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맞이 한 이별 그다음 날 아침,

너한테 전하고 싶은 마음,

by 별빈

함께 앉아 있던 소파에 나 혼자 앉아, 우리를 생각한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이별 1일 차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아이의 마지막 품이 너무 따뜻했다. 그냥 다 놓고, 계속 안겨있고 싶었다. 다 놓고, 그렇게 계속 펑펑 울고 싶었다. 이제 뭐가 더 힘든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지난 외로웠던 순간들과 비교하게 된다. 아무렴 이별보다 아팠을까 생각하게 된다. 너무 보고 싶다. 이렇게 보고 싶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무치게 보고 싶다.

그 아이는 모든 게 다 젖어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는데,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 나를 보자마자 펑펑 울어버렸다. 나를 지켜야지, 더 단호해져야지라고 수십 수백 번을 마음먹고 만난 거였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아이에게 우리 대화할래? 아니면 물건만 가져가고 싶어?라고 물었고, 그 아이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계속 울기만 했다. 푹 젖은 외투를 받아 내 방에 걸어두며 다시 한번 눈물을 꾹 참고 마음을 다 잡았다. 우는 그 아이를 기다리다 그 아이가 없었던 내 일상을 무질서하게 늘어놓았다. 그 아이가 없는 동안 내가 너무도 공유하고 싶었던 일상들을 들려주었다.


같이 골라주었던 쿠션 커버가 도착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너무 컸다고, 문 앞에 쓰레기봉투를 뒀는데 간 밤에 누가 봉투를 다 뜯어놓고 가버렸다고. 그래서 옆에 있던 신발에도 뭐가 잔뜩 묻어서 신발을 빨아야 했다고, 근데 그 신발이 우리가 같이 맞춘 러닝화였고 신발을 빨면서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네가 참여한 토너먼트를 챗지피티한테 물어봤다고, 챗지피티가 자세히도 너의 랭킹을 알려주었다고, 너의 이름을 구글에도 쳐봤다고, 네가 그렇게 잘하는지 몰랐다고. 그런 말들을 두서없이 나열했다. 그 아이는 가만히 듣다 너는? 휘슬러 다녀왔어?라고 물었고, 가지 못했다고 했다. 눈물이 났다.


나는 가지 못했다. 그냥 밖을 나가고 싶지 않았고,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면 너랑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하게 될까 봐, 그러면 현실이 확 와닿아 버릴 것 같아서, 엉엉 울어버릴 것 같아서, 가지 못했다고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가만히 울던 그 아이는 내가 넣어 둔 물건을 보며 내 책은? 하고 물었다. 사실 책,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책은 내가 어쩌면, 어쩌면 내가 못 참고 너무 보고 싶을 때, 사실 책이 있어하고. 그렇게라도 그 사람을 보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일부러 꺼내두지 않았는데. 그 아이가 책에 대해 물었다. 진짜 이 만남이 끝이겠구나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눈물이 났다. 책을 그 아이 가방 안에 차곡차곡 담았다.


내가 이 아이를 순식간에 깊이 좋아져 버리게 된 책이었다. 엘리자벳 공원에서 지는 일몰을 보며 어렸을 때 무슨 책을 좋아했어?라는 나의 질문에 그 아이는 이 책의 시리즈를 얘기했고, 내가 너무너무 좋아했던 책이라 단번에 그 아이의 옛날까지 좋아져 버렸던, 우리는 어쩌면 인연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그렇게 유명한 책이 아니었고 그 책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는데. 우리의 대화 이후에 그 아이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책의 시리즈를 나에게 빌려주었고, 나는 영어로 된 그 책의 한 권 반을 읽었다. 나 이 책들 다 못 끝냈는데,라고 말하며 그 책들을 그의 가방 안에 담았다. 그 아이는 그때도 계속 울며 나를 보았다.


이제 진짜 끝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도 계속 눈물이 났다. 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머리카락, 귀, 코, 입술 다 내 마음에 담으려 찬찬히 바라보는데 너무 눈물이 났다. 그 아이도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그렇게 계속 울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우리 사진을 다 지울 거냐고 했고, 나는 못 지울 거라고 이야기했다. 너는 지울 거냐고 물었고, 그 아이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그 아이는 계속 연락은 할까?라고 물었고, 내가 친구로?라고 물어보자, 그 아이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고민 후에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또 눈물을 흘렸다. 우리의 대화가 끝을 향해 가고 있구나 느껴졌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내 우산을 들고 가라고, 가져도 된다고 했다. 그 아이는 이제 가야 할 시간이야?라고 물었고,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계속 눈물을 흘렸다.


비가 잦아들고 있었다. 이제 그 아이를 정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외투를 가져다줄까?라고 물었고, 그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새 바싹 말라있는 외투였다. 외투를 한 번 꼭 안아보았다. 그 아이에게 외투를 건네주었다. 우리 마지막으로 한 번 안을까?라고 그 아이가 물었고,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너무 그리웠었다. 그 아이의 품이 그 아이의 온기가 너무 그리웠다. 또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서로에게 안겨 엉엉 울어버렸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빠르게 떨어졌으나 보내기가 너무 아쉬워 내가 다시 안아 버렸다. 그 아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어버렸다. 그래도 보내주어야지. 마음을 다잡고, 괜찮아 괜찮을 거야라고 나에게 인지 그 아이에게 인지 알 수 없이 작게 읊조렸다.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외투 안에 든 편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도 내가 그 아이를 위해 준비했었던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건넸다.


그렇게 떠났다. 헤어짐에 대한 편지, 잘 지내라는 편지, lots of love로 끝나는 편지, 넌 왜 한 번을 노력하겠다고 안 하니 말만이라도 우리 다시 만나면 안 되냐는 말을 왜 못 하니 나 덕분에 자기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 고맙다고 했다. 진짜 끝. 진짜 이별. 그래도 지난주보다 훨씬 나아라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지만 어김없이 차가운 아침은 찾아왔고 매서운 현실에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첫 이별도 아닌데, 왜 매 번 이별은 이렇게나 아프고 적응이 되지 않을까. 특히, 여기에서의 이별은 더 아리다. 더 혼자가 된 것 같다. 그 아이는 내 연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내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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