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글램핑, 그리고 기차 여행

by 한국어교원

2025년 12월 21일~22일, 수료식을 마치고 우리 문화원 세종학당 최 선생님과 윤 선생님, *하노이 3 세종학당의 한 선생님과 하노이 근교인 타이응우옌에 있는 모젠 리트리트(Mojen Retreat)라는 글캠핑장에서 1박 2일을 했다. 전에 하노이 세종학당 파견교원 모임 때 한 분이 이곳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추천하셔서, 최 선생님이 그럼 학기가 끝나고 연말 모임 겸 시간 되는 교원들끼리 같이 가자고 모임을 주도하셨다.

(*하노이에는 세종학당이 1~3, 그리고 문화원까지 총 4개가 있다.)


한국에서도 글램핑을 가고 싶었지만 항상 생각만 하고 가지는 못해서 이번 여행이 기대가 됐다. 하지만 학기 마무리에, 1월에 있는 학회 발표 자료 준비에, 개인적인 고민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최 선생님이 차량과 글램핑장을 예약하시고 회비도 관리하셔서 내심 죄송했다.


구워 먹을 고기를 포함해서 저녁과 아침은 글램핑장에서 다 제공해 주지만, 혹시 먹을 게 부족할까 봐 여행 전날 윤 선생님과 한 선생님과 빈컴 쩐지흥센터 마트에서 글램핑장에서 먹을 추가 고기 소시지, 야채, 과자, 와인 등등을 샀다. 장 본 것들은 마트하고 가까운 한 선생님 댁에 보관하고 쇼핑센터에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아이쇼핑도 하고 저녁도 먹었다. 벌써부터 재미있었다.


21일에 최 선생님이 예약한 택시를 타고 글램핑장으로 떠났다. 먼저 나하고 윤 선생님이 한국문화원 정문에서 택시를 탔고, 이어서 한 선생님, 최 선생님 순으로 픽업했다. 매연으로 인한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노이를 벗어나자마자 맑고 파란 하늘이 보였다. 혹여나 계곡에서 글램핑을 하는데 날씨가 많이 추울까 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날씨까지 따뜻한 편이었다. 타이응우엔까지는 약 2시간이 걸렸는데, 서로 웃고 떠들고 과자도 먹고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글램핑장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우리 텐트 앞에는 계곡이 흐르고 있었는데, 계곡에 앉아서 발 담그고 놀 수 있게끔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다. 뒤쪽에는 천막 아래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과 장작불 피우는 화로가 있었다. 텐트 내부는 호텔처럼 좋았다. 이부자리도 깨끗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디자인에 레몬글라스 향기도 퍼지고 있었다. 또 안에 전기난로가 있어서 따뜻했다. 난로 화력이 좋아서 온도가 많이 떨어지는 밤에도 제일 낮은 온도로 설정하고 잘 정도였다. 화장실은 숲 속이니만큼 기대를 안 했었는데, 생각보다 디자인도 세련되고 깨끗해서 놀랐다.


캠핑장 숙소.jpg
모닥불 피우는 곳.jpg
캠핑장 계곡.jpg
텐트 안과 외부


우리는 신이 나서 짐을 풀고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고 놀았다. 엄청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숙소 뒤쪽 테이블로 가서 우리가 가져온 과자하고 와인을 마시고 또 담소를 나눴다. 평소에 과자는 한 달에 한 번 살까 말까 하고, 사 먹어도 큰 봉지는 질려서 다 못 먹는데, 같이 떠들면서 먹는 사람이 있으면 왜 이렇게 잘 들어가는지. 장을 볼 때는 과자를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순식간에 다 먹었다.


