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되었다고 한참 축하 이야기를 나누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그 사이 어려움도 있고 보람도 있었다는 간간히 문자로 전해주는 소식이 항상 반가웠습니다.
작년 초에 팀원들에게 너무 화가 많이 난다면서, 결재 서류가 올라오는 걸 보면 그냥 화부터 난다고, 그래서 화를 내다보니 오히려 팀 분위기만 어색해지고 화합도 안되고, 그렇다고 성과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고민이 된다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오늘 메일을 받고 좀 깜짝 놀랐어요..
고민의 해답을 찾았다면서 제게 전해준 이야기가 저를 많이 당황시키더라고요.
결재 서류가 올라왔을 때 즉각 피드백해주면 너무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를 것 같아서 아예 화날 만한 결재서류는 3일정도 묵혔다가 그 이후에 돌려주면서 개선해준다고..
그렇게 하니 화도 덜 나고, 오히려 차분하게 피드백해 줄 수 있어서 좋다는 강 팀장님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러면 안되는데...
댄 에리얼리 교수
듀크대학교 심리학자 댄 에리얼리 (Dan ariely)는 재미있는 실험을 많이 하신 분으로 유명하죠.
그중의 하나를 좀 소개하려고 해요
에리얼리 교수는 어떤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자 약 200여 명의 지원자가 모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일 먼저 a, b, c, d 등의 알파벳 철자 스펠링이 아무런 의미 없이 마구잡이로 써놓은 종이를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진행자가 안내합니다.
" 철자들을 잘 보면서 같은 철자가 연속을 나와 있는 것을 찾아서 동그라미 표시해서 앞으로 가져오세요"
의미 없이 철자로 나열된 그 종이에는 간혹 cc, dd 등 같은 철자가 연속을 적혀있는 경우가 있었지요. 참가자들은 그것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아주 지루하고 재미없는 과제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다 찾은 이들은 자신이 동그라미 표시한 종이를 앞의 진행자 측에 가져와서 제출하는데 거기에 바로 이 실험의 핵심 요소가 있었습니다.
왼쪽의 종이를 받으면 아르바이트 생은 열심히 중복 철자를 찾아 오른쪽처럼 표기하는 아주 지루한 작업이다.
실험 설계자는 이미 전체 참가 그룹을 참가자 몰래 3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들은 모르지만 설계자들만 알 수 있는 명단을 가지고 각각의 참가자들이 중복으로 적힌 철자를 표시한 종이를 가져오면 결과물에 상관없이 3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 번째 그룹은 참가자가 종이를 가지고 오면 그 참가자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관할 수 있는 파일이 있어서 거기에 그 결과물 종이를 끼워 넣고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보내죠
두 번째 그룹은 참가자가 종이를 가지고 오면 기존에 이미 받아 놓은 수많은 중복 체크된 결과물이 있는 다른 종이들 사이에 섞어서 넣고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보냅니다.
세 번째 그룹은 참가자가 종이를 가지고 오면 앞에 있는 문서 파쇄기에 종이를 집어넣고 그 자리에서 파쇄를 시켜버립니다. 물론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아마 세 번째 참가자들은 정말 당황했을 거예요
세 그룹의 참가자가 완성된 작업 종이를 제출했을 때 보여준 전혀 다른 반응
이렇게 중복 철자를 찾고 3종류의 상황을 접한 참가자들은 자리로 돌아가서 실험 진행자가 준비한 설문조사에 응답을 합니다.
가장 핵심 질문은 방금 그 일을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한다면 시간당 인건비로 얼마를 받으면 그 일을 하겠는가 라는 질문이었죠
첫 번째 그룹,즉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파일에 자신이 했던 작업을 끼워 넣은 사람들은 평균 15유로 정도의 돈을 받으면 그 일을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두 번째 그룹,즉 자신이 작성한 종이 다른 사람들이 작업한 종이와 마구 섞어 넣은 상황을 겪은 사람들은 28유로 정도가 돈을 받으면 그 일을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가장 황당한 경험을 했던 세 번째 그룹,즉 자신의 결과물을 가져 가자 눈 앞에서 종이 파쇄기에 넣어버린 상황을 경험한 참가자들은 30유로는 받아야 그 일을 할 것이라고 평균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이는 예상했던 결과였습니다. 보통 자기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이름이 적힌 파일에 결과물을 넣게 되면 뿌듯하고, 일할 의욕이 생기죠, 이런 경우에는 받는 돈이 적어도 가급적 그 일을 하려고 할 것이라는 것이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어느 경우에 일을 열심히 잘할까요? 당연히 자기의 이름이 드러나고, 자기의 이름으로 일을 할 때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예상치 못한 것이 발견됩니다.
바로 두 번째, 세 번째 그룹의 차이입니다. 즉 자신의 결과물을 다른 사람이 한 결과물과 마구 섞은 경우와, 제출하자마자 결과물을 파쇄기에 넣어버린 경우에 참가자들이 받고자 하는 금액이 거의 비슷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파쇄기에 넣어버린 경우가 더 기분 나쁠 것 같은데, 그런 경우나 자기 결과물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 결과물과 섞어버린 경우나 똑같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었죠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파쇄기로 갈아버리는 것은 당장 화를 내고 소리를 치는 피드백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결과물에 섞어 버리는 것은? 바로 즉각 피드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묵혀두는 것이지요.
이제나, 저제나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상사의 피드백을 기다릴 사람들을 애타게 만들고 자기가 열심히 한 일을 다른 사람과 섞어 놓음 이로써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죠
그 두 가지가 결국 다 똑같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강 팀장님!
그동안 팀원들의 결재 서류에 화를 냈다면 그건 세 번째 참가자였던 것이고, 그것이 두려워 결재 서류를 올리면 3일 있다가 피드백해준다는 것은 두 번째 참가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둘 다 팀원들이 기분 나쁘기는 마찬가지일 거예요.. 좋은 해결책이 아니죠..
피드백의 속도는 빨라야 합니다. 특히 요즘 젊은 친구들이 어떤 친구들인가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익숙하고, 빠른 반응과 빠른 피드백에서 살아온 친구들이죠
늦은 피드백을 그 누구보다 못 견뎌할 겁니다.
결재 서류가 올라오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차근차근 읽어보세요.. 화가 난다고요? 참으셔야죠
그리고 빨리 피드백을 주고 다시 수정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이 서로를 위한 좋은 방법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