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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Jun 14. 2023

맛과 향기와 우정을 담은 곳

청주 성안길 카페

6살 때는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첫 터닝 포인트이다. 그때 우리 가족에게 첫 번째 집이 생겼다. 무려 아파트였다. 그전까지는 네 식구가 남의 집 단칸방에서 살았었기에, 그때 나에게 주인 아주머니가 없는 우리만의 집, 게다가 하늘 높이 솟았고(10층) 단지 안에 놀이터까지 있는 아파트는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내게 첫 친구가 생긴 것도 6살 때이다.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 1층에 사는 나와 동갑내기 친구였다. 우리는 유치원에 다니기 전부터 서로 친하게 지냈다. 저녁이 되면 아파트 앞에 나와 엄마들은 아무 데나 걸터앉아 수다를 떨고, 우리는 잡기놀이나 공놀이를 하면서 깔깔 웃으며 아파트를 돌아다니고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여느 친구들이 다 그렇듯이 우리도 서로 싸우기도 하고 곧 언제 싸웠냐는 듯이 자연스럽게 풀고 다시 재미있게 놀고 또 싸우고를 반복했다.


우리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나왔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하교 후에 자주 친구 집에 가서 놀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매우 좋아했는데, 우리 집보다 친구 집에 더 재미있는 동화책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는 책을 싫어했다. 친구 집에 가서 독서에 열중하고 있으면 친구가 와서 같이 안 노냐고 치근거릴 때가 많았다. 그 집에는 장난감도 많았는데, 가장 기억에 나는 건 친구 방문에 달려 있던 그네이다. 나는 그 집에서 우리 엄마와 친구 엄마가 같이 이야기를 나눌 때, 두 분 사이로 멋지게 뛰어내리려다가 턱부터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병원에 가서 턱을 꿰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와 나는 그렇게 6살 때 만나 지금까지 계속 한 동네에 살며 좋은 일 슬픈 일을 나누고 같이 성장해 왔다. 살면서 많은 친구를 만났지만, 서로의 거의 모든 역사와 가족들까지 잘 아는 친구는 이 친구가 유일하다.


친구와 나는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르다. 취미도 성격도 특기도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친구와 내가 찰떡궁합인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커피와 빵, 과자 디저트이다. 나는 커피와 빵을 먹지 않으면 하루종일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커피와 빵에 중독이 된 사람이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맛집은 안 가도 그 지역에서 유명한 카페나 빵집은 꼭꼭 들린다. 어떨 때는 지역에서 유명한 빵집을 가기 위해 여행을 간 적도 있을 정도이다.


친구는 대학생 때부터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다. 카페를 좋아하는 나는 친구가 일하는 카페에 가서 사장님 몰래 친구가 업그레이드해 준 음료를 마시는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그때부터 친구가 따로 카페를 차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서비스를 더 편하게 누릴 수 있고, 친구가 정말 실력이 있기도 했으니까.


사회인이 되고 나서 친구는 본격적으로 바리스타가 되기 위한 길을 걸었다.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다른 도시에까지 가서 수업을 듣고 다양한 커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카페쇼에도 열심히 참여하는 등 커피에 대한 친구의 열정은 갓 내린 커피만큼 뜨거웠다. 친구는 각종 커피 원두로 내린 커피, 본인이 로스팅(생두를 볶아 원두로 만드는 일)하거나 블랜딩(특징이 다른 두 가지 이상의 커피를 혼합해서 새로운 커피를 만드는 것)한 커피를 시음하게 하고 평가를 내려 달라고 했다. 친구가 준 커피는 특징은 달라도 정말 다 맛있었다. 친구에게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최고의 테스터였고, 나에게 친구는 맛있는 커피를 무료로 제공해 주는 최고의 바리스타였다.


