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것보다 주는 게 사실 더 어렵다
미국에서 일하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문화 중에 하나가 피드백 주고받기이다. 시도 때도 없이 아비어미도 없이 가차 없다. 최악의 타이밍은 생일 아침에 받은 피드백이었고, 최악의 내용은 PM (Product Manager)으로서의 자격이 없다,였다. 그걸 Engineering Director에게 들었다.
PM으로 일하고 있는데 PM의 자격이 없다니. 원나잇 다음 날 아침, 당신은 남자의 자격이 없다, 고 쓰여 있는 쪽지를 읽는 기분보다 더 최악일 것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입니다)
다만 피드백을 받는 것은—하도 많이 받다 보면—나름 적응되지만, 피드백을 주는 것은 아직도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과 씨름하면서 나름 생각한 방법이 있는데 나에게는 유용했기 때문에, 정리해 봤다.
PM의 자격 운운한 피드백을 받았을 때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내용도 기분 나빴지만 무엇보다 황당했던 건, 사실 피드백 최초 제공자와 나 사이에 무려 여섯 명이나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여섯 명 중에는 Director가 두 명, Vice President가 한 명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구전 동화처럼 전해진 피드백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이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왜인지 어떻게 변했으면 하는지 등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최초 제공자도 찾지 못했고, 그냥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더 자세히 업데이트해달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으로 어영부영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피드백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원한다면 그 즉시, 직접 해야 한다. 즉시 해야 어떤 일 때문에 내가 그런 말을 하는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생생하게 공감할 수 있다. 직접 해야 피드백이 건설적인 대화로 흘러갈 수 있다. 상대방이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면 대답해 줄 수 있다. 진심이 담긴 그렁그렁한 눈빛을 전달할 수도 있고 미러링과 같은 제3의 언어, 즉 바디랭귀지를 통해 긴장감을 완화시킬 수 있다.
피드백은 구체적이어야 쓸모가 있고 설득력이 있다. 당신은 너무 공격적이에요,라고 피드백을 줘 봤자 뭐 어쩌라고, 라는 생각밖에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피드백 기술에는 COIN (Context, Observation, Impact, Next Step)이라는 방법이 꽤 유용하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복잡할 것도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이런 일이 있었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앞으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식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지난번에 너무 갑자기 백허그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화가 났어. 나도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다음부터는 인기척이라도 줬으면 좋겠어. 등에 손이라도 먼저 올리면 좋잖아.
(Image Source - imgur.com)
써 놓고 보니 전혀 설득력 없는 말이 되어 버렸다. 역시 연애는 젬병이군.
'좋은 의도'를 가지고 피드백을 줘라, 는 말은 많이 하지만 어떻게 좋은 의도를 보여준다는 말인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주는 피드백이야,라고 말해버리면 이미 사기꾼 같고, 솔까말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하는 말인 경우가 더 많다.
이때 좋은 방법은 내가 주는 피드백과 그 사람의 목표 또는 꿈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언젠가 한 팀원에게, 어딘가 비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대한 피드백을 준 일이 있다. 그 친구가 장차 Product Manager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행동 중심적 (action oriented)인 커뮤니케이션이 나중에 PM이 되기 위해 얼마나 효율적일 수 있는지에 얘기했다. 그리고 피드백에 따라 계속 '연습'하기로, 또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주기로 동의했다. 피드백에 대한 반응과 중장기적 성과의 측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피드백 중에 하나였다.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는 이유는 거의 모든 경우, 팀에 도움이 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가 문제가 있는 거다. 하지만 이것을, 문제의 원인은 당신, 이라는 식으로 끌고 나가게 되면 문제가 해결되어도 미움을 사거나, 문제도 해결 안 되고 미움만 사게 될 위험이 있다—어쨌든 미움을 사는 것이다.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의 기회에 초점을 맞춰 피드백을 주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너 때문에 우리 팀이 망하잖아, 가 아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우리 팀을 당신이 살릴 수 있다, 인 것이다.
(Image Source - Adventures in Product Management)
완벽주의자에 가까워 일처리가 느리면서 고집은 엄청 센 팀원과 일한 적이 있다. 다른 팀원들의 그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고, 나 역시 그냥 내보내느냐 아니면 함께 노력해보느냐 사이에서 갈등을 많이 했다. 여러 시도 끝에 결국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접근을 바꿔봤는데 그게 통했던 기억이 난다.
피드백을 주겠다고 만나서는 먼저 나의 고민—'보트'가 가라앉고 있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의 약한 모습을 먼저 공개해 일단 경계심부터 낮췄다. 그가 팔짱을 풀었다. 그 고민의 원인이 일의 속도에 있다고 했고, 일단 Quality 대신 Speed에 집중할 수 있다면—니 옆의 '구멍'을 메꿔주면—우리 팀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나뿐 아니라 다른 팀원들이 어려워한다는 잔인한 사실에 대해서는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했다. 그리고 팀의 목표 달성 여부의 중요한 키를 당신이 쥐고 있다고 했다. 그의 다리가 나를 향했다. (심리학적으로 하체의 방향이 그 사람의 진정한 관심사를 드러낸다고 한다. 바에서 아름다운 여성에게 대시하는데 그 여성의 다리가 출구를 향하고 있다면 포기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물론 단 한 번의 피드백으로 그가 소설처럼 한 번에 180도 변하진 않았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유연한 동료가 되어간 것은 분명하다. 꽤 의미 있는 시도였고, 그와는 2년 반을 더 같이 일했다.
피드백은 내가 가진 그 사람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의 차이에서 시작한다. 갓난아기가 기저귀에 오줌을 싼다고 피드백을 주진 않지만, 내가 지금 그러면 아내에게 많은 '피드백'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막 나가도 소변은 가리는 게 나에 대한 기대치이기 때문이다.
높은 기대치는 거의 필연적으로 피드백을 잉태한다.
그러면 그렇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는 않다. 이 피드백은 내가 당신에게 가지고 있는 높은 기대치의 산물이야,라고 누가 나에게 말한다면 바로 "훗"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때 좋은 방법은 장점을 섞어서 말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장점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면 그에 대한 나의 높은 기대치를 암시할 수 있다. 경계심도 낮추고 대화가 발전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높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당신은 정말 아름답고 귀엽지만 그렇다고 마냥 쉽지만은 않은, 지구 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생명체야. 그 밀당이야말로 당신의 가장 큰 매력이지. 하지만 요즘 나를 너무 멀리하는 것 같아. 밀당도 결국 강력한 당김이 있어야 빛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밀기만 하면 아프리카 초원의 코뿔소와 다를 바 없다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내가 부르면 바로 달려와 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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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 쭈. 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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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 youtube.com)
피드백을 줄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어디서 들은 얘기라고 하면서 하거나, 남과 비교하거나, 나라면 그렇게 안 했을 거라고 하는 거다. 진정성이 안 느껴져 수비적이 되거나, 그냥 열 받아서 귀가 닫히거나, 시건방져 보여서 피드백 주는 사람이 미워진다.
피드백을 받는 것도 잘 받는 방법이 있다.
일단 얘기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고 (그게 무슨 내용이든), 이런 이런 부분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겠어라고 물어보고, 나름의 요점 정리로 마무리하는 거다. 상대방이 뿌듯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피드백 하나하나 진지하게 대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고, 앞으로 고쳐나갈 부분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다. 간단명료한 정리는 실제 그렇게 변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변했다는 느낌을 심어주기도 한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 두 가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