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졌다.
계속 상처받고 설명하는 게 지친다고 했고, 우리가 이 관계에서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게 다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 아이는 우리가 다른 부분들이 많아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고, 그게 내 최선의 선택이면 존중하겠다고 했다.
좋은 결론으로 끝내고 싶었는지, 만나서 마지막으로 대화하자고 했고 나는 할 이야기가 있으면 전화로 하자고 했다. 자기한테 잘해줘서 만나는 동안 고마웠다고 했다. 그 순간에도 못 알아들어서 되묻는 나 자신과 현실이 답답하고 슬펐다.
그 아이에게 내가 오늘은 왜 슬퍼했는지 아냐고 물었고, 나는 이미 그 답을 메시지로 보냈었다. 그 아이는 오늘 너랑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서,라고 했고 이내 그 대답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정정했다. 그 아이에게 너한테 서운함이 채 풀리지 않았는데, 또다시 새로운 서운한 점이 생기는 게 늘 슬펐다고 했다. 그 아이는 미안해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했다. 너무 많이 눈물이 났다. 나도 고맙다고 했다.
어제의 이야기다. 출근하지 못했다. 눈이 너무 부어있고, 눈물이 계속 나고, 어젯밤 30분 간격으로 계속 깨 그 아이의 존재를 확인하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왓츠앱의 마지막 접속 시간을 습관처럼 계속 확인하고 다시 선잠에 들었다. 그 아이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 접속 시간이라는 게 새벽 내내 슬펐다.
여전히 그 아이가 많이 보고 싶고 좋고 애틋하다. 그 사람을 여전히 좋아함에도 이별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를 더 우선순위에 두고 싶어서이다. 그 아이가 너무 좋지만, 그 아이와 함께하는 나 자신이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짠하고, 때로는 불쌍하다.
1년 동안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건 난 그 사람을 결국에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I really like you정도로밖에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관계인 거다.
관계에 안정형이고 언제든 상대방과 소통하고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와 연애하며 점점 불안형이 되어가는 내 모습이 슬펐다. 내가 맞는 건지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 계속해서 되물으며 자신을 검열하는 내 모습이 아팠다. 연애 초에는 다른 언어에서 오는 차이라고, 중반으로 넘어가며 문화 차이일 거라고, 그리고 후반으로 넘어가며 사람은 모두 다르고 다름에서 오는 갈등을 잘 해결해 나가 보자고 스스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이해하고 넘어갔다. 대화하고 이해하고 풀어나가며 우린 나아가고 성장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대화를 시작하고 이끌고 마무리하고 있는 게 늘 나였다는 걸 깨달았고, 내가 놓으면 놓아지는 손, 놓아지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대화를 보면 그 생각이 맞았다. 물론 서로 다른 언어에서 오는 차이, 자라온 배경과 환경이 다름에서 오는 문화차이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그 사람과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다. 우린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사랑에는 5가지 언어가 있다고 한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그 아이의 1순위는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나의 1순위는 봉사이고. 그 아이는 자신의 시간을 내서 나를 만나러 오는 것에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사소한 배려받음에서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건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버스를 기다려주는 일이 될 수도 있으며, 내 쪽으로 우산을 기울여주는 일이 될 수 있고, 버스 안 쪽 자리를 양보하는 게 될 수도 있고, 그냥 몸에 배어있는 사소한 행동의 배려들에서 나는 사랑받고 관심받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게 하나도 행동으로 배어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데이트 후에 늘 그런 사소한 부분들을 배려받지 못함에 슬펐다.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알고, 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주어야 하는데 과연 그는 나는 그렇게 했을까. 그 사람도 나를 좋아했기에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장을 함께 보러 가며 물건을 들어주고, 서툴지만 요리해 주고, 늘 자기가 더 도울 게 없는지 물어봐주고. 하지만 만족이 안 됐던 것 같다. 내가 내 방식대로 최선을 다했듯, 걔도 걔 방식대로 최선을 다했겠지.
가끔은 너무 보고 싶어서 당장이라도 연락하고 싶을 때가 있을 거고, 한동안 잠을 못 자게 될 수도 있고, 지금처럼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버릴 때도 있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겠지. 5년을 넘게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고, 헤어지는데 꼬박 2년이 넘게 걸렸다. 내가 얘를 잊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잊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아이와의 이별이 이제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이별이 찾아오니, 이전 이별이 완전히 마무리되었음이 실감 난다. 그래도 이전 연애보다 성숙했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나를 보며 이 관계가 나에게 건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많이 아프고, 오늘 밤에라도 또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전화 버튼을 누르게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결정한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그 아이의 신발과 바지를 돌려주어야 하고, 내가 준비한 발렌타인 선물과 편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챗지피티와 재미나이는 선물은 환불하고 편지는 버리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전하고 싶은 건, 내가 너를 이렇게까지 생각했어라는 표현을 하고 싶은 걸까, 나 이렇게 너한테 좋은 사람이니까 나 그래도 한 번은 잡아줘라는 마음일까, 그렇게라도 한 번은 더 보고 싶은 걸까. 아직 이별 1일 차니까, 괜찮아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