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서랍 한편에 보관하던 장갑을 꺼냈고 면이 두꺼운 코듀로이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붕어빵 가게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포장마차에서는 어묵 국물과 차가운 공기가 만나 하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날씨가 추워서 싫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겨울은 그만의 매력이 있다. 밤하늘의 별은 겨울에 더 아름답게 빛나고 겨울밤의 짙은 어둠에는 차갑지만 고요한 어떤 아련함이 있다. 차디찬 공기에 비강이 멍해지고 건조한 피부로 살 끝이 당기지만 그래도 첫눈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는 계절, 그게 겨울이다.
나에게 겨울은 수능 한파와 함께 시작된다. 수능이 있는 11월 둘째 주 목요일만 되면 날씨가 한겨울처럼 추워지는 데 그런 걸 수능 한파라고 부른다. 내가 수능을 볼 때도 그랬다. 삼수를 해서 수능을 세 번이나 봤지만 그때마다 날씨가 추웠다. 당시만 해도 환절기만 되면 감기에 걸리는 체질이라 목감기를 예방하는 일은 수능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였다. 10월 말만 돼도 패딩을 입고 거기에 달린 털모자까지 뒤집어쓰고 다녔다.
수능에서 가장 점수가 안 나왔던 과목은 언어영역(지금은 국어영역)이었다. 공부를 할 때도 하루에 절반은 문학과 비문학을 공부했다. 그랬던 내가 글작가가 되어 책을 낸 것을 보면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생에서는 1과 1을 더하면 2가 나오고 2와 2를 곱하면 4가 나오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는 1과 1을 더해서 0이 되기도 하고 2와 2를 곱해서 100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언어 영역을 가장 어려워했던 삼수생이 이제는 언어를 만드는 글작가가 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지도 모른다. 앞뒤가 안 맞는 일들의 연속, 그게 세상의 본질이라면 말이다.
세상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언어로 만들어진 의미 속에 살고 언어를 통해 ‘생각’을 하고 ‘인식'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언어를 가지고 사는데 그것은 곧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인식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이기적이다, 라는 언어를 가진 사람은 인간의 많은 행동을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도와도 그 역시 이기적인 이유로 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누군가를 돕는 게 그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어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현실적인 이득이든 감정적인 만족이든 하는 이에게 이득이 되니까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반대로 인간은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라는 언어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게 타고난 선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다고, 그게 이득이 되든 아니든 본능적인 선함으로 봉사도 하고 배려도 하는 거라고 믿는다.
그러면 '언어'가 '생각'보다 앞선다고 주장하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여서 '언어'라는 걸 사용하는데 그러면 반대로 '언어'가 있어서 '생각'을 한다는 거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말은 '언어'가 '생각'보다 앞선다는 주장도 아니고 '언어'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말도 아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처럼 언어가 먼저인지 생각이 먼저인지에 대한 나만의 주장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언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사는 것과 극단의 언어를 가지고 사는 것은 어떻게 다른지, 그렇다면 글 작가로서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무언가를 모방하는 일이다. 현실에 있는 것들을 언어로 모방하여 하나의 글 - 에세이에 제한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 을 만든다. 소재를 나열하여 글의 흐름을 만드는 것은 창작이지만 기본적으로 글의 소재 하나하나는 현실에 대한 모방이다. 근데 글을 쓰다 보면 모방 ‘조차’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베끼는 건 쉽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글쓰기의 영역에서는 무언가를 베끼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눈앞에서 보고, 느끼는 것도 표현하기 어렵고 살아 움직이는 감정에 대한 모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강한 인상을 받으면 ‘대단하다’, ‘신기하다’, ‘감동이야’ 등의 단어를 말한다. 하지만 그게 왜 그런지 설명하라고 하면 대개 입을 닫는다. 글쎄… 라든지, 그냥… 이라든지, 왠지 모르겠지만 그래,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왜 좋은지, 왜 대단한지를 설명하라고 해도 막상 그걸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그건 사람들의 언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다. 교육을 덜 받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어느 정도 영향은 있겠지만) 그들의 감정이 거짓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단지 그걸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찾는 게 그 자체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는 것을 묘사하고 설명하여 남들을 이해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언어를 가졌고 각자의 경험과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느낀 감정을 전이하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조차도 쉽지 않다.
