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게 기침인지, 그리움인지

by 별빈

3월 18일 새벽부터 참을 수 없는 기침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으니, 이제 이 지독한 감기에 걸린 지 3주가 넘어가고 있다. 나아질 듯, 나아질 듯, 나아지지 않는 감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기침이 계속 터져 나와 며칠 밤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꿀과 레몬이 들어간 세파톨을 물고 겨우 새우잠을 자거나, 침대맡에 둔 물로 목을 조금 적신 후에 다시 잠을 청해보거나 정말 지옥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런 잔기침 증상이 조금 지나가자, 이번에는 목이 심하게 부었다. 목감기 때문인지 먹고 바로 자서 생긴 식도염인지 잔잔히 계속 남아있는 기침 증상과 침을 삼키기만 해도 아파오는 인후통으로 또 며칠을 고생했다.


웬갖 약을 다 먹고, 가습기를 켜고, 열심히 코 세척을 하고, 소금물 가글을 가고, 목을 따뜻하게 두르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자 조금씩 증상이 호전되는 듯했으나 이번엔 오른쪽 귀가 먹먹하게 잘 안 들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내 언어가 아닌 언어로 일을 하는 내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옆에서 이야기해도 못 알아듣는 지경에 이르렀고, 귀가 안 들리자 두통도 함께 나타나고 또 최악의 하루들이 흘러갔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피부에 뭐가 잘 나지 않는 타입인데 콩 다래끼 같은 화농성 여드름이 4-5개 정도 하나씩 올라오기도 했다. 이렇게 아플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아팠던 2주의 시간이 흐르고, 몸이 차츰차츰 나아지는 듯했는데, 이번엔 왼쪽 목이 다시 부었다. 침을 삼켜도 아프고, 음식을 먹어도 아프고, 어제저녁부터 조금씩 아파오더니 결국 새벽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봄, 가을꽃가루 알레르기와 비염을 달고 살던 나였어서 감기에는 잘 걸리지 않았다. 한국의 항생제에 너무 익숙해져서 인지 웬만한 약으로는 잘 나아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웬갖 약을 정량인지 아닌지도 모르게 섞어 먹는 것보다는 한국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더라도 그 정량의 약을 먹는 게 항생제 과다 복용일지언정 내 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목이 완전히 부었다는 것을 깨닫고,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문득,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 점심을 먹고 약을 먹고 넷플릭스를 보고 인스타 쇼츠들을 보고 그러는 문득 외롭고 그립고 알 수 없는 쓸쓸한 감정이 나아지지 않는 기침처럼 터져 나온다.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프니까 몸의 면역체계가 무너지니까 사람의 마음도 정말 약해지나 보다. 단단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터져버린 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쏟아내고 쏟아내다 보면 잠잠해지고 비워지겠지. 연말 연초 가족들에게 무수히 많은 연말 사진들을 받고, 물밀듯이 밀려왔던 그리움을 느낀 이후로 이런 감정을 오랜만에 느낀다.


주말 방문을 뚫고 아침부터 들려오던 엄마, 아빠의 말소리와 tv소리, 음식 냄새, 술에 잔뜩 취해 옷가지들을 하나씩 벗어 대충 흩뜨려놓고 자고 있던 언니의 모습, 그 무수한 소리들과 냄새들에 질색하며 짜증 섞인 투정을 부리던 언니의 모습, 이른 아침부터 나가 밤늦게 들어와 몸에 좋지도 않은 라면을 몇 개씩 끓여 먹던 동생도. 좋은 소식을 얻게 되어 축하해줘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다른 이들은 느껴지는 이 오감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는데, 난 참 희미하게도 떠오른다. 샤워 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처럼 희미한 잔상처럼 떠오른다. 문질러도 또 희미해지고 문질러도 또 희미해지고,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어서 자꾸자꾸 문질러보는데 너무나 희미하고 멀다. 보고 싶고도 보고 싶다. 아프니까 참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