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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전 Jun 27. 2020

별걸 다 궁금해 하는 작가, "기적의 항해"를 만나다

메러디스 빅토리, 기적을 쫓는 여정 1  

다시 수도원에 왔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70년 전,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기적을 쫓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우리 삶에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어떤 일이 진짜 현실이 되는 순간을 '기적'이라 부르다면 작년에서 올해까지 내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도 작은 '기적'이라고 부를 만 하다.


가을이 마지막 코트 자락을 길게 드리웠던 작년 11월 말, 나는 바쁜 한해를 정리하고 재충전을 하기 위해 이곳,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피정의 집엘 왔다. 키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수도원 곳곳에 낙엽들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바스락 거리며 말라가는 낙엽들이 내는 향기가 커피향보다 더 향기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70여명의 검은 색 수도복을 입은 수도자들이 미사때마다 오직 파이프 오르간에 의지해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는 나의 영혼을 사로 잡았다.


수도원의 성스롭고 고요한 분위기에 매료된 나는 혼탁한 세상살이에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자주 이 곳을 찾아야 겠다는 다짐을 속으로 조용히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했던 순간조차도 불과 두 계절을 건너 일때문에 이곳을 다시 방문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어 우리 삶이 더욱 드라마틱한 것처럼, 그때 나도 앞으로 내게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겨울과 봄을 지나 여름의 문턱에 나는 다시 수도원 피정의 집에 있다. 이번에는 쉼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난 100여년에 걸쳐 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독일과 한국, 미국에 걸쳐 일어난 '기적의 여정'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이 모든 일은 작년 가을, 이 곳 수도원 역사관에서 시작됐다. 


수도원 피정의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카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신청만 하면 누구나 머물 수 있다.( 1박 5만원,삼시세끼 식사 포함) 피정을 온 이들은 각자 개별적으로 움직이지만 식사만은 정해진 시간에 식당에 모여 함께 하게 된다. 작년 가을, 처음 함께 모여 식사를 하던 시간에 수사님께서 식당 맞은 편에 역사관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식사를 마치고 둘러보시라는 말을 했다. 식사를 마치자 함께 식사를 한 사람들은 전부 역사관을 거치지않고 다 나가는데 나는 혼자 역사관을 찾았다.


방송작가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라면 세상 모든 것에 궁금증을 가지는 것, 궁금해야 돌아보게 되고 돌아봐야 발견하게 된다. 새로운 발견은 곧 방송의 좋은 아이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특별히 방송 아이템을 찾자는 의도가 아니라 단지 역사관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가 보기로 맘 먹었다. 식당 맞은 편에 있다는 역사관은 팻말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어떤 방이 역사관인지 헤메고 있자 수사님이 한 곳의 문을 열어주었다. 역사관 안은 전등도 꺼져 있어 깜깜했다. 수사님께서 전등을 밝히자 주변이 환해졌다.


나의 여정의 시작은 어쩌면 수사님이 어두운 역사관안에 전등을 밝히는 바로 그 순간, 시작 된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관이라고 하지만 특별한 유물들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선을 끄는 것은 벽에 전시돼 있는 흑백사진들이었다. 한눈에도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오래된 흑백 사진들은  순식간에 이 공간이 결코 평범한 공간이 아님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사진들을 한장 한장 찬찬히 보며 설명을 읽어 나갔다. 대부분 한국전쟁 이전 1930년대, 40년대 사진들이었다. 모든 사진들이 나의 시선을 끌었지만 그 중 유독 눈에 띄이는 것은 1930년대 북한 원산과 덕원에 있었다는 수도원의 사진이었다. 덕원 수도원에는 현대적인 시설의 인쇄소가 있었고, 학교가 있었고, 심지어 성당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다.

함경남도 덕원에 있던 성 베네딕도수도원 인쇄소 사진

사진이 보여주는 당시 시설이 지금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현대적인 것이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1930년대 북한에 이런 시설을 갖춘 수도원과 성당이 있었단 말인가? 나는 덕원에 있던 성 베네딕도 수도원이 바로 이 왜관수도원의 모원이라는 것을 이 역사관에서 처음 알았다. 한국전쟁 때 덕원 수도원이 강제로 해체가 되면서 그들 중 살아남은 일부가 내려와 왜관에 정착한 것이다.

