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교육을 받거나 관련 서적과 칼럼을 보다 보면 한 번쯤은 이런 분류표를 접하게 된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팀장, 똑똑하고 게으른 팀장, 멍청하고 부지런한 팀장, 멍청하고 게으른 팀장.
이 네 가지 유형을 놓고
어떤 팀장이 가장 좋은 팀장인지, 어떤 팀장이 최악의 팀장인지 묻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똑똑하고 부지런한 팀장을 최고의 리더로 꼽고,
멍청하고 게으른 팀장을 최악의 리더로 꼽는다.
이 판단은 상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상식은 리더십의 본질을 정확히 짚지 못한다.
이 네 가지 분류는 히틀러에 맞서 싸웠던 독일군 참모총장 폰 해머슈타인 장군의 통찰에서 비롯되었다.
해머슈타인은 수많은 전쟁과 작전을 경험하며 지휘관의 자질이 단순한 능력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특히 1차 세계대전에서 열정은 넘치지만 판단력이 부족한 지휘관들의 명령이 얼마나 많은 병사들을 불필요한 위험에 빠뜨리는지를 목격했다.
그는 장교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고, 이를 성격 분류가 아닌 리더가 갖추어야 할 본질을 설명하는 틀로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똑부, 똑게, 멍부, 멍게는 바로 이 맥락에서 나온 개념이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팀장은 엘리트형 리더로 보인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주어진 일을 빠짐없이 처리한다.
하지만 이 유형은 실제로는 전형적인 참모형 인물에 가깝다.
부하 직원의 업무에 세세하게 관여하고, 직접 손을 대며, 팀원의 자율성을 떨어뜨린다.
일은 잘하지만 팀을 키우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유형은 뛰어난 리더 옆에서 참모 역할을 할 때 가장 전략적인 선택이 된다.
똑똑하고 게으른 팀장은 전략과 효율을 중시한다.
이 유형의 리더는 모든 일을 직접 하지 않는다.
적절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결과를 평가한다.
팀원에게 책임과 자율을 부여하고, 본인은 핵심 의사결정과 리스크 관리에 집중한다.
이 구조 속에서 팀원들은 신뢰와 존중을 받으며 능동적으로 일하게 된다.
해머슈타인이 말한 가장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이 여기에 가깝다.
멍청하고 게으른 팀장은 흔히 최악의 리더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이 유형은 조직에서 가장 흔하다.
자기 업무 외에는 관심이 없고, 큰 사고를 치지도 않으며, 혁신이나 개선을 이끌지도 않는다.
현상 유지를 하다가 퇴근하는 스타일이고, 조직의 상당수는 이 유형 위에서 돌아간다.
해머슈타인이 가장 경계했던 인물은 멍청하고 부지런한 지휘관이었다.
그는 이 유형을 군대에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물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 유형은 오늘날에도 멀쩡한 회사를 망친다. 이들의 최악인 이유는
팀장의 역할은 모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멍부 팀장은 이 구분을 하지 못하고 모든 일을 열심히 한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알지 못한다.
대개 이들은 실무자 시절 성과가 좋았다.
그 시절에는 당시 팀장이 이미 중요한 일을 골라서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선택과 집중의 역할을 본인이 해야 하지만, 그 역할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위에서 받은 일을 필터링 없이 그대로 팀에 전달하고, 팀원이 자신처럼 부지런히 처리해 주길 기대한다.
멍부 팀장은 팀원의 모든 일을 직접 확인하지만 기준이 없다.
오전 9시 박 과장에게 말한다.
"박 과장, 이 숫자 근거가 뭐야? 첨부자료 정확해?"
수정한 보고서를 보고 오후 3시에 말한다.
"박 과장, 이거 너무 산만해. 간략하게 줄여봐"
오후 5시 결제를 완료한 이후 퇴근 무렵 박 과장을 부른다.
"박 과장, 좋은 아이디어 생각났어.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
팀원들은 피드백을 이해하지 못한다.
열심히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빠르게 학습한다.
결국 팀원들은 대충 하는 시늉만 하게 된다.
똑부와 멍부를 가르는 기준은 자기 객관화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을 구분한다.
그래서 못하는 일은 잘하는 사람에게 맡긴다.
반면에 일을 못하는 사람은 이 구분을 하지 못한다.
멍부 팀장은 스스로를 똑부라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업무 방식과 과거의 성공 경험을 팀원에게 강요한다.
그 방식을 따르지 못하면 비난하고 질책한다.
결국 유능한 팀원들은 떠난다. 조직에는 멍부와 멍게만 남는다.
멍부 팀장일 가능성을 의심한다면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멍부 팀장의 가장 큰 문제는 상황에 따라 판단이 바뀐다는 점이다.
이를 막기 위해 피드백 기준을 문서로 고정해야 한다.
보고서라면 무엇을 보는지, 어디까지가 합격선인지, 수정 요청은 어떤 경우에만 하는지
체크리스트로 만든다.
피드백 순간에 자기 판단을 믿지 않고 문서를 먼저 본다.
기준이 사람보다 앞서야 한다.
멍부 팀장은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말한다. 이 습관을 끊어야 한다.
피드백 충동이 생기면 즉시 멈추고 최소 한나절을 지켜본다.
그 사이에 정말 문제인지, 내가 예민해진 것인지가 구분된다.
대부분의 수정 지시는 시간이 지나면 필요 없어진다.
멍부 팀장은 “이렇게 바꿔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 말을 “왜 이렇게 했는가”는 질문으로 바꾼다.
이 방향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다. 대안을 함께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팀원은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고, 리더는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
판단을 대신해주지 말고 판단할 기회를 남겨둔다.
당신은 열심히 하는 리더인가? 잘하는 리더인가?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면, 가까운 팀원에게 물어보자
"내가 주는 피드백이 어때?"
그 대답을 망설인다면 당신은 폰 해머슈타인 장군이 가장 경계했던 바로 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