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list
한동안 달리기에 빠져있을 때
애플뮤직앱에는 내 달리기용 플레이리스트가 있었어.
두 개가 있었는데 한 시간짜리와 두 시간 반짜리로
각각 10km, 하프에 맞게 정성 들여 만들었었지.
시간에 맞춰서 달리기 초반에서 중간까지는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위해
약간의 템포 있는 노래들로 하고,
후반부엔 아드레날린 바짝 끌어올리는
쳐달리는 노래들이 있었어.
오랫동안 나의 달리기 메이트로 큰 역할을 했었지.
한 번은 새 아이폰으로 교체하면서
그 플레이리스트가 다 삭제된 거야.
너무 황당하더라.
리스트를 다른데 기록하지 않아서
황당하고 속상했지만, 다시 만들면 되는 거였어.
근데, 플레이리스트가 지워졌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달리기가 재미없어지고
싫어지더라. 달리기 플리가 없으니
뛰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더라고…
이해 안 되는 얘기지?
지금은 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지만,
공을 들여 정성껏 만든 무엇인가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을 느꼈던 거 같아.
사실은 그때가 번아웃이 시작될 때였어.
그냥 달리기도 다른 것들도 다 싫어져서
핑곗거리가 필요했던 거뿐이었어.
그깟 플레이리스트가 뭐라고…
플레이리스트가 지워지면 다시 만들면 되고,
내가 지워지면 나를 다시 찾으면 되고,
정 나를 못 찾겠으면 다시 만들면 되는 거지.
내가 있으면 플레이리스트도 달리기도
다 가능한 거였어.
올해 나의 달리기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어.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건 몇 달 되었는데,
만들 생각을 안 하다가 문득 하고 싶어 지더라고.
이번 거는 효율적이고 완성된 버전이 아닌
그날그날 달릴 때 듣고 싶은 노래들로
채워나가려고 해.
또 달리면서 채우면 언젠가 완성되겠지.
… 왠지 이 버전도 참 좋은 메이트가 될 듯해.
* 처키의 달리기용 플레이리스트
https://music.apple.com/kr/playlist/%EB%8B%AC%EB%A6%AC%EA%B8%B0/pl.u-leyl1KPfxXAeD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