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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W Dec 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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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국가 R&D(기술개발과 기술이전)

국가 R&D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이어 나오는 이야기가 기술이전이다. 개발된 기술을 높은 가격으로 사기업에 이전하고, 개발한 연구원들은 거액의 기술료로 보상받는다는 해피엔딩의 무용담을 듣다 보면 연구원이란 직업은 무슨 판타지 영화 주인공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추악한 디테일이 스멀스멀 눈을 뜰 때가 종종 있다. 100 미터 미남미녀가 1 미터 추남추녀로 밝혀지는 슬픈 스토리와도 같다. 그래서 먼저 기술 이전의 문제적 사례 몇 가지를 나열해볼까 한다.


기술이전 A는 국가 R&D 과제 때 ‘참여기업'으로 들어와 연구비를 배분받아 수행한 결과이다. 애초에 연구비를 배분받을 때 내야 할 기술료(대개는 정액일 때 쓰는 수법)를 감안하여 과제비를 나눈다. 결국 기술료는 정부출연금으로 더 받은 만큼 사내 비용으로 떨어내 처리하게 된다. 이런 돌려막기를 가리켜 업계에서는 ‘관행'이라 한다. 


기술이전 B는 이전받는 기업의 사업내용을 찬찬히 살펴봤을 때, 왜 거액을 내고 기술이전을 받는지 영문을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당해연도 매출은 물품과 장비 납품이고, 국외 유명 소프트웨어 내지는 장비 한국 에이전트이다. 


기술이전 C는 수년 내에 상장을 목표로 하는 비상장 중견기업이 수십 억을 내고 국내 유수 대학교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았다고 대서특필됐다. 이미 여의도 증권가 쪽에선 여러 해 전부터 계속 ‘놀라운 신기술'이 개발되었고 조만간에 모 기업이 이전받아 제품화할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바뀐다. 이게 미래다. 하고 찌라시 설레발이 돌았다(※ 그런데, 이게 10여 년 전 이야기다. 놀랄만한 제품은 나온 적도 없고 나올 예정도 없다).


기술이전 D는 상장사가 모 정출연으로부터 주기적으로 수억에서 십 수억 정도씩 ‘기술이전'을 받은 결과이다. ‘기술이전'으로 거액을 지출한 상장사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회사의 미래 먹거리 사업 중추가 될 핵심 기술을 외부로부터 수혈받았고, 탐방보고서에도 ‘전망 밝음'으로 분류되며 주가는 연일 상승세에 있다. ‘기술이전'에 쓴 경비는 회사 돈인데, 대주주는 소유 지분 평가액이 급증했다.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난 후에 이전받은 기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매출은 당연히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두 가지만 들자면, 모 명문대학교가 협잡한 2000년대 초반, 이전받은 기술 없이 세계 최고라 외친 벤처사 상장 사기 사건과, 2000년대 중후반, 모 유사 정출연의 사기 기술이전으로 상장사 주가가 수십 배 폭등한 참사가 있다. 이 두 사례는 공히 특정 정치 세력의 정치 비자금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는데, 이 중 하나는 게이트급으로 비화됐으나 실체 규명 없이 흐지부지되었다). 


기술이전 E는 상장 혹은 비상장사가 대학교 혹은 정출연이 기보유한 지적 재산권 중 일부의 소유권 혹은 실시권을 구매하는 형태이다. 기술 문서와 권리는 팔렸지만, 기술이전 후 사업 적용 여부는 불확실할 때가 많다(필자의 특허 2건이 얼마 전 일본 증시에 상장한 한국 전지 소재 업체에게 팔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 당시 기술 개발은 필자 혼자 한 것이라 기술 내용을 아는 다른 연구원이 없다. 그럼에도, 이 업체는 특허만 구매했고 필자에게 몇 년째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특허 판매 후 필자의 전 직장은 필자에게 보상을 한 바 없다).


위의 사례를 믿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모든 문제적 사례가 연구 및 기업 활동 현장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이다. 위의 사례 중 어느 것도 ‘기술이전' 문제 자체로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었을 정도다. 세계 최고 기술이 개발됐다는 허황된 홍보용 과장 보도와 사실상 실패한 기술이전이 태반임에도 말이다. 그리고, 이 실패한 기술이전은 실패 사실이 함구되어 여전히 그 연구자의 빛나는 연구 성공사례로 국가 R&D 선정 및 결과 평가 때마다 자랑스럽게(?) 인용되며 매체들조차 확인 없이 성공사례로 재인용한다. 실패했음에도 말이다. 보도된 기술이전의 절반만 성공적이었어도, 우리나라는 ‘전우주적인’ 선진국가에 달과 화성 정복도 가장 먼저 이뤄냈을 것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국가 R&D의 기술개발 자체가 실체 없는 사례가 보고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기와 같은 기술이전 실패와 사기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드러나는 예는 극히 드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개, 기술적 전문성 때문에 각 분야의 ‘이너서클’에서 실체 없는 기술이전이 하나라도 들통나면 분야 전체가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범죄적 회피 본능을 발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문제 제기자를 되려 중상모략하며 사안을 덮는 경우가 많았는데 문제 제기를 그 분야의 거물이 할 때에나 개선의 기미가 보일 정도로 부패의 일상화가 이뤄져 있다. 더욱이 부처 감사실과 감사원이 기술적 전문성이 떨어져 적발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사기에 다름 아닌 ‘기술이전’도 처벌받지 않고 은폐되어 온 게 국가 R&D의 해묵은 실상이기도 하다. 그렇게 국민 세금은 낭비된다.


