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오랜만에 한 팀장님과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커피가 식도록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저희 팀에… 곤란한 일이 생겼어요.”
사연은 이랬다. 작년부터 연애를 시작한 두 팀원—김대리와 박과장.
둘 다 일도 잘했고, 팀 분위기도 좋았다. 팀장님도 처음엔 그냥 흐뭇하게 지켜봤다.
문제는 ‘헤어진 뒤’부터였다.
“회의할 때 둘이 서로 절대 눈도 안 마주쳐요. 업무 협조는 완전히 끊겼고, 다른 팀원들도 눈치 보느라 지칩니다. 저는 리더로서… 뭘 어떻게 해야 하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 가지를 물었다.
“두 분이 연애를 시작할 때, 어떤 원칙이나 경계를 정해두셨나요?”
팀장님은 잠시 멈칫했다.
“…아뇨. 성인들이니까 알아서 할 줄 알았죠.”
그제야 나는 상황의 본질이 보였다. 사내연애는 두 사람만의 로맨스가 아니다.
조직 전체가 영향을 받는 심리학적 ‘역할 갈등(Role Conflict)’의 대표 사례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역할갈등(Role Conflict)**이다.
역할갈등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사회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때, 그 기대가 충돌하며 심리적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Kahn et al., 1964, Organizational Stress)
사내연애가 대표적이다.
연인으로서의 역할과 직장 동료로서의 역할이 충돌한다.
연인에게 기대되는 행동: 감정적 공감, 친밀감, 배려
동료에게 기대되는 행동: 논리적 사고, 객관성, 공정성
하루는 연인, 다음 날은 동료.
혹은 회의실에서는 동료, 퇴근 후에는 연인. 이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사고 체계도 흔들린다.
“지금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연애도, 일도, 팀 분위기도 모두 무너진다.
한 마케팅팀에서 있었던 일이다. 커플이었던 최과장과 정대리는 회의에서는 늘 충돌했다.
최과장은 업무 피드백을 냉정하게 주었고,
정대리는 “어제는 괜찮다고 했잖아요!”라며 감정을 드러냈다.
모두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만, 역할의 공간과 언어를 분리하지 못했을 뿐이다.
Ashforth(2000)의 연구에 따르면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스트레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최소한 이 한 문장은 필요하다.
“회의실에서는 동료다. 감정은 퇴근 후에 다룬다.”
경계가 없다면, 둘의 문제는 곧 팀 전체의 문제로 번진다.
사내연애의 리스크는 성공보다 실패에 있다.
미국 보험회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같은 팀 커플이 헤어진 뒤, 서로에게 업무를 회피하고 반박이 감정적으로 흐르면서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결국 한 명은 부서를 옮겨야만 했다.
한 연구에서는 “이전과 동일한 역할을 계속해야 할 때 가장 강한 심리적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라고 말한다.
어제까지 연인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아무 일 없는 동료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건 인간의 감정 구조상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시작 전에 이 질문은 반드시 필요하다.
헤어지면 같은 부서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까?
누군가 이동할 수 있는 구조인가?
팀 전체의 업무는 어떻게 관리될까?
준비 없는 사내연애는 개인의 선택 같아 보여도, 결국 팀 전체가 감당해야 하는 조직 리스크가 된다.
작년에 한 제조기업에서 컨설팅할 때 만난 사례다. 커플이었던 팀장과 사원은 회식 때마다 둘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다른 직원들은 점점 자신들이 소외된다고 느꼈다.
결국 한 팀원은 이렇게 말하더라.
“팀장님이 최사원 칭찬하면… 그게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역할갈등이 조직으로 번지면 평가 공정성·역할 명확성·팀 신뢰가 급격히 떨어진다.
사내연애의 본질적 리스크는
“둘만 아는 관계의 정보가 팀의 공정성을 흔들 때” 발생한다.
그래서 더욱 명확해야 한다.
업무 피드백은 더 엄격하게
회식에서는 오히려 거리를 두고
평가와 배분은 투명하게
사내연애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역할을 구분하지 않은 채 두 세계를 섞어버릴 때 발생한다.
역할갈등 이론은 말한다.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려면 역할마다 공간·언어·행동을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사내연애가 위험한 이유는 사랑 때문이 아니라 경계 없는 역할의 혼합 때문이다.
관계가 성숙한 두 사람이라면 회사에서도, 사랑에서도 스스로의 역할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사내연애는 금기도 아니고 권장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연애와 업무의 경계가 흐려지면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조직 성과도 위험해진다.
사랑을 택하든 커리어를 택하든, 결국 모든 선택은 자기인식과 경계 설정의 문제다.
당신은 회사에서 어떤 역할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역할을 지켜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