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에타 마리아> 서평
나는 학창 시절부터 국사, 세계사를 가리지 않고 역사를 아주 좋아했다. 대학교에 입학해 전공을 선택할 때도 역사학과를 선택할지 국문학과를 선택할지 고심했을 정도이다. 책도 역사에 관련된 책을 자주 읽었다. 그래서 브런치에서도 역사와 관련된 글을 자주 읽었고, 작가님들 중 평소 애독하던 Rina Ka 작가님의 <헨리에타 마리아> 책이 텀블벅 펀딩을 시작했을 때 바로 예약했다.
작가님이 책을 만드시는 과정을 브런치를 통해 계속 봐 왔고, 작가님을 계속 응원해서 그런지 펀딩이 목표 금액을 훨씬 넘어 성공했을 때 정말 기뻤다. 하지만 나는 현재 베트남에 있어서 한국에서 책을 받을 수가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작가님께서 나 같이 책을 당장 못 받는 독자를 위해 암호가 걸린 PDF 파일로 책을 주셨다. 덕분에 틈틈이 책을 읽고 이렇게 리뷰를 쓸 수 있었다. 명화집과 요약본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는데,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작가님께서 작품을 위해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약본이지만 79장이나 되는데,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체 덕분인지 술술 읽히는 편이었다. 고생을 많이 하신 작가님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서양 역사 소설이 두 권 있다. 필리파 그레고리가 쓴 <블러디 메리>와 <천일의 앤 불린>이 바로 그것이다. <블러디 메리>는 훗날 엘리자베스 1세가 되는 엘리자베스 공주와 메리 1세의 시녀였던 유대인 소녀 '한나'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엘리자베스와 메리 두 자매 사이에 도는 팽팽한 긴장감과 파란만장한 역사적 현장 안에서 한나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천일의 앤 불린>은 영화 <천일의 스캔들>의 원작으로, 헨리 8세의 두 번째 아내이자 영국 종교개혁의 단초가 된 앤 불린의 동생 메리 불린이 주인공이다. 책은 메리 불린이 헨리 8세의 첫 번째 아내 캐서린의 시녀였을 때부터 앤 불린이 처형당할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내용도 흥미진진하고 몰입감 있기는 했지만, 이 소설을 다른 소설에 비해 더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책을 읽으면서 16세기 당시 영국의 왕실 풍경을 마치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사진도 그림도 없지만 글로 묘사된 것을 읽으며 16세기 왕실 사람들이 입었던 옷, 음식, 왕실 풍경, 의례 등을 상상했고, 나 또한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간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 역사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아닌 그 곁에 있던 누군가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블러디 메리>는 가공의 인물 한나가, <천일의 앤 불린>은 실제 인물이지만 역사에서 전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메리 불린이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역사적인 사건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사람 혹은 사건들을 독자들이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알려주고 있고, 역사적으로 중심이 되는 인물을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헨리에타 마리아>도 읽으면서 위 책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헨리에타 마리아>를 보면 인물들의 옷치장, 주변 풍경, 당시 영국과 프랑스 왕실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그런 문장을 읽으며 나는 역시 17세기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헨리에타는 프랑스의 딸답게 결혼식 날에 걸맞은 위엄을 갖추고 방에 들어왔다. 금과 은을 두텁게 바르고 금색 백합 문양을 군데군데 수놓고 다이아몬드와 다른 보석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덕택에 그녀의 아이 같은 면모가 살짝 가려졌다. -34p-
오후 3시 헨리에타는 루브르궁을 떠나 잉글랜드로 향한 여정에 올랐다. 헨리에타의 오라비는 검소한 잉글랜드 인을 현혹하기 위해 누이의 차림새에 돈을 아끼지 않았고, 심홍색 벨벳을 가지고 누이가 개인적으로 쓸 잡동사니를 포장했으며 황금빛 자수로 쿠션과 커튼을 수놓아 잡동사니가 더 빛을 발하게 했다. 멋진 노새 두 마리에게 짐을 실었는데, 노새도 붉은 벨벳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하얀 깃털을 머리에 꽂은 채 흥겹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44p-
또 주인공인 헨리에타 마리아는 역사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나 또한 찰스 1세와 잉글랜드 내전, 크롬웰은 알고 있었어도 헨리에타 마리아는 알지 못했다. 헨리에타는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지만 남편과 같이 처형당하지 않았고 찰스 1세나 크롬웰에 비해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잉글랜드 내전이 헨리에타의 입장에서 진행되어 역사를 공부할 때와는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렇게 소외되었다면 소외된 헨리에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 잘 몰랐던 인물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낯선 영국에 와서 남편에게 홀대를 받고, 본국인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정치적 이해관계 실타래 중간에 얽혔을 때 헨리에타의 마음은 어땠을까? 헨리에타와 찰스는 정략결혼을 했고 종교도 달랐고 여러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이였지만, 결국에는 서로 진실된 사랑을 했다. 남편을 구하기 위해 외국에서 노력했지만 결국 처형되었다는 사실을 듣기밖에 할 수 없었던 헨리에타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책에서는 인물들이 실제로 했던 대화와 주고받은 편지가 몇 번 나오는데, 그것들을 통해 당시 그 사람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느껴볼 수 있다.
"무슈 망드. 저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숨길만큼 제 감정을 숨겼어요. 죄은 취급받느라 아무에게도 고통과 불평을 털어놓지도, 쓰지도 못했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이름으로, 절망에 빠진 불쌍한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고 슬픔을 덜어주세요. 전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존재예요. " - 헨리에타 마리아가 망드 주교에게.
잉글랜드 내전은 찰스 1세와 의회의 대립으로 일어났다. 주관점인 관점으로 봐도 의회를 무시해서 내전이 발발하게 만든 찰스 1세에게 책임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역사적인 사실을 떠나 헨리에타의 이야기만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 남편을 구하기 위한 헨리에타의 노력과 비통했을 그녀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추위와 배고픔, 고국이 그녀가 선택한 나라와 똑같은 길을 달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더 끔찍한 게 있었다. 아이를 생각하고 무엇보다 남편을 생각하느라 가슴이 달아버릴 지경이 됐을 때 진짜 불행했다. 낮에 어느 정도 불안감을 진정시켰지만, 고요한 밤이 되면 불안감에 짓눌리곤 했다. - 295p(프랑스 망명 시절)
외국을 떠돌며 가지고 있는 보석들을 팔아서 남편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것 때문에 평판은 더 나빠졌다. 그리고 결국 남편도 처형당하고 자식도 먼저 떠나보냈다. 그나마 자식인 찰스 2세가 다시 왕이 되었지만, 과연 말년에 행복했을까? 책 표지의 헨리에타 마리아의 초상화는 처음에 봤을 때는 아름답고 청순해 보였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면 슬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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