뿐이다.
올해 29살, 내년 30살이 되는 난 아직 죽음을 논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장 감각적인 죽음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강원도 고성의 작은 방구석에서, 나는 이제 이별을 디자인해 보려 한다.
이 브런치는 그 기록이자, 나의 새로운 포트폴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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