작가는 일상을 떠돌지만 언어화되지 않은 것들을 표현한다.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면 왜 마음이 잔잔해지는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 왜 입가에 미소가 생기는지, 월드컵에서 최선을 다하는 축구 대표 선수들을 보면 왜 뭉클한 감정을 느끼는지 작가는 그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예술론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아니면 조형물로, 그것도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로 표현하는 모든 표현자들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지당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기쁨은 여기에 있다. 모방은 어렵지만 결국 그걸 해내면 뿌듯하다. 언어 표현은 쉽지 않지만 어렵게 그걸 해내면 나의 영혼이 깊어지는 걸 느낀다. 단어를 만지작 거려 표현하고 싶은 걸 만드는 일은 그림 퍼즐을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흩어진 1,000조각의 퍼즐을 조각조각 맞추다 보면 몸도 힘들고 손도 아프지만 결국 그걸 해냈을 때는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쁜 감정이 드는 것이다. 머리와 손끝에 집중해서 퍼즐을 맞추듯, 글쓰기도 정신을 집중하고 손가락의 감각을 이용한다. 덕분에 글을 쓰다 보면 머리가 좋아지는 기분도 든다. 팔씨름 선수들이 고된 훈련으로 전완근을 키우듯 뇌를 쓰는 글쓰기를 반복하다 보면 뇌의 근육이 건강해지는 걸 느낀다. 그렇게 3년째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의 전환이나 논리의 구성, 정보에 대한 기억력이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그렇게 믿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쓰다 보니 세상은 더욱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든다. 1과 1을 더하니 100이 되고 2와 2를 곱하니 0 이 되는 이런 삶이라는 산수에는 정답이 없다. 무조건 옳은 것도 없고 무조건 틀린 것도 없다. 교과서에서는 정답만이 가득하다고 배웠지만 살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점점 더 느끼고 있다. 도덕책에서는 부모님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이 살면서 가장 많이 화를 내는 대상은 바로 그의 엄마이다. 국어책에서는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나쁘게 살면 벌을 받을 거라고 배웠지만 부조리하고 나쁜 사람도 떵떵 거리며 잘 사는 게 세상의 모습이다. 어쩌면 교과서는 세상의 부조리를 감추고 사람들을 교화하려는 권력자들의 선전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세상에는 선하게 살아 행복한 사람도 있고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효도하기 위해 진심을 다하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분명한 건 교과서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세상은 절대로 정답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몇 안 되는 언어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극단의 언어들을 정답으로 믿고 편을 가르고 갈등을 조장한다. 내 편이 아니면 네 편이고 네가 틀린 이유는 내가 맞기 때문이야,라고 주장한다. 2022년에도 세계 어디선가는 전쟁이 진행 중이고 티브이를 틀면 우리가 권력을 위임해준 정치인들은 애들보다 낮은 수준의 말싸움으로 서로를 헐뜯는다. 그들이 만들어낸 법으로 사회는 이루어져 있고, 사람들은 법이라는 이유로 그걸 따르며 살아간다. 그리고 교과서에는 가르친다. 법을 지켜야 선량한 시민이라고.
세상을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모방하고 싶다. 모순과 역설로 얽혀 있는 세상의 모습을 간결하고 단정한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 극단의 언어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나의 모순과 세상의 모순이 만드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다.
고요하고도 아련한 겨울밤이다. 차갑지만 따뜻한 계절, 책상에 앉아 바라보는 겨울밤의 풍경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겨울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