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어려운 건 당장에 쓸 말이 없기 때문이다. 뭐라도 표현하고 뭐든 이야기하고 싶은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무슨 내용으로 글을 써야 할지 생각나지 않는다. 흔한 말로 머릿속이 백지가 된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한 시간 두 시간을 고민해도 문장 하나 쓰기 어려울 때도 많다. 하얗게 빈 화면은 컴퓨터 모니터가 아니라 내 머릿속을 비추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이건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조금 익숙해진 것도 있고 기술적인 요령이 생긴 것도 있지만 여전히 나는 글쓰기가 어렵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글감이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글로 소개하고 싶은 하나의 콘텐츠가 있는 사람이면 그럴 수도 있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주제로 글을 쓰는 사람이면 오히려 내용을 간추리는 게 어렵지 글의 소재가 부족해서 글쓰기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쓰는 글은 그렇지 않다. 내 글은 사물이나 현상을 보여주는 글이 아니다. 내가 표현하려는 건 눈에 보이는 무엇이 아니라감정이나 감상과 같이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다. 기쁘거나 슬픈 마음, 기쁘면서도 슬픈 마음, 슬프지만 기쁜 마음, 설렘과 불안, 연민과 증오, 자기애와 우월감, 혼돈, 그런 것이다.
그래서인지 글을 쓸 때마다 조금 불안하다. 언젠가 할 말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 쓰는 글이 지난주에 썼던 글과 다를 게 없고 지난주에 썼던 글이 알고 보니 1년 전에 썼던 글과 비슷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이다. 똑같은 문장, 비슷한 표현, 진부한 주제의식이면 안 되는데, 라는 불안이고 노트북 앞에 앉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그런 막연한 걱정은 살아있는 실감이 된다. 벌써 그런 순간이 온 건가, 싶다. 1년 동안은 그래도 어떻게 매일 글을 써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지 걱정이다. 때로는 벽 앞에 선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은 졸업생들에게 용기를 줬지만 나는 그런 점과 점의 연결이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모두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연결을 이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스티브 잡스도 제품을 개발하거나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아니면 (내가 모르는) 그만의 인생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연결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이 그가 살아온 점과 점 사이의 여백을 연결시킨 것이다.
적확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글쓰기는 그런 내 안의 점들을 연결시키는 일이다. 살면서 내 안에 쌓인 작은 감상들,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그런 점들을 한 알 한 알 엮어 내어 밖으로 내어 놓는 일이다. 빛바랬던 감상들은 다시 살아 자기 색을 되찾고 그것들의 연결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의미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 의미는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이 된다.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거기서 오는 새로운 감상들은 내 안에 다시 새겨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글쓰기라는 붓을 들면 그런 점들은 다시 새로운 연결이 되고 또 다른 의미와 또 다른 통찰이 된다. 스티브 잡스는 인생의 점과 점을 연결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나는 내 안의 작은 감상들을 연결하여 나라는 세계를 일깨운다.
"넌 너무 감성적이야"
라는 말을 자주 듣고 살았다. 넌 너무 센티해, 넌 너무 감성적이야,라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에 더 집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A와 B가 싸우면 나는 누구의 논리가 맞냐 보다는 그들이 지금 어떤 감정을 느낄지에 대해 더 많이 신경이 쓰인다. 어려서부터 그랬고 타고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다. 하지만 막상 내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기쁜 건 기쁜 대로, 슬픈 건 슬픈 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 크게 웃거나 더 슬프게 울만한 상황에서도 나는 감정을 발산하기보다는 내 안에 담아 두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내 감정을 표현할 지인이 없다거나 아무 표현도 안 하고 사는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감정을 헤아려주는 부모님도 있고 늘 상냥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자 친구도 있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친구들도 있고 마음을 의지 할 인생의 동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스쳐가는 감상들을 일일이 이야기할 수도 없고 때로는 그 감정이 묵직하더라도 혼자 안고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설사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도 그들에게 부담이 될만한 감정은 숨기는 게 나을 때가 있고 어쩌면 그건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많이 느끼지만 많이 표현하지 않는 삶의 방식, 소비보다는 수입이 많은 감정들, 달리 말하면 그건 글로 쓰고 싶은 소재가 매일 같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글쓰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나는 글을 쓰며 살고 싶다. 글이 어려운 건 흩어진 내 안의 감상들을 찾아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인데, 노트북 앞에 멍하니 있는 시간은 빛이 바랜 내 안의 감상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간이었다. 글을 통해 나는 그런 점들을 연결시켰고 그런 연결에서 튀어나온 통찰은 스스로를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만든 연결이 글을 통해 읽은 이의 마음에 닿으면 내 글은 혼자만의 일기가 아닌 작품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어떤 자신감이 생겼다. 계속 쓸 수 있을까, 라는 불안도 여전하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이상 글쓰기가 멈출 일은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다. 나는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살아가는 사람이고 살면서 생겨나는 감정에 최선을 다하면 소재가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말이다. 시간은 흐르고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 비슷한 일상도 사실은 매일매일이 다르고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일은 없다. 거기서 오는 생의 감상들은 글쓰기의 소재이자 영감의 원천이고 글을 쓰는 동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글 쓰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주어지는 감정에 최선을 다하고 그게 뭐든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희망이든 절망이든, 설렘이든 불안이든, 차곡차곡 쌓아 그 점들을 나만의 그림으로 연결하면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글과 마주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이제는
'너는 너무 감상적이야'
라는 말이 나에게는
'그러니까 너는 글을 써'
라고 들린다. 나다움을 사랑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바로 글 쓰는 불안을 이겨내는 나만의 마음가짐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글이 살아 있는 글이 되어 내 마음을 흐를 수 있기를 바란다. 멈추지 않고 생생하게. 그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