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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철우 Nov 17. 2022

두 번째 수능

아빠는 책을 두 번 이상 읽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처음 읽을 때와 두 번째 읽을 때의 맛은 참 다르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을 이해하느라고 급급해서 페이지 넘기기, 줄거리 쫓아가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 밑줄 치기 하면서 머릿속에는 다 읽으려면 몇 페이지 남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다 읽었다는 자체가 그냥 뿌듯하다.

하지만 두 번째 읽을 때부터는 시각이 많이 달라진다.

훨씬 여유를 가지고 책의 구조도 생각하고, 앞의 단락과 뒤의 단락의 연결고리도 발견한다.  이 책의 주장과 유사한 내용이나, 정 반대를 주장한 다른 책을 연결시키기도 하고, 처음 읽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내용을 찾게 되기도 한다.


특히 내가 평소 알고 있었던 상식과 전혀 다른 주장이나 실험의 결과도 대부분 두 번째 이상 책을 읽을 때부터 발견된단다.


한마디로 진정한 책의 읽음은 두 번 이상 읽을 때 발견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아빠 책장에는 한 번도 안 읽은 책은 있지만, 한 번만 읽은 책은 없단다..




올해 2월..  실기까지 고생해서 치른 너의 대학입시 결과가, 지원한 모든 대학에서 예비 하나 못 받고 탈락했음을 확인했을 때..

“나.. 대학 안 가고 그냥 알바나 하면서 살래..” 하면서 실망할 때..

인스타에 친구들의 합격증을 보면서 짜증 난다고 투덜거릴 때..

그때 아빠는 생각했단다..

우리 딸이 이제 처음 책을 읽어서 아직 제대로 책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를 받고 있구나


재수 종합반에 등록하고..  처음으로 새벽에 광역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간 날..

학원에서 “장 00 학생이 7시 1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장 00 학생이 22시 05분에 출발하였습니다.”라는 문자를 아빠에게 보냈지.

그리고 그 문자는 무려 260일이 넘게 매일매일 보내졌단다.

어제는 그 쌓인 문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 흔적이 우리 딸이 책을 두 번째 읽을 때의 모습들이구나..

내용 따라가기에 급급하지 않고 구조와 단락을 이해하고, 처음 공부할 땐 전혀 알지 못했던 내용을 파악하고,  다르게 알았던 사실을 올바르게 바로 잡는 그 과정을..  그러면서 무언가를 제대로 알고 있다는 참맛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겠구나..


몇 달 전 네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아빠.. 요즘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고, 이렇게 그릴 줄도 모르면서 작년에 대학을 가려고 했을까?”

아빠는 그 말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 딸이 한 해 동안 성장했구나

올 한 해는 우리 딸의 인생에 가장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오늘 두 번째 시험도 많이 떨리지?

작년에는 뭘 몰라서 긴장했고, 올해는 뭘 좀 아니 더 긴장되고..


그래도 한 해 더 성장한 너에게 이 두 번째의 과정은 이미 과정에서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곧 시험이 시작되겠지..

종이 울리면.. 모든 것을 잊고 너의 두 번째 책 읽기의 결과를 만들어 보자!


작년이나 올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아빠는 너의 어떤 결과에도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우리 딸 파이팅!


PS : 딸! 아빠는 책을 세 번 네 번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딸은 딱 올해까지 두 번만 읽자!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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