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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전 Dec 10. 2020

어디에도 없는,
어디에나 있는 그들의 이야기

-메러디스 빅토리호, 기적의 사람들 2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 10km 앞까지 추격한 중공군의 쏟아지는 포탄과 총탄을 피해 필사의 탈출을 하는 배가 있었다. 미국 선적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 60명 정원에 불과한 그 배의 화물칸에는 14,000명의 피난민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부산, 세계 해양 역사상 '가장 작은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로 기록돼 있는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이야기'는 지금 다큐멘터리로 제작 중이다.  

   

앉아서 쓰는 글은 묘사만 잘한다면 앉아서 백두산 기행을 다녀올 수도 있지만, 방송은 실체를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 그래서 실제 방송 한 편을 만들려고 하면 엄청난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런데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야 하는 내가 첫 번째 부딪힌 난관은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위 말해서 뭔가 찍을 만한 게 국내에는 없었다. 그러던 중 웹서핑을 하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14,000명의 피난민들이 메러디스를 타고 오던 당시의 모습이 모형으로 실감나게 만들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바로 전화를 했다. 그러나 코로나 거리두기 강화로 박물관이 문을 닫고 있어 접근이 불가했다. 


얼마 후,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박물관을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모형은 없었다. 올해 한국전쟁 70주년 특별 전시 리모델링을 하면서 기존 메러디스 모형을 해체해 버렸다는 것이다. 14,000명이 타고 오는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내부를 제법 실감 나게 제작한 모형은 방송으로는 정말 좋은 소스라고 생각했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아, 모형이라도 어디 보관이라도 좀 해 두시죠? "라는 내 말에 대한 답변은 이것이었다.

 

"아, 그건 역사적인 유물이 아니라 저희들이 모형으로 제작한 거라서 보관할 기준에 해당하는 유물이 아니에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모형, 화물칸마다 피난민들이 가득 차 있다.

     

분명히 맞는 말이긴 한데, 그나마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실체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전시물마저 사라졌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촬영만 할 수 있으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끌 만한 전시물인데...


그렇다면, 대체 이 다큐멘터리는 어디서 시작을 해야 할까? 일단 사람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14,000명이나 배를 타고 내려왔으니 그들은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겠지, 그들을 추적해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좁아서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안다’는 말은 방송 쟁이들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작은 실마리 하나를 들고 열흘 정도만 전화통을 붙들고 있으면 마치 셜록홈즈같은 추리력으로 고구마 줄기처럼 끌려 나오는 대강의 인맥들을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의 추적은 연락을 할 때마다 70년의 세월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생한 증언자들 중 상당수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생존해 있는 몇 분은 치매에 걸려 인터뷰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중에 15살에 메러디스 호를 타고 내려와 수녀가 되신 한 수녀님의 소식은 너무 안타까웠다. 함께 생활하시는 수녀님들에게 항상 고향 이야기를 하며 고향을 그리워하고 통일을 기다리셨다는 그분도 치매로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아직은 살아계신 분들을 하루라도 빨리 만나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국내에 계신 분들을 빠르게 추적하는 동시에 미국에 있는 메러디스 호의 당시 승선자들 가운데 생존해 계신 분들을 파악해 메일로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90세를 넘긴 그들이 이 코로나 시국에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지도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메일을 보낸 지 하루 만에 올해 94세인 '로버트 러니'에게서 답장이 왔다. 당시 2등 항해사로 레너드 라루 선장을 가까이서 보좌했던 '로버트 러니'는 라루 선장이 수사가 된 후에도 종종 찾아뵈며 마지막까지 가까이서 모셨다. 또 다른 선원 '벌리 스미스 '씨에게서도 하루 만에 답장이 왔다.    

그 날을 잊지 않고 있다고,
평생 잊을 수 없었다고.
만나게 되면 그 날 일을 상세하게 들려주고 싶다고.     
1950년 12월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원들, 왼쪽부터 로버트 러니, 멜 스미스, 오른쪽 끝 벌리 스미스 3명 모두에게 답장이 왔다.

우리는 잊고 있었지만 그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마치 문신처럼 가슴 깊이 선명히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다큐멘터리의 출발선이 정해진 셈이다. 1950년 그해 겨울,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탔던 사람들, '지옥'의 항해를 '기적'의 항해로 만든 사람들, 그들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같은 시대를 헤쳐나온 이들 대부분에게는 비슷한 경험이 '있을 수도 있는' 그들의 이야기, 그들이 가슴 깊이 담아온 70년 세월의 이야기가 얼마나 절절하고 가슴 아프면서도  감동적 일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렜다.     

 

늦었지만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오른 나의 항해도 그들의 항해처럼 결국 ‘기적’으로 마무리 되기를 기도하며 조심스레 항구를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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