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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철우 Nov 18. 2021

수능날 아침

 아빠도 30년 전 이맘때 지금의 수능과는 다르게 대학을 먼저 지원하고 그 대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르는 학력고사라는 것을 봤단다. 


시험 당일 복잡하게 응원전이 펼쳐지던 대학교 정문을 지나고, 할머니의 격려 손짓을 뒤로한 채 시험장으로 걸어 들어갔고, 시작을 알리는 타종소리와 함께 첫 시험문제를 받던 때 그 떨림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지..      


그땐 몰랐을 거야,  설마 30년 후에도 나의 아이가 나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 대학시험을 치르게 될 거라고..  아마 내 아이는 경쟁 같은 건 크지 않고, 누구나 즐겁게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원하는 학교에 진학을 하는 그런 세상을 살 것이라 생각했었지.. 


 30년이나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 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을 보면 그동안 어른들의 잘못이 참 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기분이 어때?  끝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긴장감, 초조함, 걱정이 더 클까? 아니면 아쉬움 혹은 끝난다는 안도감이 클까?

 여러 감정이 교차되는 오늘 하루를 보내겠지만 결과를 떠나 그동안 애 많이 쓴 너를 위한 위로와 편안함으로 하루가 마무리되었으면 좋겠구나..     


입시를 준비하는 그동안의 많은 시간을 돌이키면 아빠는 우리 딸이 너무 대견하고 감사하단다.     

“지난 시간 나의 모든 삶을 하루에 평가받는 게 너무 억울해 아빠!”

지친 몸으로 교복도 벗지 않고 침대에 쓰러져 푸념하던 너도     


“아니! 도대체 이따위 시험문제를 어떻게 고3 보고 풀라고 하는 거지?”

너무도 어려운 문제에 분노한다면서 흥분할 때의 너도     


“아빠! 나 대학 못가도 그래도 아빠 딸 맞지?”

망쳐버린 모의고사에 좌절하다가 농담처럼 이겨내려 할 때의 너도     


아빤 매번 좌절하며 힘들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해보려는 너의 모든 모습이 사랑스럽고,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어젯밤, 엄마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결정한 도시락 반찬 메뉴를 만들면서 자꾸 눈물이 나온다고 했고, 

할머니는 차마 너와는 통화하기 겁난다며 아빠에게 대신 응원을 전해달라 하셨고

너의 수능을 응원하는 수많은 친인척, 친구들의 응원 메시지를 받으면서 

우리 딸이 외롭지 않게 시험을 치르는 것 같아 좋았단다.     


오늘 하루가 그동안의 삶을 생각할 때 가장 큰 하루지만

먼 훗날 전체 인생을 돌이켜보면 수많은 의미 있었던 날 중 하나에 불과할 거야

애써 노력한 모든 것을 쏟아야 하겠지만

혹시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자

넌 이제 수많은 인생의 도전에서 그 첫발을 시작했을 뿐이니까..      


“아빠! 긴장해서 밀려 쓰면 어떡하지? 잠깐 졸았는데 갑자기 시험이 끝났으면 어떡하지?”

며칠 전 황당한 걱정을 하던 너에게 아빠가 했던 말 기억하니?


“걱정하지 마! 인생의 그 중요한 승부에서.. 설마.. 졸겠니?  밀려쓰겠니?

 그냥 아는 것은 쓰고, 모르는 것은 찍고, 헷갈리면 먼저 골랐던 것이 답이고, 종료 5분 전에 답안지 고치지 말고... “     

이 올드한 조언은 30년 전 너와 똑같이 황당한 고민을 했던 아빠에게 선생님이 해주셨던 조언을 그래도 네게 돌려준 것이란다.     


사랑한다 우리 딸!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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