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 전에 쓴 글인데 깜빡 잊고 있다가 이제야 올립니다. 아니, 사실은 올리기 부끄러워 좀 고민했습니다.
사십 대 중반을 앞두고 난생처음으로 우울증 증세가 생겼습니다. 처음 발간해 본 브런치 북에서도 밝혔듯이, 팀에서 토사구팽 당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하루에 미팅이 15개 이상 넘쳐나던삶에서 갑자기 아무도 만날 일 없는 삶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 많고 많아서 도망치고 싶어 했던 미팅들이 그리워졌죠. 하루에도 수십 통 오던 이메일은 5통 이하로 줄었고, 그나마 오는 것들도 스팸 아니면 전체 이메일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중년 아저씨가 되어있었습니다. 두렵고 외로워졌습니다.
낙관적인 성격이라 우울증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사람들로 부터 더욱 멀리 도망치기 시작했죠.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브레이크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순도 100% 쇠공이 되어 심해로 끝없이 가라앉는 것 같았죠.가라앉고 또 가라앉아도 보다 더 깊은 어둠이 존재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될 뿐이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우울증을 고백하기도 하고, 저녁에 아내와 술 한 잔 기울이다 (부끄럽지만) 눈물을 왈칵 쏟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솔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결혼 15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며칠간'나'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허락해준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지금은 여행에서 돌아가는비행기 안입니다. 마흔 넘어 떠나보는 첫 솔로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여행을 통해 느낀 점을 기록해 두고 싶었습니다. 돌아갈 현실에서도 기억하고 싶은 다섯 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1. 실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 속에서 하루 종일 정처 없이 걷다가 먹다가 하다 보면, 어느새 혼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 보니, 남들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남들은 그냥 커다란 군중 덩어리였죠. 지나가면 잊히는. 그 증거로, 여행 중에 마주쳤던 사람의 얼굴을 지금 떠올리려 생각해보면 단 한 명의 얼굴도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지만 마치 얼굴은 없었던 것처럼. 남들에게 저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얼굴 없는 군중 덩어리의 구성원.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의 시작에는 '남'이 있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남'이 있기를 바랐고, '남'보다 뒤처진 나를 자책했습니다. 별로 이룬 것 없는 중년이란 것도 '남'이 만든 설정입니다. 저는 그냥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 먹은 청년일 뿐인데.
5일간의 여행을 길게 늘이면 인생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사는 것도 결국 더 많은 얼굴 없는 사람들과 스치고 지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그 '여행'을 마무리할 때에는 잘 기억도 안 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를 봐주길 바라고 기억해주길 바라고, 그 속에서 방황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아무도 제게 깊은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제가 뭘 하며 살던 잠시 쳐다볼 뿐, 모두 당신 인생 사느라 바쁠 터. 조금 지나고 돌이켜 보면 어차피 얼굴도 기억 안 날 텐데. 창피해하고 셈 내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실은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 일단 조금 자유로워졌습니다.
2.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 나여야 한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셀카를 찍을 일이 몇 번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가 셀카에 얼마나 서툰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발표자 소개 등을 위해 얼굴 사진을 보내달라고 할 때마다 혼자 나온 얼굴 사진을 찾느라 적잖이 애먹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브런치 프로필 사진도 사실 옆에 아내가 어깨동무하고 있는 것을 잘라낸 것입니다.
혼자 여행하다 보니, 문득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본 지 꽤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서 어쩔 줄 몰랐던 것이 언제였는지, 뭘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두 번째 사업에 실패하고 아빠와 남편으로서 본격적으로 자각하기 시작한 후 벌써 12년이 넘었습니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저는 어느새 아이들과 아내 뒤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행에서는 셀카를 찍는 것이 너무 부자연스러웠고, 마음에 드는 사진은 단 한 개도 없었습니다. 언제 생긴지도 모를 미간의 주름은 어느새 피부 깊숙이 박혀 어떤 표정을 지어도 사라지지 않았고, 눈꺼풀은 힘이 빠져 억지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 늘어져 보인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로션도 좀 발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급격하게 나이 먹어가는 이 나이 먹은 청년에 관심을 좀 기울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부끄럽다는 건 솔직하다는 거다.
솔로 여행에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다름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마음대로.
사춘기 소녀 포함 두 딸을 둔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어색하면서도 상당히 설레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저의 솔직한 욕망에 대해 적어봤습니다. 오로지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의 개인적인 욕망과 관심사. 그리고 여행 내내 그것들에만 솔직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막상 적어 놓고 보니 대부분이 먹고 마시는 것에 관련됐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부끄러워야 진정 솔직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샤워 안 하고 자는 것처럼 작은 것부터, 새벽에 나와 홀로 고기를 구워 먹는 일탈까지. 몇 시간이고 목적지 없이 걸어보는 것처럼 의미 없는 일부터, 내가 태어나 자란 동네를 직접 찾아가 보는 의미 있는 일까지. 솔로 여행 5일 간 철저히 제 마음대로 저의 욕망과 관심사에만 솔직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해지니 과감해졌습니다. 그것들이 초래할 수 있을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그냥 저질러버렸죠. 콱.