윤 선생님이 가져오신 할리갈리 게임도 했는데, 이게 이렇게나 승부욕을 끌어올리는 게임인지 몰랐다. 한 손으로는 귀를 잡고, 한 손으로는 카드를 내고, 판에 나온 카드의 과일 합이 다섯 개면 귀를 잡고 있던 손으로 책상 가운데 있는 종을 빨리 치면 되는 간단한 규칙인데 눈으로 인식된 게 행동으로 가는 게 왜 이렇게 느린지... 나하고 한 선생님, 최 선생님은 할리갈리 초보고 윤 선생님은 고수라 윤 선생님이 계속 연승했다. 윤 선생님은 인식과 행동이 동시에 되는 사람 같았다. 나중에는 밸런스 조절을 위해 윤 선생님이 빠지고 남은 세 사람이 게임을 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호기심으로 시작된 게임이 과열되어 고성과 비명(?)이 오갔다. 글램핑장에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오 아깝다! 쌤 왜 이렇게 빨라요!"

"쌤이 느린 거예요! 지금은 쌤이 기회였는데!"

"다음엔 꼭 이길 거예요. 다시 해요!"

"어, 귀 잡은 손으로 쳐야죠. 방금 거 무효."

"다섯 개!!!!"

"아아악!!!!"

"아 깜짝이야. 이게 뭐라고 비명까지 질러요 ㅋㅋㅋ"

"와, 방금 쌤 제 손등 진짜 세게 때렸어요."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할리갈리.jpg 할리갈리 게임(출처: 코리안보드게임즈)


거의 한 시간을 넘게 게임을 하다가 다들 손등이 벌겋게 되고 기력이 떨어져서야 게임을 접었다. 게임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을 먹을 때가 됐다. 직원이 화로에 불을 피우고 저녁으로 먹을 야채와 고기를 갖다 줬는데 굳이 우리가 추가로 고기를 안 사도 됐을 만큼 양이 충분했다. 다만 우리가 소시지를 추가로 사 온 거는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숯불에 갓 구운 소시지는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모닥불에 소시지와 고기를 구워 먹고, 반미 빵도 구워 먹고, 모닥불 모여 앉아 불멍도 했다.


캠핑장 저녁식사 고기.jpg
캠핑장 저녁식사.jpg
고기.jpg
저녁으로 먹은 바베큐
모닥불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침 식사로 계란과 라면 등이 와 있었다. 한 선생님과 최 선생님은 아침을 드시고 이미 계곡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계셨다. 나하고 윤 선생님도 아침을 먹고, 또 할리갈리를 하고, 택시를 타고 하노이로 복귀했다. 원래 최 선생님 댁, 한 선생님 댁, 나와 윤 선생님 집 순으로 택시에서 내릴 예정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아쉬워서 최 선생님 댁 근처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아보카도 커피까지 마시고 헤어졌다. 아보카도 커피는 하노이에서 옛날부터 유명했다던데 처음 먹어 봤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비 소식이 조금 있어서 걱정했는데 비도 안 오고, 겨울인데 춥지도 않고, 캠핑장도 좋고 손님도 우리만 있고, 같이 온 사람들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부족한 게 없는 글램핑이었다.


캠핑장 아침.jpg
아보카도 커피.jpg


글램핑을 다녀오고 며칠 후에는 '하노이에서 박닌 성까지 왕복으로 다니는 '하노이 5 Cua(5개의 문) O 2층 헤리티지 기차'를 탔다. 2025년 9월에 생긴 관광 상품으로, 계약 종료로 귀국이 얼마 안 남은 윤 선생님이 귀국하기 전에 꼭 타 보고 싶다고 제안한 여행이었다. 이번에는 우리 문화원 파견교원들끼리만 갔다.


하노이 헤리티지 기차.PNG 하노이 5 cua O 2층 헤리티지 기차(출처 : Klook Travel)
기차여행 설명.PNG 하노이 5 cua O 2층 헤리티지 기차 설명 (출처 : Klook Travel)


기차는 하노이역에서 출발해서 박닌까지 간 후에 박닌에서 유명한 사원인 덴도(Đền đô) 사원을 방문한다. 거기에서 배 위에서 아오자이를 입은 남녀가 서로 주고받으며 노래를 부르는 베트남 전통 공연인 꽌호(Quan họ)를 구경한 후에 다시 하노이로 오는 기차를 타고, 중간에 롱비엔 역에 내려서 기차역과 다른 객실 구경을 한 후에 하노이 역으로 오는 일정이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간식도 제공되고 베트남 전통 공연인 까쭈(Ca trù)와 쩨오(Chèo) 공연을 보여준다. 객실은 5개의 테마가 있는데, 각 객실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특색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우리는 그중 '꺼우저이(Ô Câu Giấy)' 테마 객실을 예매했다.


