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전과 산학협력의 산업역군, 대학원생
예전에 연구원을 뽑을 때 서류 심사를 하던 중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갓 박사학위를 딴 프레시 닥터와 석사 경력직을 뽑았는데, 자신의 실적이라 적어낸 것이 거의 10편에 가까운 과제 수행과 주제가 적혀 있었었다. 물론, 극히 드물게 그런 ‘사기 캐릭'이 있기는 하지만, 하필 10여 편의 실적 중 다수가 누구의 연구 결과로 이미 출간됐는지, 그리고 누구의 학위논문인지를 이미 알던 내용이라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선배의 일을 도왔던 건 이해 가지만, 자신이 한 일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한다고나 할까? 대표적인 침소봉대 사례였다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탈락시켰었는데, 하필이면 빵빵한 뒷배가 있었는지 트집 잡혀 필자가 징계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굴지의 대기업 출신들에게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누구나 아는 ‘A 제품'을 개발했다는 이들이 수백 명에 달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이런 사람들이 연구원 채용에 지원하였을 때 뒷배라도 있으면 상당히 괴로운 일을 당하게 된다.
이런 ‘함량미달’의 인사들은 요즘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외려 비정상이 정상 행세를 하고, 비정상을 정상이라 판정하지 않으면 핍박까지 받게 되는게 이 시대의 ‘순리’다. 그럼, 이런 ‘함량미달’들이 부리는 허세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개개인의 인성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아무래도 원인은 잘못 끼운 첫 단추에서 찾아야 할 듯 싶다. 결국 대학교육 때부터 말이다.
대학원을 진학하는 이들은 반드시 거친다 할 수 있는 게 ‘국가 과제 수행’이다. 그리고 그 과제를 할 때는 ‘참여율’에 따라 역할 비중이 결정된다. 과거에는 학연에서 과도한 정부 과제 수주로 인해 ‘슈퍼 울트라급' 참여율을 갖고 있는 사례가 빈번했었다. 필자도 한 때 과제에 치여 엄청난 수준의 ‘참여율'을 갖고 국가 R&D 과제를 하던 때가 있었다. 수행해야 할 많은 과제가 쌓여 있는데 투입되는 인적 자원을 제대로 뽑도록 소속기관 지원을 받지 못하면 과제의 부실로 이어진다. 숙련된 연구원을 뽑아 쓰는 연구소들도 이럴진대, 대학교에서는 극악의 상황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었다. 실제 수행하지도 않은 과제에 알량한 참여율의 참여연구원으로 올라가고 말이다. 혹자들은 과제가 완료된 후엔 모르는 척하고 자신의 연구 실적으로 올린다. 알량한 ‘5%’의 참여율이 몇 년 후에는 자신의 주요 연구 실적으로 된 것도 본 적이 있을 정도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고자 국가 R&D에선 속칭 ‘3책5공(3개 과제 책임, 5개 과제 참여연구원의 속칭)'이라 하여 실질적인 연구참여와 연구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최대 5개 과제에만 참여할 수 있게 제한을 걸었다(이걸 간혹 8개까지 할 수 있다고 오해하는 연구자들이 있는데, 과제책임자도 당연히 참여연구원으로 등록되어야 하므로 최대 5개 과제가 맞다). 그런데 이게 점점 실효성을 잃고 있다.
‘3책 5공'으로 제한을 걸어둔 게 국가 R&D 영역이다 보니 기업 수탁 과제 수행이나 완성되지 않은 기술 이전 때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은 가진 능력과 시간의 한계가 있는데,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대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교육, 연구개발 쪽 일도 있을 수 있지만, 기업과의 협력도 중요하므로 산학협력단이나 기술지주회사란 걸 만들어 산업계와의 협력과 국가 R&D를 전담시켜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산학협력'이나 ‘기술이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 대학교에서의 교육을 연구 과정을 통한 교육이라는 궤변으로 덮고 있지만, 필자에게 간혹 하소연하는 학부 및 대학원생을 보면 측은하기 짝이 없다. 엄연히 지도교수가 있는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학습, 연구 그리고 장래를 위해 ‘학외할동으로 바쁜’ 지도교수를 만나지 못해 다른 사람들에게 ‘멘토링'을 받으러 찾아 헤매고 있다.
수십 억 대의 기술 이전을 약속하고도 그 기간 동안 꽉꽉 채운 연구과제 참여율로 다른 연구 개발하다가 기술이전이 파토가 난 경우도 종종 목격되고 최근에도 유사 사례가 복수로 보도되고 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아이들 교육도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다. 대개 대학교수들은 아이들 교육, 연구개발, 산학협력 중에 아이들 교육을 가장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도 어쩔 수 없는 월급쟁이들이라 업무 성과 보고에 유리한 쪽으로 집중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희생하고 연구조원인 아이들이 자생적으로 하거나 주변의 연구기관에 학연학생으로 파견되어 ‘오토 모드’로 연구결과를 얻어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이게 대덕 단지에서 크게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이런 파국에서 아이들은 어디에도 자리하지 않는다. 소위 석좌교수란 호칭을 받은 이의 랩에서도 체계적으로 지도받지 못하고 기초가 부실한 상태로 자란다. 영양 밸런스가 깨진 아기들처럼 말이다. 연구조원인 아이들이 연구개발도 하고, 산학협력도 한다. 그리고 지도교수들은 자신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의 포스터와 논문을 보고, 자신은 아이들에게 다 맡겨 연구했음에도 다른 동료 교수들의 발표는 동료 연구자가 연구를 잘했다 하며 칭찬한다. 그리고 이런 패턴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까지 전염되어 있다.
새로 들어온 대학원생 아이들에게 기술이전, 산학협력을 하라 맡겨봤자 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마치 네가 이걸 이룩하지 못하면 졸업은 없다라는 듯 지도교수는 냉소적으로 바라 본다. 좋아하는 연구가 아니라 채찍질 받는 노동이 되어 아이들은 힘들어 한다. 몇년 전, 코엑스에서 초빙 세미나를 하고 나오던 필자를 모 특정연구기관의 졸업생이라며 따라 나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필자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 연구원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다들 떨고 있다고 말이다.
교육기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연구조원급인 아이들이 연구개발 전에 배워야 할 게 있고, 거쳐야 할 과정도 있다. 연구개발을 통한 교육이 최선이라는 궤변은 회사 연구소가 최고의 교육기관이란 말이다(실제로 지도능력과 시설이 없는 대학원 지도교수들이 주변 정출연에 학생들을 보내는 사례는 빈번하다). 대학원 학위 과정을 아예 없애고 국가 R&D를 수행하는 곳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쓰면 학위를 줘도 될 정도이다.
교육을 한창 받아야 할 연구조원들이 기술이전과 산학협력의 산업역군으로 투입되어 있는 현실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묻고 싶다. 특정연구기관의 교원 평가에 산학협력을 강화시켜 달라는 요구가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차피, 교수들의 산학협력 실무는 교육이랑 미명 하에 연구조원인 대학원생들이 하게 된다. 대학원생들이 학위 과정이라서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고 마치 염가의 하이브리드 산업역군이 된 양 내몰리지 않을까 우려되는 시대다. 대학원 교육이 이렇게 또 무너지고 있고, 자기 전공의 칼럼 하나 스스로 못 쓰는 실적 좋고 실력 없는 가짜 석학들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