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교육강사가 꼭 알아야 할 심리학의 지혜 2.
하나.
요즘에는 강의를 한번 진행하려고 하면 사전에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된다.
제안서를 보내면 대충 알아서 잘해주세요..라는 정도로 쉽게 진행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교육생의 수준에 맞는 내용 선택, 강의장에서 반드시 만들어져야 하는 결과물 요구, 제안서 한 줄 한 줄의 반영 여부 확인, 교재 내용에 수많은 사전 질의 등..
가끔은 너무 도를 넘는 상세한 요청 사항과 사전 검열 같은 내용 통제로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기획자가 자신이 기획한 교육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은 의도를 충분히 존중하기에 나는 가급적 기획자의 모든 내용을 들어주고 수용하는 편이다.
사원급 기획 및 문제 해결 강의를 8시간 해달라는 강의 요청이 왔다.
제안서를 보냈고 마음에 든다고 한 교육 담당 2년 차 대리님은 넘치는 의욕으로 교육에 반영해야 할 사안 8가지를 이메일로 상세하게 요청해주셨다.
나는 7가지 사안에 대해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요청하신 내용을 잘 반영해서 준비하겠다고 답변했으나 다만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8시간 한 과정이었던 기획과 문제 해결을 각각 4시간씩 구별해서 나누어서 진행하고, 과목별 4시간을 운영할 때 앞단에서는 이론을 간략하게 진행하고 이후 반드시 학습자의 현업에서 사례를 실습하게 하여 피드백을 주었으면 한다는, 기존의 제안서와는 다른 요청을 해서 이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많은 담당자들이 문제해결 과정을 운영할 때 꼭 이론을 배우고 나면 학습자의 현업의 문제를 적용해서 실습하기를 원하십니다. 좋은 의도이고 분명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긴 하지만 이를 진행하려는데 몇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이번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이고, 꼭 해야 할 목표라면 말씀 주신대로 진행하겠습니다만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담당자는 왜 그런지에 대해 더 상세하게 질문 메일을 보냈고 나는 구체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회의를 해보자고 제안해서 이틀 후 줌(ZOOM)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음다음날 회의를 앞두고 중간 연결이 되었던 마케터에게 전화가 왔다.
“강사님! 오늘 회의 안 하기로 했습니다.”
“왜죠?”
“담당자가 강사를 교체하겠다네요.. 요청하면 들어줘야지 뭐 그리 안 되는 것이 많으냐면서..”
둘.
이그노벨상(Ignobel) 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유머 과학잡지인 “황당무계 리서치 연보”가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1991년에 제정한 상이다.
노벨상의 패러디로 수상 기준은 그 연구가 반드시 웃기면서도 의미하는 바가 커야 한다고 한다.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가 침 뱉기, 껌 씹기, 비둘기 먹이주기하는 싱가포르 시민들을 그때마다 처벌하여 심리학의 부정적 강화 이론을 실현시켰다고 이그노벨 심리학상을, 니코틴에는 중독성이 없다는 발견을 미국 의회에서 증언한 담배회사 대표들에게 이그노벨 의학상을, 차와 커피에 비스킷을 가장 맛있게 찍어 먹는 공식을 발견한 영국의 물리학자가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처음 장난과도 같이 시작되었던 이 시상식은 2000년 이그노벨상 수상자인 안드레 가임이라는 영국의 물리학자가 2010년 진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면서 그 위상과 관심이 폭발했고 이제는 노벨상에 버금가는 주목받는 시상식이 되었다.
2000년 이그노벨 심리학상 수상은 코넬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과 당시 대학원생이던 저스틴 크루거가 발표한 더닝 크루거 효과였다.
65명의 코넬대학교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먼저 학생들의 이해력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 이후 자신의 성적에 대해 스스로 예상을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성적이 하위이던 학생들은 주로 자신의 성적이 실제 성적보다 훨씬 좋다고 예상했고, 성적이 상위인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을 실제 성적보다 좋지 않다고 예상했다. 또한 실제 성적과 예상치와의 관계는 성적이 하위인 학생일수록 그 갭이 컸으며 성적이 올라가면서 그 갭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일수록 메타 인지가 떨어져 자신의 실제 실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를 좀 더 상세하게 보면 자신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은 시작할 때 가장 낮은 수준에 있다가 조금씩 알아가면서 초기에 급격히 상승한다.
그러다가 일정 정도 수준이 넘어가면 생각보다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급격히 자신감이 줄어든다. 이후 더욱 학습량이 늘고 역량이 올라가면서 떨어진 자신감이 회복되어 자신감과 역량의 차이를 줄이다가 결국 마스터에 이르게 되면 자신감과 실제 역량이 유사해지다가 역전이 되어 겸손해지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조직 생활 일대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아무것도 몰라 자신감도 바닥, 역량도 최하였다
이후 조금씩 업무를 익히고 배우면서 자신감을 찾게 된다. 그러다 대리쯤 되면 최고의 자신감이 생긴다. 자신이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고 세상 모든 일에 자신이 최고이며, 우리 회사는 자신이 아니면 망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이후 과장, 차장에 승진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부분을 조금씩 알게 된다. 아울러 책임도 조금씩 커가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조심스러워진다. 이를 다시 학습과 경험으로 극복하려고 많은 일을 진행한다.
부장쯤 되면 이제야 역량과 자신감이 비슷해지고 조금 더 역량 있는 사람들은 실제 역량보다 자신감이 역전되면서 겸손한 모드로 자리 잡게 된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우리의 조직에서 모습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교육담당자를 이해한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과감한 결단을 존중한다.
지금은 그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고 본인이 최고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알게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가면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 사람이었던가를
과장이 되고 차장이 될수록 점점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2020년 가을이 자신에게 더닝 크루거 효과의 가장 위험한 단계였음을
나 역시 그랬고, 이 글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때쯤 그 담당자가 이 글을 보면 자신의 이야기인 줄도 알게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