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불안
외로움과 사랑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외로움으로 인해 그 사람을 잡는 선택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계속해서 다짐한다. 헤어지자는 말로 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줬고, 깊은 고민 없이 관계를 다시 시작하며 헤어지자는 말의 무게를 가벼이 하고 싶지 않다.
외로움과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아침마다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이 외로움으로 인한 것인지, 한 시간마다 깨서 그 아이의 마지막 접속 시간을 확인하는 게 슬픔으로 인한 것인지,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일어나자마자 우리가 마지막으로 안았던 순간이, 펑펑 울어버리던 나와 그 아이의 모습이, lots of love로 끝낸 그 아이의 편지가 떠오르고, 간밤에 잊었던 차가운 현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체감되며 슬픔과 두려움과 무기력과 끝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버린다.
악몽을 꿨다. 그 아이의 차 트렁크를 강도들이 뒤지고 있었고, 그 아이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칼을 꺼내 들어 강도들을 위협했다. 나는 조수석에 타 차 안쪽 문들을 잠가 강도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고, 그 아이는 운전석 문 앞에서 칼로 강도들을 위협하며 차에 타지 못했다. 칼을 놓쳤고, 그 칼을 주운 강도는 바로 그 아이를 찔렀다. 어떻게 병원 앞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와 함께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디로 전화해할지 어디로 신고해야 할지 헤매며 울며 꿈에서 깼다. 그 아이는 왜 차에 타지 못했을까, 왜 운전해 도망가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생각하며 너무도 생생한 꿈에 계속 눈물이 났다. 잠에 다시 들기가 무서웠다.
얼른 밤이 와서 잠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하루였는데, 잠드는 게 무섭다니 난 어떻게 하루를 살아야 한단 말인가. 3시에 깨서 6시가 되도록 잠에 들지 못했고, 내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로 심장이 쿵, 쿵하고 뛰었다. 11시에 잠들어 한 시간 간격으로 깨고, 3시에 깼으니 4시간도 채 자지 못한 거고, 이런 삶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매니저한테 연락을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분간 일을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무책임해 보이는 내 모습이 싫었으나, 그 한 발을 떼는 게 너무 어려웠다. 너무 무서웠다.
이 아이와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가든 내가 여기서 사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또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나 내 삶이 흔들리면 난 또다시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주저앉게 되지는 않을까. 누군가한테 잘 기대지 못하는 나는, 가족이 없는 이곳에서 이렇게 한 없이 또 주저앉게 되지 않을까. 영주권을 생각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게 맞을까. 이 아이와의 이별은 여기에서 내가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더 내 마음을 요란하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내가 여기서 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 아이였구나를 알게 된 것이다. 외로움보다는 사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끝까지 결정하지 못했었다. 한국도 좋고, 캐나다도 좋았던 나는 늘 49대 51로 왔다 갔다 해. 하고 이야기했다.
한국이 싫어서 떠난 게 아니었던 나는 영주권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10월, 언니와의 한 주 넘는 유럽 여행과 3주간의 한국 일정 끝에 캐나다가 51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1%는 대화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져 버렸다. 그렇게 다음 스텝, 다음 스텝, 도장 깨기 하 듯 살고 싶지 않았다. 연애, 취업, 결혼, 그리고 아이, 현실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대화에 조금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즐겁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1%는 그 아이였던 것이다. 밴쿠버가 보고 싶고, 밴쿠버가 그립고, 그 아이는 나한테 밴쿠버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 아이가 보내주는 피아노가, 노래가, 일상 사진이, 시차로 가끔 통화할 때 보는 얼굴이, 들리는 목소리가, 그 사람을, 밴쿠버를 너무 그립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국 일정을 마무리하고, 캐나다로 돌아와 난 영주권에 대한 마음을 굳히고, 영주권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 아이를 이해하지 못해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헤어지고 난 후의 하루들을 떠올려보았다. 시간을 들여 우리가 쌓은 단단한 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자 너무 큰 공허감이 나를 뒤덮었고, 그 아이가 우리의 관계가 실재하지 않았던 것 같아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왓츠앱 시간을 계속해서 계속해서 확인했다. 아, 그렇지, 여기에 여전히 이 사람이 있구나. 그걸로 됐다. 그 사람의 존재가 안심이 된다면, 그건 사랑일까.
그 아이가 참여한 토너먼트의 결과를 확인했다. 늘 내가 후순위로 밀리는 것 같아 속상했던 그의 취미였는데 작년보다 좋은 결과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되자 마냥 기뻤다. 그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다면, 그건 사랑일까.
월요일에 그 사람은 신발과 바지를 가지러 우리 집에 들렀다. 텍스트로 이별한 우리여서 그런 만남은 필요하다고, 그 아이도 나도 생각했다. 관계의 종결을 위한 만남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눈물을 보이고 한 시간을 넘게 울고만 간 그 아이가 마음이 아프게 남으면, 그 사람이 우는 게 마음이 아프면, 그건 사랑일까.
다른 것들을 나보다 우선시했고, 그래서 나에게 계속해서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 사람은 더 노력하겠다는 말도, 다시 잘해보자는 말도 없이 그렇게 나를 놓았다. 내가 끝내자고 해놓고 그렇게 놓아버린 그 사람이 너무 아팠고,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해서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우리는 똑같은 결론이 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있다. 그 사람은 나한테 계속 미안하고, 나는 계속 서운하려나.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내 옆에 없는 게 나를 더 아프게 하는 건지, 그 사람에게 서운함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그 사람의 변화를 기대하고 또 실망도 하며 그 사람 옆에 있는 게 나를 더 아프게 하는 건지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사람은 내 이야기를 들었고, 바뀌려 노력하였기에 이때까지 그 아이와의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그 아이를 한 번 더 믿고 이 관계를 다시 잘해나갈 수 있을까. 나는 이 관계를 선택해야 할까,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 걸까. 정답은 없다. 정해진 길도 없다. 그래서 늘 선택이 어렵다. 한쪽을 선택하면 내가 놓치고 잃은 다른 선택지가 아른 거릴 수 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사랑 속에서 피어난 불안감은 끝도 없는 질문을 만들고 또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