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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결혼

by 추세경

친구가 결혼했다. 17살에 만난 녀석인데 33살에 결혼을 했으니 17년을 함께 했다. 결혼식은 여의도에 있는 한 호텔에서 진행됐다. 식장에 가기 위해 구로구에서 버스를 탔는데 창밖으로 비치는 초여름의 날씨가 맑고 푸르렀다. 하늘은 파랬고 가로수의 나뭇잎이 햇살에 반짝였다. 내 결혼도 아닌데 결혼 전날부터 왠지 긴장이 됐고 미리 간다는 게 1시간이나 일찍 식장에 도착했다.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면 시간이 느려지는 걸 느끼는데 예식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런 기분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로 걸어가는 발걸음에 한 걸음 한 걸음 여운이 실렸다. 하얀 눈 밭에 찍히는 발자국처럼 나의 걸음걸음이 매 순간 기록을 남기는 기분이었다. 건물 입구에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심호흡도 한번 했다. 그렇게 식장에 들어갔다.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친구의 부모님과 인사를 나눴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그들의 미소가 감사했다. 친구는 신부와 버진로드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로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촬영에 방해가 될까 가만히 서서 그들을 바라봤다. 콘서트를 관람하는 가수의 애인이 된 기분이랄까,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랐지만 먼저 알은 채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곧 인사를 나눴다. 함께 사진도 찍었고 혼주라도 된 양 다른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맞이했다. 그렇게 친구의 결혼식이 시작됐다.


신랑 신부 어머님이 입장을 했다. 친구가 입장을 했고, 신부가 입장을 했다. 천천히 손 흔들며 입장하는 신부의 여유로움이 인상 깊었다. 그렇게 식순이 이어지는데 축가를 들을 때는 눈물이 났다. 한두 방울의 눈물이 아니라 감정이 복받치는 눈물이었다. 테이블 보로 얼굴을 가렸지만 어깨가 자꾸 들썩였다. 친구들과 원형 테이블에 앉아있었는데 맞은 편의 친구들을 당황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친구는 나에게 티슈를 건네더니 이내 본인도 함께 울었다.


친구랑은 고등학교 때 축구를 하면서 친해졌다. 아침 자습시간 보다도 한 시간 일찍 등교해 같이 축구를 했다. 등교 버스가 들어오면 그 버스에 타고 있었을 다른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축구공을 주고받았다. 졸업하고는 도서관에서 함께 재수를 했다. 오전 공부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목욕탕에 가서 냉탕을 즐겼다. 친구가 입대할 때는 경남 진주의 훈련소를 따라가 배웅을 하기도 했다. 1학기 중간고사 시험 전날이었다.


친구는 남다른 녀석이다. 만화 주인공 같다고 할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굽힘이 없다. 대학교 후배가 가난하다며 매월 몇십만 원씩 후원금을 주는가 하면 영어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 학교에 Free coffee라는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기도 했다. 같이 영어로 대화만 해주면 공짜로 커피를 사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 남의 이야기에 공감을 못할 때도 있고 (그래도 아내를 만나면서는 많이 바뀌었다.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 상식밖의 행동을 할 때도 종종 있다. 그래도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사람들을 좋아해서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선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선해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친구는 입대하고 얼마뒤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군생활을 시작한 이십 대 초반의 나이였다. 턱관절 장애라는 병이었는데 턱과 목의 통증으로 일과를 어려워했다. 통증은 밤낮없이 지속됐고 자는 동안은 이를 심하게 갈아 치아 보정기가 뚫릴 정도라고 했다. 치료를 위해 내로라하는 병원은 모두 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 전신 마취가 필요한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기는 그래도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았으니 괜찮은 삶이었다고, 한강에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했다. 턱이 나을 수 있다면 손가락은 모두 잘라버려도 괜찮을 것 같다고도 했다.


친구가 두 번째 전신마취 수술을 했을 때는 내가 강원도 인제에서 군생활을 할 때였다. 친구는 퇴원을 하고 내가 있는 숙소로 찾아와 며칠을 묵었다. 나는 장교였고 영외 숙소에 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친구는 수술이 끝나고 회복 기간 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같이 걷는데 조금 걸으면 숨이 차다며 잠시 멈추자고 했다. 걷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친구는 피부가 까맣고 허벅지 근육이 선명해 뛸 때면 말처럼 보이던 녀석이었다. 축구할 때면 달리기도 참 빨랐는데 이제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러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잠시만 쉬면서 가자고 하는 게 마음이 아팠다. 내가 출근해서 일과를 할 때면 친구는 인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내가 퇴근하고는 읍내의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갈비탕이 정말 맛있다며 좋아했다. 맛집이라고 좋아하던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다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아까는 왜 울었냐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왜 울었는지 나도 잘 이해가 안 됐다. 그러니 제대로 된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와 짐작해 보면 마음의 어딘가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는 친구의 행복했던 모습과 지치고 풀 죽었던 모습이 모두 있다. 같이 즐거웠던 추억도 내 안에 있고 그를 보며 마음 아파했던 기억도 내 안에 있다. 같이 공부하고, 축구하고, 밥 먹고, 놀고, 장난치고, 미래를 고민하고, 그렇게 보냈던 모든 시간이 내 안에 있었다. 그의 행동이 얄미워 미워했던 적도 있고 그의 가치관이 멋있어 동경했던 적도 있다. 내가 눈물 흘린 이유는 그의 앞날을 축복하는 예식장에서의 순간, 그 시간이 왠지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함께 했던 기억과 시간에 녹은 애증의 감정 속에 그를 좋아하고 그의 행복을 기원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 진동했기 때문이다. 그게 나를 울렸다.


다행히 요새는 그의 병이 많이 나은 것 같다. 요새도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일상을 못할 만큼은 아닌 것 같다. 친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종종, 때로는 자주, 시간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의 결혼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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