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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전 Dec 10. 2021

벌레 먹은 잎과 벌레 먹인 잎의 차이

-동시집 < 책 알레르기>를 읽고

                        추수진


벌레 먹은 잎이라고 하지 마세요


애벌레를

나비를

키운 잎이에요


벌레 먹인 잎이에요


동시를 읽자마자 가슴 한편에 따스하고 환한 등이 하나 밝혀졌다. 

'그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이게 시인의 눈이지'  


채소를 손질하다 행여 애벌레 하나라도 나오면 나는 기겁을 하며 잎을 멀리 내동댕이치고 뒷걸음질을 치는데 시인은 벌레 먹은 잎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나보다. 잎 한편에서 꼬물꼬물 기어 나온 애벌레도 오랫동안 바라보았나 보다. 그리고 이런 시를 지었나 보다.


모든 글쓰기의 시작은 '바라보는 것'이다. 남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출발점이다. 스쳐 지나가는 것은 어떤 것도 가슴에 남지 않는다. 어쩌면 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자세히 바라보아야 가슴에 남고 가슴에 남아야 생각을 할 수 있고 생각은 글감이 된다. 거기에 '남들과 다르게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바로 '시인의 눈'이다.  



키위새


                        추수진


키위, 키위

새콤달콤한 노래를 불러요


나는 새예요

못 나는 새예요


날개가 있기나 한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키위새예요


쪼그만 날개를 파닥이며 억지로

날려고 하지는 않겠어요

새이기를 포기하지도 않겠어요


달리는 새

그게 나예요


키위, 키위, 노래하며

새콤달콤 달릴 거예요


새콤달콤한 과일 키위를 자주 먹긴 하지만 한 번도 키위새와 연관시켜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시인의 눈엔 비슷하게 생겨 같은 이름을 가진 그 둘의 관계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날개가 없어도 새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래서 달리기를 선택한 '키위새'의 당당함을 '다르게 보는 시인의 눈'으로 찾아냈나 보다.  

 

시인은 내 동생이다.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여러 가지 집안 사정으로 엄마와 아버지와 함께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 영어에 서툰 엄마 아버지의 눈과 귀가 되어주며 공부를 했다. 그때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계속하던 나와 자주 편지를 주고받곤 했다. 편지에 씌어 있던 한 구절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한인이 운영하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주인이 한국인은 '코리안 타임'때문에 성공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출근시간을 칼같이 지킬 것을 강조한다고 했다. '코리안 타임'이란 말은 지금은 거의 사라진 말이지만 그때만 해도 약속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 한국인들을 빗대 그런 말이 존재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렇게 '코리안 타임'을 강조하던 주인은  정작 마치는 시간은 칼 같이 자켜주는 법이 없다고 했다. 늘 "이것까지만, 저것까지만 " 하면서 일을 찾아내 퇴근 시간을 넘긴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집에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방학이 되면 유럽에 갈 계획을 세우는데 자신은 정작 교회 동아리에서 며칠 동안 가는 MT에도 따라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편지를 읽고 그때 참 가슴 아파했었다. 그렇게 고생을 하며 견디는 동안 동생의 내면은 뙤약볕과 태풍에 과일이 여물어가듯 그렇게 단단하게 여물어 갔나 보다.


미국에서 10여 년을 보낸 뒤 한국으로 돌아온 동생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는 동시와 동화를 쓰는 아동문학가가 되었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함께 ,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동안 아동문학가가 된 것이다.

올해는 < 책 알레르기 >라는 동시집으로 목일신 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겨울 해며, 달팽이며, 눈사람 같은 평범한 일상들을 남다른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동시들이 가득하다.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때론 윗트가 넘치고 깊이 있는 사색이 담겨 있는 시들이다. 

 

시인의 말처럼 '동시'는 어쩌면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 시집에 담긴 새콤달콤한 동시들을 꿀꺽 먹고 나면 감겨 있던 동심의 눈이 반짝 떠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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