나와 최 선생님, 윤 선생님 모두 아오자이를 가지고 있어서 이날 아오자이를 입고 기차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침 8시 기차를 예매해서 7시 45분까지는 기차역에 도착해야 했다. 멀리 사는 최 선생님은 따로 택시를 타고 오고, 나는 윤 선생님 집까지 택시를 타고 윤 선생님과 합류 후에 같이 기차역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윤 선생님 집까지는 길이 안 막히면 택시로 5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이럴 수가, 택시를 7시 20분에 탔는데 10분이 지나도 반의 반도 못 가는 것이었다. 이른 아침에 이렇게나 차가 막힐 줄 몰랐다. 윤 선생님 집에 들렀다가 가면 기차를 놓칠 것 같아 윤 선생님한테 기차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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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외부.jpg
하노이역 내부(좌)와 우리가 탄 꺼우저이 기차칸(우)


기차역에 도착하니 7시 45분이었다. 윤 선생님은 다행히 먼저 와 있었다. 문제는 멀리 사는 최 선생님이었다. 7시 50분이 돼도 하노이역까지 3km이나 남았는데, 가뜩이나 늦잠 자서 약속했던 아오자이도 못 입고 늦게 출발했는데 길이 심각하게 막히고 있어서 차가 거의 안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일단 7시 55분까지 밖에서 기다리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기차 내부는 감탄이 나올 만큼 정말 예뻤다. 설레는 마음 반, 아직 도착 못한 최 선생님이 걱정되는 마음 반이었다. 결국 택시에서 내려서 오토바이로 갈아탔는데도 최 선생님이 8시까지 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기차는 신뢰되면서도 야속하게도 8시 정각에 출발했고, 결국 최 선생님은 택시를 타고 박닌의 덴도(Đền đô) 사원까지 가서 거기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나 같으면 포기하고 완전 우울해진 상태로 그냥 집에 갔을 텐데, 우리와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약 1시간을 택시를 타고 박닌까지 가기로 한 최 선생님이 대단했다.


윤 선생님은 역무원한테 우리가 가는 사원 위치를 구글 지도로 확인받고 최 선생님께 사원 주소를 보냈다. 우리는 분홍색 아오자이를 입고, 학생이 베트남 스승의 날에 윤 선생님과 나한테 선물해 준 분홍색 베트남 전통 모자 농라(Nón lá)로 객실 여기저기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우연히도 똑같이 분홍색 아오자이를 가지고 있었고, 똑같이 농라를 챙겨 왔다.


박닌으로 가는 길에는 간식으로 꼼(cốm)이 제공됐다. 우리는 소금 커피까지 주문해서 마셨는데, 소금커피는 한 모금 마시자마자 눈이 확 커질 정도로 맛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사진을 찍다가 '과연 박닌에서 최 선생님과 무사히 합류할 수 있을까' 서로 걱정하다가, 공연을 감상하다가, '최 선생님 택시비 너무 많이 나와서 어떡하지' 걱정하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감탄하며 또 사진을 찍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박닌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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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꼼.jpg
기차역에서 단독샷.jpg
기차에서 먹은 꼼과 아오자이 입고 찍은 내 뒷모습


기차에서 내리니 바로 우리를 태우고 사원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여기에서 버스 타고 사원까지 30분 정도 걸릴 테니까 사원에서 최 선생님이랑 만날 수 있겠죠?"

"그럴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상하다. 버스가 10분도 안 걸려서 사원에 도착한 것이었다. 구글 지도상으로는 30분 거리였는데? 하지만 최 선생님도 사원에 거의 도착했다고 하고 사원에서 구경하는 시간은 10시까지로 1시간이나 돼서 별 걱정은 안 했다. 윤 선생님과 사원을 구경하고 꽌호 공연도 구경하는데, 최 선생님이 사원 사진 한 장을 보내며 이렇게 문자를 보내셨다.