근 30년 만에 내가 태어나 자란 곳에 와 봤다. 뒷골목이 기억보다 많이 좁았다.
앞뒤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5일을 살았는데, 신기하게도 후회보다 짜릿하고 뿌듯한 일이 더 많았습니다. 인생, 그 5일처럼 3,500번 정도 더 살면 50년입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살다가 잘못되면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최대 삼천 번은 더 남아있는 거죠.
조금 부끄러워도 솔직하게 마음 가는 대로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말을 줄이면 주변이 보인다.
혼자 여행하다 보니 (당연하지만) 말이 줄었습니다. 식사 주문을 할 때 외에는 말을 안 해도 되니까 너무 편했습니다. 심지어는 말을 안 해도 주문이 가능한 식당도 있었죠. 마치 거실 소파에 앉은 것처럼 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비로소 힘이 나던 제 어딘가에 깊숙이 숨어있던 내성적 세포를 그렇게 발견했습니다.
말을 안 해도 된다는 건, 읽고 듣고 느낄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이 실종되고 나니 잠자고 있던 감성들이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자 이제 우리가 한 번 나서보실까' 하고 긴 잠에 빠졌던 갖가지 감성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느낌으로. 온몸이 감성의 촉수로 뒤덮여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세의 감성 괴물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온몸을 휘감은 채 너풀너풀 날리는 감성 촉수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속 여가수의 들숨까지 똑똑히 들렸고, 휴대폰을 보고 있는 맞은편 회사원의 살짝 올라간 입꼬리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한 노래를 위한 여가수의 정성이 느껴졌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 작은 기쁨을 발견한 회사원을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고 감사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흘려보냈을 뿐. 감성의 촉수가 살아나면서 주변의 모든 희로애락을 감지할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기고 나니, 감사하고 맛있어할 것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들이켜 보니 절로 하아, 하고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말을 줄였더니 주변의 의외로 아름답고 감사할 일들이 제법 보였습니다.
5. 비교는 '어제의 나'와 하면 된다.
솔로 여행인 데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칠 일도 없다 보니 자유로웠습니다. 제가 뭘 하든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정해진 일정이나 목적지가 없으니 비교할 대상도 없습니다. 못 한다고 다그칠 사람도 없죠.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순간순간 나름의 계획도 세우고, 잠시 정신줄 놓은 사이 기차를 놓치거나 하면 자책하기도 합니다. 다만 쫓긴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그냥 아차, 하고 다음 기차를 타면 그만이었습니다. 다음엔 놓치지 않고 잘 타면 그만이었죠.
현실 세계에서와는 달리 초조하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으로 커다란 물방울이 생겨 포근하게 고립된 느낌이었습니다. 제게로 향한 모든 소음이 차단된 것은 물론, 물방울 안에서는 시간도 다른 속도로 흘렀습니다. 남들이 출근하느라 정신없이 바쁠 때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남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오히려 분주히 돌아다니기도 했죠. 원래 살던 현실 세계에서는 곧 터지고 말 약한 물방울이지만, 솔로 여행에서는 건들 사람이 없으니 그렇게 터지지 않고 저와 함께해줬습니다. 그렇게 물방울은 남들의 시간대에서 저만의 시간대를 분리해 줬습니다.
뉴욕이 샌프란시스코보다 3시간 빠르다고 해서 3시간 앞서 간 것은 아니듯. 오바마는 55세에 은퇴했고 트럼프는 70세에 시작했듯. 누구는 25세에 CEO가 되지만 50세에 죽는 반면, 누구는 50세에 CEO가 되고 90세까지 살 듯.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시간대에서 삽니다. 자기만의 물방울 속에서 사는 거죠. 그 물방울 속에서는, 남들과 비교해 뒤떨어졌다고 초조해하거나 조금 앞서 갔다고 긴장을 늦출 일이 없습니다.
나만의 시간대에서 살면, 비교할 대상은 '어제의 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꽤 재미있는 여행이었습니다. 뭔가를 깨닫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었지만 아차, 하고 무릎을 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나'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지만, 그냥 멍하니 앉아 두세 시간을 훌쩍 보내 버린 일이 더 많았습니다. 너무 어두컴컴해서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지만, 오히려 저 끝에 마음의 빛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