사기 수준의 기술이전 뒤에는 언제나 허세 가득한 기술개발 홍보가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 결과 홍보 기사란 게 국가 R&D 과제 수행 후 ‘홍보의 의무'라는 게 평가 항목에 있었기 때문에 시작된 사달이었다. 그런데, 홍보의 의무에 따라 각 기관 홍보실에서 보도자료로 배포한 내용들을 국민들은 늘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정말 과학기술 선진국이 되었고, 학교나 연구소에서 기술만 개발하면 기술이 바로바로 이전되어 한두 해 후에 바로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나오는 복 받은 기술선진국에 산다는 망상과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나마 요즘은 매체의 발달로 거품이 조금 빠진 수준이다.


학교나 연구소의 랩에 있는 사람들이 국가 R&D에 연예산 수십억 원을 달라며 과제 평가받으러 온 과제들을 보면 꼭 빠지지 않는 게, 자신들이 개발하고자 하는 이 과제 목표가 성공하면(국가 R&D 과제 성공 판정이 ‘사실상' 90%를 훌쩍 넘는다 봐도 될 정도이니 모두 성공한다 봐도 된다.), 그 결과로 년간 수천억 원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말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래야 년간 수십억 원의 예산 지원 근거가 성립할 수 있으니, 그 또한 고육지책인 게다.


그런데 말이다. 대단한 기술을 가졌다 찾아오거나 과제 제안하자며 오는 이들에게 필자가 늘 해주는 습관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기술력이면, 정부 돈 달라고 하지 말고 민간에서 펀딩을 받으세요.”


실제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펀딩 소스를 정부에 기대지 않고 민간에서 찾는 사례가 훨씬 많다. 견실한 벤처들이 대개 그런 테크 트리를 거쳐 성장한다. 그리고 자본을 가진 이들 중 견실한 측은 매의 눈으로 괜찮은 아이디어와 사업 아이템을 잡은 후 바로 낚아채서 투자하여 폭풍 같이 질주한다. 필자도 지인의 괜찮은 아이디어를 보고, 정부 R&D를 권하지 않고 바로 엑셀러레이터 쪽을 붙여줄 정도였다. 그래도 시드 머니는 정부가 줘야 하지 않냐고 항변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이들에게 필자는 이야기한다. 


“실체 없고 가망 없는 인터넷 자료 복붙 수준 제안서로 기천만원 주는 건 눈먼 국가 R&D 자금밖에 없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연구자 자신이 당장 사업화가 가능하고 제품화도 식은 죽 먹기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진짜로 갖고 있다면, 괜히 국가 R&D 자금을 받아 기술 이전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말고 엑셀러레이터 펀딩을 받거나 사기업 자금으로 개발하길 권한다. 국가 R&D는 연구비 정산과 실적 보고가 세세하게 터치받고 해야 할 행정 업무도 많다. 그러니 기술 이전할만한 진정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있다면, 복잡한 정산과 형식적인 결과 보고가 있어야 하는 국가 R&D 예산 집행 절차에 불평하지 말고 결과를 중시하고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사기업 민간 자금을 따는 게 백 번 낫다.


이처럼, 상기의 문제적 기술이전 사례의 또 다른 공통점도 모두 국가 R&D의 기술개발을 이전한답시고 모양 갖추다가 벌어진 참사이다. 국민 세금을 재원으로 받아 수행한 기술료 징수, 비 징수 과제 모두가 기술이전이 끼어들기만 하면 이처럼 사달이 난다. 국가 R&D 개발 결과인 기술이전에 관해 새로이 정립해야 할 때가 왔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국민 세금을 재원으로 수행하는 R&D 개발 결과는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에게 수혜가 돌아가도록 해야 하고 누구든 쓸 수 있는 공공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국가 R&D 개발 사업은 점차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기업은 국가로부터의 R&D 자금 지원 이외의 다른 방식과 형식의 지원을 받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갈 길은 멀고 바꿀 건 많다. 


리모델링 수준이 아니라 철거하고 재건축을 해야 하는데, 전혀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국가 R&D 성과는 누수 없이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야 함’이 전제되어야 하고, 국가 R&D로 개발된 결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거래되지 않고 자유로이 이용되어야 하며, 연구자들이 개발 결과를 팔기 위한 영업 전선에 뛰어드는 일은 줄어들어야 한다. 기업은 기개발된 내용이나 무관한 결과물로 국가 R&D 성과인양 정부 부처 성과 보고회에 끌려 다니지 않아야 하며, 창조경제혁신센터 같은 자생적일 수 없는 가짜 생태계로 전시행정에 내몰리지 않도록, 소위 ‘산업부  R&D’는 원점에서 검토하여 폐지 내지는 최소화하여 국가 R&D의 패러다임을 재정립하여야 하고 국가 R&D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에게 공허한 기술이전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국가 R&D 성과의 무의미한 기술이전 같은 ‘알맹이 없는 잔치’ 같은 생쑈는 이걸로 충분하니 끝내자. 그리고, ‘일상적인 연구 문화’를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앞서 이야기한 ‘꾸준한 스몰 사이즈 연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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