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이 있다.
축구장 잔디 위가 그렇고 아파트 앞 수목원이 그렇고 지금은 잘 못 가지만 재수했던 도서관이 그렇다. 서울의 여러 번화가 중 마음이 편해지는 거리를 꼽자면 신촌역에서 연세대학교 정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그렇다. 현대 백화점 U-Plex 앞의 빨간 거울로 대표되는 거리, 그곳을 좋아한다.
편하다는 것은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자꾸 마음이 간다는 것인데, 친구 중에도 괜히 생각나고 연락하고 싶은 친구가 있듯이 장소도 그런 장소가 있다. 특별한 활동을 안 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가지 않으면 가끔씩 생각나는 곳. 인연 같다고 해야 할까, 하필 회사도 신촌에서 버스로 10분인 곳에 입사하게 되어 약속이 없어도 자주, 혼자서도 종종, 신촌을 찾는다.
특히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 신촌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약속이 없으면 평일에도 하루 이틀은 신촌에 들러 글을 쓰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자꾸 침대에 눕고 싶어 차라리 카페에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 월요병이 심한 월요일을 제외하면, 신촌역 2번 출구 앞 할리스를 찾아 글을 쓰는 요즘이다.
"신청 곡 있나요?"
"서른 즈음에~"
한 달 전 금요일 밤이었다. 그날도 할리스에서 글을 쓰고 나오는 길이었다. 배도 고프고 불타는 금요일 밤이라 그냥 집에 가기는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에 버거킹에서 와퍼 주니어를 하나 사서, 버스킹 공연이 있는 곳으로 갔다.
가수는 통기타를 매고 마이크를 잡고 있었는데 앞에 놓여있는 기타함에는 관객들이 공연료로 두고 간 지폐 몇 장이 놓여 있었다.
천 원짜리 몇 장과 오천 원짜리 몇 장.
데이트하는 커플과 공부를 마친 학생들이 있었고, 마른안주에 맥주를 마시는 아저씨 세명이 노래를 듣고 있었다. 가수가 신청 곡을 물으니 한 아저씨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말했다. 가수는 노래를 시작했고 잠시나마 노래에 빠져 마음이 편해졌다.
원래도 버스킹 듣는 걸 좋아하지만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는 부쩍 그들의 노래에 마음이 간다. 그들과 내가 닮았기 때문이다. 수단은 다르지만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이제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그렇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 응원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잘됐으면 좋겠다고, 힘을 내라고, 말이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이런 문구가 자꾸 머리를 맴도는 요즘이다. 어쩌면 스스로를 위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JTBC의 예능인 <비긴어게인>은 유명한 가수들이 거리에 나와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처음 시작은 해외에서였으나 코로나의 영향으로 지금은 한국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최근 방송에서는 가수 크러쉬가 눈물을 보였다. 동료들이 부르는 god의 <길>을 듣고 운 것이다.
비긴어게인 코리아 <길>
신촌의 가수의 비해 크러쉬는 사회적인 의미에서 훨씬 성공했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인기 가수다. 하지만 그는 울었고, 인터뷰에서는 자기가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8년간 앞만 보고 달렸지만 문득 자기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그 길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성공하면 방황하지 않을까
성공하지 못하면 방황할까
아니 아니,
방황하지 않는 삶이 있을까
진리를 말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자기만의 길과 자기만의 삶이 있다. 남자든 여자든, 젊든 젊지 않든, 꿈을 먹고살든 현실에 충실하든, 자기만의 생이 있다. 정답 없는 삶을 방황하며 사는 것, 그게 우리의 인생이다. 자기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그 길이 맞는지, 그 끝은 어딘지,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는 게 우리가 사는 방법이다. <비긴어게인>에서 눈물 흘리는 크러쉬를 보며 우리에게는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황하는 길에서, 정답이 없는 삶에서, 때로는 잠시 멈춰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치고 힘든 마음과 좌절하는 시간도 살아가는 일부다. 희망과 용기를 가지면 좋고 긍정적인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도 좋지만 그런 감정들만 가지고 살 수는 없다. 때때로 찾아오는 부정적인 마음들도 소중히 다뤄야 한다. 크러쉬가 눈물 흘린 이유도 그런 감정들 때문이지 않을까. 잘 버티고 잘 참아왔어도, 타인은 알 수 없는 자기만의 고단함, 그런 게 있었을 것이다.
가수도 작가도, 성공한 사람도 그러지 못한 사람도,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살아가는 불안과 삶의 고단함을 받아들이고, 그때 느끼는 불행함과 우울함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긍정과 무조건적인 희망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직면할 수 있는 힘,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신촌의 가수도 울고, 크러쉬도 운다.
나도 울고, 너도 운다.
문득 한 줄의 시에 눈물이 나고, 퇴근길 한 소절의 노래에 눈시울이 붉어지면, 차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말고, 눈물이 콧물이 되도록 콧물이 눈물이 되도록, 울었으면 좋겠다. 애써 웃고, 애써 용기내고, 애써 희망을 말하지 말고 말이다.
신촌의 어느 무명 가수의 버스킹에 지친 하루를 위로받는 요즘이다. 그 가수처럼, 그가 부르는 노래처럼, 내가 쓰는 한 줄의 문장도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희망을 노래하는 글을 쓰고 싶지만 그에 앞서 누군가의 마음 밑바닥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그런 마음을 건드리는 글을 쓰기를, 내 길의 끝은 그런 것이기를, 바란다.
< 길 >
god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오 지금 내가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살아야만 하는가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에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인가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