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각자의 시기가 있다

아직 피어있는 벚나무를 찾아,

by 별빈

작년 겨울인가, 가을부터 알게 되어 꾸준히 하고 있는 어플이 있다. 바로 '포레스텝'이라는 어플이다. 어플은 간단한다. 하루 만보를 7일 혹은 15일 정도 걸으면 그에 따른 보상, 나무를 받게 된다. 물론 어플에서다. 어플에 대해 들은 친구들은 "진짜 나무를 주는 게 아니라고?"라고 물으며, 열심히 나뭇잎을 모으는 나를 신기하게 봤다.(하루에 만보를 걸으면 나뭇잎을 준다.) 딱 두 번, 진짜 씨앗을 받기는 받는다. 바질과 토마토의 나뭇잎을 모두 모으고 나면 포레스텝 상점에서 바질과 토마토 씨앗을 살 수 있는 무료 쿠폰을 준다. 나는 열심히 걸었고, 바질과 토마토 씨앗을 받게 되었다.


나무 키우기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도 무척 좋아하였다. "바질 김치를 만들어 먹으면 되겠다!"라고 말하며 즐거워하는 엄마였다. 바질과 토마토 키트가 오고, 설명대로 이들을 심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신기하게도 싹이 나왔다. 하지만, 슬프게도 씨앗은 8개 정도 심었는데 2-3개 정도의 싹만 나오는 것이었다. 엄마는 모두 다 자신의 시기가 있다고 이야기하며 기다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바질과 토마토를 위해 비닐하우스 (비닐을 덮어두고, 구멍을 뚫어주었다.)를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나보다 더 정성스럽게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놀랍게도 작은 싹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시기적절하게 엄마가 양천구에서 상자 텃밭 신청을 받는다고 신청하라고 이야기했다. 나도 바질과 토마토를 보며 더 넓은 곳에서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어 텃밭을 신청하였고, 나는 당첨되고 엄마는 떨어져 상자 텃밭 한 개가 우리 집으로 배송되었다. 같이 온 상추와 키우던 바질, 토마토를 상자 텃밭에 함께 심었다. 며칠이 지나자 이제는 다 나온 거겠지라고 생각했던 토마토 새싹 하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매일 아침 텃밭을 들여보며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언니와 나는 지고 있는 벚나무 길을 함께 걷게 되었다. "만개했을 때 정말 예뻤겠다~"라고 말하며 길을 걷다 딱 하나 남은, 만개한 벚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고, 모두가 같은 마음인지 그 나무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벚꽃이 만개했던 시기에 그 나무 앞에는 사람이 없었겠지? 모두가 같은 속도일 수는 없다. 느린 나무가 있고, 빠른 나무가 있다. 기준은 없다.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 2-3일간 서울에 비가 내렸다. 이른 봄비로 이제 벚꽃은 끝이겠구나 생각했다. 그 주 주말에 엄마와 함께 등산을 하였는데, 아직 피어있는 이제 막 꽃잎이 떨어지는 벚나무를 볼 수 있었다.


나무가 사람 같은 것일까, 사람이 나무 같은 것일까, 그 모든 게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섭리인 것일까. 올해의 봄을 보며, 피어나는 새싹을, 지는 벚나무를 보며 아이들을 떠올렸다. 느린 아이, 빠른 아이.

학부 시절 전공을 배울 때 '느린 아이'라는 말은 지양하라고 배웠다. 현장에서 학부모와 대화를 나눌 때 선배 교사들이 '이 아이는 언어가 느려요.'가 아닌 '이 아이는 언어 표현이 성장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쓰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현장에서 실제로 "어머님, 00 이는 언어 발달이 성장하고 있어요~"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을 때, 사실 나는 이 아이의 언어 발달이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관심을 가지지 않으시면, 도움을 주시지 않으면 이 아이는 지금이랑 같을 거예요.'라는 생각이었다. '이 시기가, 결정적 시기가 지나면 이 아이는 정말 느린 아이가 될 거예요. 그에 따른 자극을 주셔야 해요.' 이 아이에게는 이러한 자극이 필요하다. 현실 적으로 그 '부분'은 또래에 비해 느릴 수 있다.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정말 다양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두 잘하는 것이 다르다. 달리기가 빠른 반면에 블록을 잘 못 끼우는 친구가 있고, 아주 야무지게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리지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적은 아이들이 있다. 누가 느리고 누가 빠른 것일까? 말을 잘하면 빠른 것일까? 한글을 빨리 읽으면 빠른 것일까? 자신이 필요한 바를 말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구구단을 곧잘 외우는 어린이도 있다.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것 또한 교사의 역할이고, 편견 없이 아이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교사의 당연한 태도이다. 벚꽃의 평균적인 개화시기가 지나고 피는 벚나무가 있다. 개월 수가 지나서 그 개월 수에 맞는 발달이 성장하는 어린이도 있을 것이다.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힘, 주변의 지지와 도움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은 가지며, 시기적절한 발달 단계와 그에 적절한 자극을 알아햐 하는 것도 교사의 역할이다. 다만, 나는 후자의 역할만을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어린이가 가진 힘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은 부족했던 것 같다. 내가 새로이 만나게 될 어린이들이 잘 피어날 수 있도록 변하지 않는 비가, 햇빛이, 바람이, 또 엄마가 보여준 비닐하우스가 되어야겠다.




23년도 봄에 썼던 글이다. 많이 지쳐있는 나에게 위로가 되는 글이라 발행하게 되었다. 모두에게 각자의 시기가 있다. 이별 후 나만 유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보며 나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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