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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May 11. 2024

허페이 견문록

1일 차

쑤저우에서 일을 마치고 올라탄 열차는 이제 안후이의 허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기차 안에서 냄새를 피우는 사람이 거의 없고 떠드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무엇보다 열차 내 냄새가 거의 없어져서 탈만하다. 나는 안후이를 '빗겨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북방의 세력이 화북에서 강남으로 내려올 때 안후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형주를 포함하여 서쪽의 세력이 동진할 때에도 안후이는 '생략'한다. 강남이나 형주에서 북방으로 진격할 때에도 안후이는 대략 '생략'된다. 즉 역사의 주역이 되어 본 일이 대략 없는 곳이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도,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하고서도 안후이는 각광받지 못했다. 80년대 중국 드라마에 나오는 가정부는 대개 안후이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필자가 이제 영구 귀국을 두 달도 안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한번 가 보지 못한 지방 3 개 성 중의 하나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 기업에서 강의를 부탁해 주어 쑤저우에 가는 기회가 생긴 참에 허페이를 들르기로 집사람의 윤허를 받았다.


중국의 웬만한 큰 도시는 과거 한 나라의 수도였던 적이 많다. 예를 들어 지금 이야기한 쑤저우는 삼국지로 유명한 오나라의 수도였다. 손권이 나중에 중원을 차지할 생각으로 수도를 북방으로 이전했는데 그곳이 지금의 난징이다. 그런가 하면 항저우는 오나라를 멸망시킨 월의 수도가 있었던 곳이다. 수나라 때 전국 수자원 관리에 들어가 대운하를 만들면서 화이허가 바다로 잘 빠지도록 하기 위해 화이허를 장강으로 이었는데 그로 인해서 천하 수운의 중심도시, 요즘 말로 하면 물류 중심지가 된 곳이 볶은밥으로 유명한 양주이다. 그런데 허페이는 어떤 곳일까? 허페이는 줄곧 군, 또는 현 등 지방 행정 구역이었다가 신 중국이 성립된 1949년에 성회, 즉 안후이 성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니까 현재의 중국 이전에는 이렇다 할 중요 도시가 아니었던 셈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동부 연안 개방 도시들을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안후이는 한 발 뒤로 위치해 있어 그 혜택을 받지 못했다. 중부 지역 개발이 이루어지며 총칭, 청두, 정저우 등이 부각될 때에도 안후이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서부 대개발이 이루어지며 시안 등이 중심 도시로 등장하고 일대일로의 추진에 따라 여러 도시들이 유럽으로 가는 철도와 연결이 되었지만 역시 허페이는 별 관계가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허페이는 '빗겨 있는 도시'라고 하는 것이다.


허페이로 가는 열차를 타니 우선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 달랐다. 쑤저우에서 허페이를 거치는 열차들은 자연스럽게 서쪽으로 가게 된다. 아래 지도를 보면 중국 서부 지역에는 산들로 막혀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쪽의 태행산맥을 기준으로 동쪽의 중원 지역과 서쪽의 산골(?)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쪽의 북부는 친링산맥의 이북을 뜻하는데 태행산맥을 넘어 황허를 따라 발달한 황토 고원이 끝없이 이어진다. 황토 고원의 남쪽에는 거친 산들로 완전히 둘러싸인 쓰촨 분지이며 이 분지의 협곡을 따라 흘러나온 강물이 이어지며 징저우, 우한, 창사, 쑤저우, 상하이로 대도시들이 발달해 있다. 징저우에서 우한에 이르는 지역이 과거 삼국지의 유비가 기반했던 형주이다. 그 동쪽으로는 장강으로 나뉘어 강의 남쪽으로 보이는 지역은 과거에는 장강 남쪽 지역이 산지여서 별로 중요하지 않아 장강의 서쪽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장시성이다. 그리고 쑤저우, 난징, 항저우, 상하이, 난징 등 지역을 강동이라고 불렀다. 

강동과 그 북쪽인 중원 지역을 나누는 것은 중국 3대 하천인 화이허(淮河), 또는 화이쉐이(淮水)이다. 화이안이라든가 화이난 등의 지명은 모두 이 화이허의 이름에서 비롯한 것이다. 삼국지의 오나라는 원래 쑤저우가 수도였으나 손권이 중원 재패의 야심을 품고 난징으로 천도하였다. 허페이는 대륙의 세 세력, 삼국지로 생각하면 쉬운데 오나라, 촉나라, 위나라가 모두 머리를 맞대는 지역이어서 쉽게 공격하기에는 지정학적인 변수가 크고, 큰 투자를 하기에는 방어 못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발전한 산업이 없다. 그러니 항상 역사의 중심에서 빗겨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무튼 쑤저우에서 난징을 지나 허페이로 가면 승객들의 모습이 점점 달라진다. 뭔가 겸손한 사람들이 늘어나며 차내에서 떠드는 소리의 강도도 약해지고 사람들끼리 조우하는 모습도 조용하고 자제하는 느낌이다. 어쩌면 필자의 편견이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허페이에 도착하자 커다란 출구가 맞이한다. 외국인은 자동 개찰구를 사용할 수가 없어 오른쪽 끝에 있는 유인 개찰구를 향했다. 아뿔싸! 사람이 없다. 한참을 기다리며 손을 흔드니 멀리서 직원 한 사람이 보고는 자기도 손을 흔든다. 오잉?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알고 보니 왼쪽 끝에 있는 유인 개찰구에 사람이 있었다. 개찰구를 나오자 곧바로 차 필요 없냐는 소위 헤이처(黑車) 삐끼들이 접근한다. 필자는 진작에 택시를 타보려 결심했기에 곧바로 택시 승강장으로 갔고 곧바로 차를 탈 수 있었다. 베이징에서는 디디 때문에 택시 기사들이 너무나 힘들어한다고 한다. 택시 기사들도 돈을 좀 벌어야 할 것이 아닌가.

