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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by 추세경

나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소개합니다.


2018년부터 '소확행' 열풍이 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에서 유래한 이 말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트렌드 코리아 2018'에 소개하여 유명해진 말이다. 일상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단어로 하루키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과 같은 것들을 소확행이라고 말했다. 끝나지 않는 경쟁에 지치고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게 싫어진 여러 사람들은 이 단어가 주는 울림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제는 지식 백과에서 나올 만큼 유명한 단어가 되었고 마찬가지로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표현이 되었다.

소확행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단어가 더 필요하다_라고 생각한다. 작다는 말도 중요하고 확실하다는 말도 중요하지만 내가 해석하는 소확행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표현이 더 필요하지 싶다. 그건 바로 '나만의 행복'과 '너만의 행복' 그리고 '그만의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확행은 '개인적인 행복'이라는 것인데 살아가는 각자가 고유하게 느끼는 행복이 저마다 다르다는 말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던 봉준호 감독의 언어를 빌자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테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복이어서도 안되고 누군가가 인정해줘서 느껴지는 행복이어서도 안된다. 누군가와의 비교에서 느껴지는 행복이어서도 안되고 누군가를 이겨야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어서도 안된다. '소확행이라는 게 좋은 거래'라는 말을 듣고 억지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먹을 필요도 없다. 나 스스로가 좋아서 할 수 있는 것, 누가 보든 안보든 내가 행복해서 할 수 있는 것, 그게 소확행의 기본이 아닐까 싶다. 개인이 느끼는 행복은 때로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 수 있다. 커피 원두를 갈거나 음식을 예쁘게 차리는 게 소확행인 사람도 있고, 수학 문제를 풀거나 책상에 성냥개비를 쌓는 게 행복한 사람도 있다. 누구나 각자만의 행복이 있고 그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다. 내가 이해하는 소확행은 그런 것이다.




나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필사를 하는 것이다. 필사를 하며 종이에 볼펜을 사각거리는 것도 좋고 애정 하는 작가의 문장을 음미하는 것도 좋다. 때로는 필사를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멍해지는 것도 좋고 커피 한잔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책상에 앉아 있는 것도 좋다. 필사를 시작한 건 대학생 때부터인데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필사를 하곤 했다. 주로 방학 때였는데 방학의 선물인 늦잠을 즐기고 느지막이 잠에서 깨면 가방에 뭉텅이로 책들을 챙겨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의 1층은 신문과 잡지를 읽는 열람실이었고 벽면이 통창이라 그 옆으로는 초록 초록한 풀과 나무를 볼 수 있었다. 밝게 비치는 햇살에 좌석 수도 많지 않아 필사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렇다고 필사가 단지 행복한 일이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그게 어떻게든 인생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책을 더 잘 읽기 위한 수단 중에 하나였고 읽은 책의 내용이 내 안에 겹겹이 쌓이면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한 층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믿었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한 지금은 글을 공부하기 위해 수단이기도 하다. 글쓰기를 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있고 별일만 없으면 글쓰기도 필사도 앞으로도 계속 계속하고 싶다.


하지만 처음으로 돌아가서 인생에 도움이 되든 안되든,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이든 후이든, 내가 필사를 계속한 이유는 그 행위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게 싫었다면 방학 때마다 손가락이 아프도록 도서관에 앉아 혼자 하루 반나절을 필사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생에 유익이 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 것도 맞지만 그에 앞서 나는 필사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다. 채식이 몸에 좋은 걸 알아도 애초에 야채를 싫어하면 몇 년이고 채식만 할 수는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필사는 그 자체로 나에게는 행복한 활동이었고 도서관에 다니며 필사를 했던 시간은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추억이자 돌아가고 싶은 낭만적인 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결과만 보고 과정을 후회한 적이 많다. 한때는 필사했던 시절을 후회했던 적도 있다. 취업 준비를 시작하고 욕심만큼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그랬다. 필사를 하지 말고 토익을 공부할 걸, 필사를 하지 말고 인턴을 할걸, 필사를 하지 말고 자격증을 따고 스펙을 쌓을 걸, 필사를 하지 말고, 필사를 하지 말고, 필사를 하지 말고... 하며 후회를 했던 적이 있다.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던 필사가 정작이지 나에게 도움이 된 건 없는 것 같았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해서 똑똑해지고 싶었는데 나는 여전히 보통의 사람,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 옛날 그대로의 나였다. 그럴 거면 그 시간에 공무원 공부를 하든 전문직 자격증 공부를 하든 해볼걸, 해보고 싶었던 방송사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아 볼걸, 인생의 진로를 현실적이고 계획적으로 짜 볼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몸은 현실을 사는데 마음은 구름 위에 있었구나, 싶었다.


