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옥기 이야기
이번 이야기는 공상과학 소설이다. 필자의 이번 안후이 박물원 경험에서 가장 기뻤던 일이 사진의 독수리 옥패를 발견한 일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박물원의 유물들을 훑으며 지나가다가 발견한 것이다. 이 옥 독수리는 여러 글과 책에서 본 기억이 났기에 일단 사진부터 찍어 두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 유물을 어디서 보았더라? 고고학 관련 글에서도 본 것 같고 우주인이 인류 문명을 창시했다 같은 SF 이야기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결국 베이징 집으로 돌아와 다시 찾아보기로 하였다.
일단 이 유물은 안후이의 한산(含山) 현에 있는 링자탄(凌家滩) 마을에서 발견된 유적지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한다. 총면적 약 160만㎡로 5천여 년 전 대규모 신석기 후기 정착지였다. 유적지 일대에는 신석기 후기 인공적으로 조성된 제단, 대규모 씨족묘지, 제사 구덩이, 적석총과 적석원 등 중요한 유적이 있으며, 정교한 옥제 의례 도구, 석기,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링자탄 문화는 중국 5,000년 문명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링자탄 유적에서 발굴된 모든 무덤의 부장품에서 혈통적 씨족의 특징을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거주민들은 야우차우(有巢) 족이라 부르고 링자탄은 이들의 후기 단계에 해당된다고 한다. 즉 후기 신석기시대이다. 그러므로 상나라 문명에 통합되기 직전까지의 신석기 및 옥기 문화를 보여 주는 것이고 이들의 토속 생활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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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 유물을 본 사람 중에 수메르의 독수리를 연상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그들은 이를 다시 한민족과 연결을 시키고는 한다. 사람마다 논리는 다르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연상 내지 연관을 시키는 것이다. 먼저 중국 고대, 즉 하나라, 상나라 시기에 중국의 동부 지역에는 구이(九夷) 또는 동이(东夷)가 큰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역사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이를 근거로 한민족이 동이이기 때문에 중국 산동성을 비롯하여 중국 상당 규모의 영역이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필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어차피 하나라는 중국 역사학계조차 유물로 국가 성립이 증명되지 않는 시대의 일이고 변두리의 민족들이 어느 정도의 인구, 강역, 문화, 문명,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들은 여기서 환단고기의 (고) 조선을 떠올리며 13개 한국 중 수미르 한국이 수메르라고 연결시킨다. 그러면 수메르의 유물로 큰 특징을 보이는 독수리가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한국은 (고) 조선의 정통을 전승하는 국가이며 13개 한국 중 수메르의 유물에 나오는 독수리 상징이 중국의 동부를 차지하고 있던 동이족 유물에서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된다.
이런 논리는 중국 동부가 한국 땅이었다는 논리로 이어지며 백이숙제가 동이였던 상나라도 동이족의 국가였고 따라서 중국, 한국 할 것 없이 다 우리 땅이었다는 논리로 발전한다.
필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논쟁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고대사를 보는 역사관이 만일 지역을 한정하지 않은 민족 중심으로 보는 역사관이라면 이에 일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바이칼 호 근처에서 기원하여 만주 지역으로 이동했고 고(구)려를 건국하고 후에 대한민국에까지 이르렀다면 우리는 북방 유목민족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이나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이나, 거란족, 남북조 북조의 여러 국가들을 세우고 당나라를 세웠던 선비족이나 한나라 때의 흉노나 심지어 상나라 때의 강족 모두 우리 민족이다. 적어도 사촌쯤은 되지 않는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들은 즉시 "그러니까 우리 민족이 중국을 다스렸다"라고 논리가 발전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지금 중국에 있는 한족들 중 상당수가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우리 민족 또는 우리 친척으로 생각하는가? "아이고 알고 보니 중국 사람들이나 우리나 같은 식구네" 하면서 서로 얼싸안고 좋아하는가 말이다. 지금의 역사 논쟁은 "내가 너를 정복했네 네가 나를 정복했네"를 두고 싸운다.
사실 고대 한일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줄곧 교류와 왕래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당시 왕이 누구였고 귀족이 누구든지 간에 민중들은 먹고살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고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 일본에서 한반도로 건너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한일 두 지역에 서로의 문물이 대량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석이 "아. 우리는 오래전부터 가족, 친척, 또는 친구였군요. 아이고 좋아라!"가 되질 않는다. 서로 간에 "이놈아 우리가 너희를 다스렸던 증거야!"라고 싸운다. 필자는 이런 역사 논쟁이 정말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필자는 안후이 독수리의 날개에 주의한다. 날개에 뚫린 두 개의 구멍은 그저 실을 집어넣어 묶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눈과 콧구멍을 표현한 것일 수도, 양쪽 모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입으로 보이는 부분이 좌우 양쪽 모두 같은 모양으로 가공된 것을 보면 날개를 표현했다고 보기가 조금 어렵다. 게다가 눈일 수 있는 부분 위쪽에는 불쑥 튀어나온 부분이 역시 좌우 동형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귀로 보인다. 날개에 이런 돌기가 있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 부분은 날개라기보다는 뭍짐승으로 보이고 모양이 돼지, 쥐, 또는 맥으로 보인다. 만일 그런 짐승을 표현한 것이라면 이 옥기는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머리와 몸통, 그리고 꼬리날개까지는 의심의 여지없이 새이며 독수리나 매 같은 맹금류로 보인다.
실마리는 새의 몸통에 조각되어 있는 문양이다. 아마도 태양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 새가 삼족오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삼족오 관련 문물은 고대 중국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으니 안후이 지역에서 나왔다는 것이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은가 싶다. 삼족오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던 없던 만일 이 몸통의 문양이 태양이라면 이 옥기가 실제 현실 속의 새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상징으로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된다. 그러면 양 날개가 사실은 날개가 아니라 짐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옥기는 대체로 당시의 샤먼이나 부족장 같은 이가 신성한 이미지로서 아마도 줄에 묶어 장식품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아마 가슴쯤에 묶어두지 않았을까?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왔으니 말이다. 5천 년 전이라면 중국 땅에 아직 국가가 성립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각지에서 부족들이 나름대로 무리를 지어 살아오고 있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공동생활을 하며 씨족에 기반한 무리일 가능성이 크고 가장 어른이 족장 겸 샤먼으로서 무리를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는 이 옥기가 권위와 신성의 상징으로서 빛나고 있었으리라. 이 장면에서 굳이 이 부족이 화하족이었는지 동이족이었는지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필자의 이번 안후이 여행기는 이 글로 마무리를 하려 한다. 필자는 6월 말 한국으로 영구 귀국을 하니 앞으로 다시 중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을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만일 그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견문록을 꼭 남기도록 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