"쌤들, 여기 맞아요?"


응? 우리가 온 길에는 이런 건물이 없었는데? 어디를 찍으신 건가 확인하려고 사원 입구가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때 문자를 확인하던 윤 선생님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한테 달려왔다.


"쌤! 그 사원이 아니었어요! 덴도(Đền đô) 사원이 두 개였어요! 아까 직원한테 확인까지 받았는데 직원이 잘못 알려줬어요. 어떡해요 ㅠㅠ"


이럴 수가... 한 시간이나 택시를 타고 왔는데 잘못된 주소로 가셨다니! 아까 버스로 예상보다 빨리 사원에 도착했을 때 이상한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최 선생님은 다시 택시를 타고 이쪽 덴도 사원으로 오신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하고 윤 선생님은 마음이 너무 급해졌다. 남은 시간은 30분, 최 선생님이 가신 도 사원에서 여기까지 택시로 30분! 윤 선생님과 나는 그 와중에도 꽌호 공연을 구경하며 서로 사진을 찍었지만, 얼굴은 어두웠다. 머릿속에는 최 선생님이 과연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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꽌호2.jpg
째오 공연.jpg
사원과 꽌호 공연


10시에는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우리는 1분 1초가 지날 때마다 마음을 졸였다. 그리고 9시 55분에 최 선생님한테 메시지가 왔다.


"도착했어요."


우리는 사원 입구로 달려갔다. 멀리서 최 선생님이 진이 빠진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어제도 본 사람인데 왜 이렇게 반가운지. 우리는 "선생니임!" 하면서 달려갔다. 꽌호 공연은 이미 끝났고 우리랑 같이 온 사람들도 다 버스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급하게 인솔 직원에게 부탁해서 단체 사진을 찍고 셀카도 찍었다. 엇갈리지 않고 만나서 사진 한 장이라도 남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최 선생님은 특별한 기차 여행이 아닌 하노이-박닌 택시 드라이브만 할 뻔했다.


기차에 다시 타니 아까 남겨 논 최 선생님이 몫의 꼼은 치워져 있었고 새로운 간식이 있었다. 이건 베트남 길거리에서 많이 파는 도너 비슷한 건데 이름을 잊어버렸다. 아무튼 이 간식을 먹고 또 기차에서 사진을 찍고, 또 공연을 구경했다. 이번에는 셋이 다 같이 있어서 마음 편하게 기차 여행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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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주2.jpg
돌아오는 기차 간식.jpg
까주(좌), 째오(중간) 공연. 기차 간식(우)


돌아오는 길에는 롱비엔 역에 들러서 기차 구경도 하고 사진을 찍는 시간이 있었는데, 우린 기차 후미에 가서 질릴 때까지 사진을 찍고 밖에 나와서 역무원들이랑 사진도 찍었다. 화보 촬영이라도 하듯이 사진을 찍은 것 같다. 윤 선생님은 사진을 잘 찍고, 윤 선생님한테 사진을 배운 최 선생님도 사진을 잘 찍어서 다행이었다. 옆에서 다 예쁘게 찍어 주니... 나는 사진을 잘 못 찍어서 윤 선생님한테 혼났다. 그런데 혼나면서 찍다 보니 우연인지 실력인지 예쁘게 찍은 것도 있긴 해서 뿌듯했다.


승무원들과 사진.jpg
롱비엔역에서.jpg
기차에서 단독샷.jpg
롱비엔 역에서 찍은 사진들


마음이 잘 맞는 동료 선생님들과 이렇게 즐거운 경험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최 선생님이 기차를 놓쳐서 고생하셨지만 못 만났으면 아쉬움과 미안함만 남은 여행이었을 텐데 극적으로 합류해서 더 특별하게 재미있는 기억거리가 됐다. 언제 이런 경험을 다시 해 보겠는가?


이제 윤 선생님이 귀국하셔서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또 베트남에서 이렇게 셋 아니면 다른 선생님들과도 같이 여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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