근데 나라는 인간은 원래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인지 글쓰기를 시작하고는 필사를 했던 과거가 그렇게 알차게 보일 수가 없었다. 박완서 님의 문장으로 시작해 알랭 드 보통을 읽고 하루키를 좋아했던 과거가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문장의 엄마는 박완서고 내 문장의 스승은 하루키야, 라며 혼자 그렇게 필사했던 과거를 이제는 좋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필사를 후회했던 기억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내 삶의 여건이 어떤 면에서는 참 행복한 거라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지나 혹시 내가 글쓰기를 포기하면 그때는 다시 필사했던 시간을 후회할까? 글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더 열심히 필사를 하고 있는 오늘의 날들을 마음 깊이 후회할까? 완전히 그러지는 않겠지만 후회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나라는 사람이고 어디로 튈지 몰라 매일 붙잡고 사는 게 나라는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사실은 나는 꾸준하게 필사를 해왔다는 것이다. 대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필사를 했고 군대에서는 퇴근하고 숙소 책상에 앉아 필사를 했다. 취업하고는 시집을 필사했고 시들이 내 영혼을 울린다고 느낄 때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펜을 놓지 않았던 적도 있다. 필사가 나에게 결과로써 도움이 되든 아니든 나는 꾸준히 필사를 해왔고 내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저 필사를 하는 게 행복하고 좋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문장과 운율, 사각 거리는 펜 소리와 종이의 질감, 때로는 멍하니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고 자주는 영혼을 울리는 글 조각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 필사는 나에게 그 자체로 행복이었고 있는 그대로의 즐거움이었다. 나만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 그게 나에게는 필사였다.




한 번은 친구 녀석이 우리 집에 놀러 와 책상 위에 있는 시집과 필사 노트를 본 적이 있다. 이과를 나와 무슨 전자라는 회사에 다니는 친구인데 이게 뭐냐며 나에게 물었다. 필사하는 게 취미라고 했더니 친구는 나를 낯선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도대체 이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공대생이라 모르겠다'


라고 에둘러서 이야기했지만 친구가 보낸 눈빛은 이해할 수 없음 보다는 인정할 수 없음에 가까웠다. 이런 쓸 데 없는 행위를 왜 하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착한 친구라 그렇게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18년 째인 친구인데도 때로는 이렇게 멀 수가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친구와 나는 그런 면에서는 많이 다른 걸 알고 있었고 내가 필사하는 게 취미라는 걸 이야기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상 깊은 장면으로 마음에 남아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틈이라는 게 있다는 걸, 그 세월이 오래라도 그럴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필사를 한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이해를 해주든 아니든 필사를 한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에게 필사가 즐거운 것은 더 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필사를 하다 보면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날 수 있고 그런 문장들은 어떻게든 나의 글쓰기에 영향을 줄 거라고 믿는다. 존경하는 작가들의 글을 따라 쓰면 그들의 생각과 삶을 배울 수 있고 그들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경험도 해볼 수가 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은 분명 내가 글을 쓰는데 꽤나 엄청난 자양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런 행복과 행운을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소확행이든 미래를 위한 투자든 필사하는 그 순간을 즐기고 거기서 얻는 행복으로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볼 계획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고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나다운 행복이 인생의 큰 그림에서 가장 영양 있는 밑거름이 될는지도 모른다. 필사, 가장 나다운 행복, 그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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