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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조각사 Nov 02. 2023

낭비라는 단어를 만났다.

- [거기, 있었다는 것(2024)] 중에서

최근에 본 영상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이 하나 있다. 바로 이서진 씨가 "20대는 누구나 힘들어."라고 말했던 영상이었다. 나는 각자의 시계라든가 시기라는 것, 굴곡이라는 것 그런 것들에 빠져서 통찰하는 시기에 그런 영상을 만났으니 너무 크게 와닿았다.


그리고 오늘 또 좋은 영상을 보았다. 이번엔 어떤 해외의 팟캐스트 영상이었는데, 20대에게 말하는 비슷한 주제였다. 그런데 단어가 살짝 달랐다. "20대는 시간을 낭비할 때에요."라고 말했다. 낭비라는 단어는 생각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어 줬다.


'낭비' 힘들다는 말과 의미는 비슷했지만 나에겐 약간의 향수가 있는 단어였다. 뉴런이 그걸 알아챘는지. 스무 살의 기억을 막 꺼내왔다. 스무 살 때 최재천 교수님의 생물학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거품예찬이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자연은 '낭비'를 좋아하고, 우리 인간도 그 모습을 따라야 마음이 가장 편하지 않을까? 아마 그런 의미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렇게 반문했었다. 아니다. 우린 낭비하지 않고, 더 깊게 가야 한다. 낭비를 줄이는 방법을 고찰하면서 성장해 온 게 인간이다.라는 반론을 질문게시판(조교실)에 던지고 만족하지 못한 답을 얻고는 역시 내 말이 맞아. 답을 제대로 못하잖아! 하고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지나지 않았지만 꽤 부끄럽게 느낀다. 왜냐하면 지금은 누구보다도 낭비를 사랑하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낭비를 배척하려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씩 해주곤 한다.


그렇지만 그게 낭비인지는 인지하지 못한 채였던 게 나도 살짝 아쉬웠다. 그저 더 빨리, 더 많이, 더 깊게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한 시기의 굴곡 속에서 빨리, 많이, 깊게 가 아니고도 의미 있다"라며 장황하게 설명해 왔는데, 그게 낭비의 의미였다. 어제는 일을 안 하던 뉴런이 열심히 일을 해서, 최근 내가 자주 해오던 일을 쉽게 알려줬다. 나는 낭비의 편에 서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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