어느 날, 친구는 본인이 만든 스콘과 휘낭시에 같은 구움 과자도 내게 주기 시작했다. 친구가 만든 디저트를 먹은 나는 정말 놀랐다. 처음 만들어 보는 거라고 했는데도 정말 사서 먹는 것보다 맛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에게 베이킹을 배워서 사업을 해 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전국의 유명한 제과점을 다니고 인터넷으로도 빵과 구움 과자를 주문하는 내가 봐도 친구가 만든 것은 정말 맛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렇게 제과제빵을 배우기 시작했다. 역시 나는 덕분에 '계' 타게 되었다. 친구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본다는 목적으로 가끔 내게 무료 구움 과자를 주었고, 친구에게 돈을 주고 내가 먹고 싶은 걸주문하면 내 기대를 훨씬 넘는 맛과 양으로 돌려줬기 때문이다.


내가 하노이에 있을 때, 하노이도 물론 맛있는 빵과 과자는 많았지만 내가 즐겨 먹던 스콘과 휘낭시에 등은 없어 친구에게 돈을 보내고 직접 주문했다. 그러자 친구는 자신이 직접 블랜딩한 커피 티백과 함께 내가 보낸 가격을 훨씬 넘을 것 같은 양의 스콘과 휘낭시에를 하노이로 보내 줬다. 지인들과 나눠 먹으라면서 말이다. 동료와 지인들에게 나눠 주었는데 다들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답해서 내가 괜히 뿌듯했다.


그런 친구가 올해 4월, 드디어 오랜 기다림과 노력 끝에 카페를 차렸다. 카페 이름은 'FREIGHT(프레이트)', 청주 시내 성안길에 있는 카페이다. 내가 베트남에서 유학 중일 때 차린 카페인데, 귀여운 강아지 캐릭터와 노란색과 갈색이 어우러진 디자인, 은은한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카페이다.


카페 프레이트 내부


나는 개업 선물을 베트남에서 사 갔다. 베트남 커피핀(커피 드리퍼)과 커피잔, 그리고 하노이에서 산 엽서이다. 친구는 내 선물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다행히 선물이 카페와 잘 어울리는 듯하다. 당당히 인테리어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친구가 내려 준 드립 커피는 역시 맛있었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부드러운 커피 향이 입안에 맴돌며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디저트 또한 맛있었다. 매일매일 디저트 종류가 바뀌는데, 무화과 크림치즈 휘낭시에와 바질 토마토 휘낭시에는 그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이다. 친구라서가 아니라 커피와 디저트가 맛있어서 그날 나오는 디저트를 확인하고 카페에 출석한다. 때로는 초콜릿의 달달함과 씁쓸함이 느껴지는 커피, 때로는 복숭아향과 포도 향이 나는 커피 등 다양한 커피를 마시면서 디저트를 한 입 먹으면, 입안에 퍼지는 커피 향과 달콤함에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렸을 적 나는 친구의 집에서, 지금은 친구의 카페에 가서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우리의 우정은 어느새 27년을 넘어가고 있다. 27년 동안 수많은 만남도 있었고 수많은 헤어짐도 있었지만, 친구와 나는 그 세월을 계속 같이 살아가고 있다. 인연의 끈이라는 것은 때때로 신기한 것 같다. 어떤 인연은 이어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어지지 않고, 친구와 나처럼 또 어떤 인연은 특별한 노력이 없어도 계속 이어진다. 나는 카페를 좋아하고 친구는 카페 사장님이 되었다. 친구의 마음은 베트남으로 배달되었고 나는 베트남에서 내 마음을 가져와 친구에게 선물했다.


네이버에 검색해 보면 'FREIGHT'는 '(어떤 특정한 분위기나 어조를) 담다'는 뜻이라고 나온다. 친구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는 커피와 디저트에는 손님이 맛있게 드시기를 윈하는 진심이 담겨 있다. 나에게는 27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우정이 담겨 있다. 오늘도 나는 친구의 카페에서 쌉싸름한 감칠맛과 고소한 풍미가 느껴지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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