1940년대 함경남도 덕원에 있던 덕원 수도원

그 외도 수도원 역사관에는 놀라운 이야기를 담은 사진들이 많았다. 이 이야기들은 앞으로 기적을 쫓는 여정을 계속 써 나가면서 하나씩 밝히겠다. 나는 역사관을 빠져 나와 2박 3일 동안 피정의 집에 머물면서 호기심에 덕원 수도원에 관한 기사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방송작가들은 검색의 귀재들이다. 호기심이 많을수록 검색은 땅 속 감자줄기처럼 줄줄이 다음으로 이어지고 운이 좋으면 숨겨진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찾아내는데 이르곤 한다. 나는 덕원수도원에서 시작된 호기심으로 검색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그러다가 수도원에서 미사시간을 알릴 때마다 울리는 은은한 종소리처럼 감동의 물결이 가슴 전체로 퍼져나가는 하나의 이야기와 마주했다.


그것은 바로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에서 출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몰고 부산으로 내려온 레너드 라루선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배는 60인 정원의 화물선이었다.


북한까지 진출해 있는 연합군에게 전쟁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흥남부두에 들렀던 그 배는 1950년 12월 23일, 14,000명의 피난민들을 태우고 남쪽으로 운명의 항해를 시작한다. 한가로운 항해가 아니라 포탄과 기뢰가 난무하는 전쟁의 바다를 헤쳐 14,000명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사명을 띈 목숨 건 항해, 그 결단을 내린 것은 그 배의 선장 레너드 라루였다.  


배는 다행히 1950년 12월 25일 성탄절 아침에 거제도에 무사히 닿는다. 14,000명은 한 명도 다치지 않고 거제도에 내린다. 목숨 건 '운명의 항해'는 다행히 '기적의 항해'로 마무리 된다.  사람들은 이 항해를 <크리스마스의 기적> 이라 부른다. 이 스토리에는 이렇게 서너줄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레너드 라루 선장은 후에 수사가 되었고 라루 수사의 이야기는 지금의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과도 이어진다. 이야기는 무려 대한민국 근현대 100여년에 걸쳐 이어진다.

(좌) 메러디스빅토리호를 운항한 선장 레너드 라루                                               (우)수사로 귀의한 레너드 라루

늦가을에 이 이야기를 가슴에 품은 나는 두세달에 걸쳐 이야기를 취재하고 풍성하게 만들면서 다듬었다.그리고 스무장에 달하는 기획안을 썼다. 그리고 올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관하는 방송기획응모에 기획안을 제출했다.전국에서 모인 기획안들을 놓고 한달에 걸쳐 1,2차의 치열한 심사가 이루어졌다. 나는 이 과정들을 다 통과해 최종 당선 연락을 받았다. 일년 동안 이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 기회가 기적적으로 내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첫 촬영을 경북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시작한다. 1909년 독일 오띨리엔 수도원에서 처음 쏘아올린 이야기의 화살은 함경남도 덕원에 닿고 다시 미국 뉴욕으로 이어지다가 대한민국 왜관에 까지 닿는다. 신앙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전쟁을 만나고 인류애와 맞딱뜨린다. 그리고 마리너스수사의 성스러운 삶에 닿는다.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원의 역사에 대해 인터뷰중인 김구인보스코 신부님

이 흥미롭고 가슴 뛰는 이야기를 만들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 또한 기적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 작은 '기적'같은 시간으로 레너드 라루 선장이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운항해 14,000명을 살린 시간으로, 결국은 2001년 뉴튼 수도원을 구해내는 시간에 가 닿으려한다.


무려 100여년에 달하는 기적의 시간을 쫓는 여정은 메러디스호가 거제도에 닻을 내렸던 크리스마스까지 계속될 것이다. 나의 여정 또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처럼 기적의 여정이 되길 바라며, 지금 이곳, 왜관 성베네딕도수도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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