차 안에서 만난 허페이 거리의 모습은 일단 한 성의 성회 같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큰 건물이 없다. 게다가 고층 건물은 대부분 아파트이거나 호텔이다. 오토바이가 많아서 역시 남방이라는 느낌을 준다. 호텔은 상당히 번화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택시 말로는 호텔 앞까지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역시! 여행사 사이트에서 예약을 할 때 이 호텔은 상위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이는 호텔이 광고비를 사이트에 지불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5성급인데 가격도 착하고(지방 4성급 가격) 심지어 예약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걸로 장사가 안 되는 호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구글 맵에 노출된 정보에서 4성급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호텔을 싫어하지 않는다. 5성급 호텔을 겨냥하여 과대 투자했다가 장사가 안되어 4성급으로 주저앉은 호텔들은 대부분 시설은 있으나 개점휴업 상태인 곳들이 많다. 쓸데없는 화려함보다 공간이 넓고 사람이 적은 곳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나쁘지 않은 곳이다. 다행히 호텔 예약은 쉽게 확인이 되었고 방은 예상대로 큼지막했다. 인테리어는 어딘가 고급 호텔에서 '복붙'한 느낌이었는데 적어도 냄새가 나지 않아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호텔에서 나가서 저녁을 하려 했을 때였다. 먼저 엘리베이터가 문제였다. 하강을 시작하자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중국이다! 두부 시공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점점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올라갈 때는 보다 안정적이고 사람 수가 많으면 진동이 덜하다.


이 호텔은 아마도 허페이 번화가이고 고급 쇼핑센터의 일부이다. 맞은편에는 고등학교가 있어 하교 시간이 된 듯 학부모들이 모여들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매우 중국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식사할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어 주변을 돌며 식당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게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우선 안후이에 왔으니 안후이 음식을 먹어 보고 싶었는데 맵고 자극적인 저가 음식 외에는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중국 음식에 안후이 음식이 좋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한 바퀴 돌고 허탈해하던 차에 갑자기 뇌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고급 백화점에 음식점이 있듯이 이 쇼핑센터에도 음식점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그리고 빙고! 제법 음식점처럼 보이는 음식점들이 있었다.

심지어 한국 음식점이 있었는데 안후이까지 와서 한국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혼자 가서 고기 구을 일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음식점들을 돌고 돌아도 마땅한 곳이 없었다. 결국 가장 음식점의 디자인이 잘 되어 있는 것을 골랐는데 그게 바로 샹차이(湘菜) 음식점이었다. 샹차이는 후난(湖南) 음식을 말한다. 후베이와 후난은 동정호를 기준으로 한다. 쓰촨에서 협곡을 굽이굽이 흘러나온 장강은 삼국지 촉나라 지역의 평야에 돌입하며 막대한 물을 쏟아 놓는다. 이 물이 바다에 비견되는 동정호를 이룬다. 지금은 수량이 줄어들어 동정호 별거 아니네 라는 인상을 주지만 과거에는 매우 큰 호수였다. 그리고 그 호수를 이루기 전, 삼협에서 나온 직후 사이는 수량이 늘면 물에 잠기고 수량이 줄면 거대한 벌판이 되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남북 간에 자유로운 왕래가 어려웠고 동정호의 북쪽인 후베이와 남쪽인 후난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촉나라 지역에서 강남인 오나라 지역으로 가는 관문이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유명해진 우한이다.  

우한을 나오면 장시성이 나오는데 바로 이렇게 후베이, 후난 장시 세 성은 서로 인접하면서 모두 매우 매운맛의 음식들을 발달시켜 왔다. 장시성 사람인 장인어른은 생전에 사람들은 샹차이가 맵다지만 후난이 더 매우며 그 후난 사람들이 장시에 오면 매워한다고 은근히 장시성 음식이 매운 것을 자랑하곤 하셨다.


그렇다. 매웠다. 가장 안 매운 음식들로 골라 시켰는데 다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음식을 남기고 지불을 하려 보니 돈내기 싫어서 입가에 흐르는 기름을 손가락을 닦았는데 냅킨 가격이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하며 역정을 내려는 순간 발견한 가격. 1위안! 모든 것이 용서가 되며 갑자기 기분이 풀리는 나라는 놈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무튼 허페이에 머무는 동안 음식은 고생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서방 세계 전국 통일형 패스트푸드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필자가 꿈꾸어왔던 노후의 인생은 잘 팔리는 작가가 되어 세계를 여행하며 현지의 호텔, 커피숍, 하숙집 등을 전전하며 여유를 가지고 한편으로 글을 쓰며 한편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조그만 음식점 주인아줌마와 실없는 농담도 주고받을 생각이다. 그런 생활이 글 고료로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이렇게 강연을 부탁하거나 고료가 조금 들어왔을 때 한 번쯤 몇 일간이라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즐거운 일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며 아, 나는 행복해하려는 순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OMG! 사모님이 분명히 비 올 확률 50%이며 다음 날부터는 아예 확률이 낮다고 했는데! 행복 모드 긴급 중지! 이제부터 불평불만 모드로... 빠지려는 멘털을 붙잡고 남들은 보기 어려운 비 오는 허페이를 보는 행운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려 한다. 2일째 견문록은 박물관과 필자가 좋아하는 리홍장 옛집을 가보고 쓸 생각이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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