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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Oct 05. 2021

안녕하세요? 아래층 사는 미친 여자입니다.

실화 에세이/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5편

집 현관문 앞에 하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블로그 주소 한 줄이 타이핑된 종이를 필라테스 광고지와 함께 때서 집으로 들어왔다. 바이럴 마케팅인가?


그 종이를 받았을 즈음, 우리는 민원을 넣는 것도 개인적으로 카톡을 보내는 것도 관뒀다. 말을 해도 ‘네~ 알겠습니다’ 답할 뿐 변화가 없는 것도 답답했지만, 그를 넘어서 ‘보복 소음’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먼저 보복 소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그때로 돌아가 보자.





그날 아침도 똑같은 시작이었다. 쿵! 매트리스에서 뛰어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쿵쿵 쿵쿵 침대 주변을 뛰더니 방 밖으로 달려 나가는 소리와 진동에 눈을 떴다.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두통이 시작됐다.


그래, 달려 나가라 나가서 방에 들어오지 마라

베개로 귀를 덮곤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꾹꾹 눌러 담았다. 다시 달려 들어오고, 달려 나가고, 달려들어오고 바닥에 엎드려 악! 소리를 지르고 어른의 발 망치까지 더해지자 참을 수가 없어졌다.


관리실에 전화를 걸었다. 일요일 오전 8시 45분. 누군가에게는 한 낮 같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일찍 일어나  보채는 아이도 없고, 매일 아침 7시 40분에 집에서 나서는 직장인에게는 딱 한 시간만 더 잤으면 하는 주말이었다. 생활 소음도 아니고 뛰는 소리, 비명소리를 더는 참고 싶지 않았다. 매주 주말 아침마다 반복되는 소리를 4개월을 듣고, 오늘도 참으면 나는 다음 주도 다음 달에도 주말에 강제 기상을 해야 한다.



[윗 집이 맞으면 직접 세대 호출을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주말에는 주무시는 세대들이 많아서  층간소음 방송이나 세대 호출을 오전 11시 전에는 해드리기가 힘들어요. 아니면 이따가 11시 이후에 해드릴까요?]



정중한 회피. 그럼 우리는 그때까지 이 소리를 계속 들으라는 건가요? 아니 다른 집은 오전 11시까지 자는 걸 보장받는다고? 따지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전가하고 싶지 않아 직접 해보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주말마다 강제 기상해야 해서 힘들다. 아이들을 한 번만 더 살펴봐 달라는 카톡에 오늘과 전혀 상관없는 주중의 이야기를 답으로 보내왔다. 우리가 이렇게 지낸다부터 아이가 어려서 말을 안 듣는걸 방법이 있으면 우리에게 알려 달라 아이가 방을 걸어 나가는 것 까지 뭐라 하면 어쩌냐 답이 돌아왔다.


아, 이제 정말 대화할 필요가 없구나.


그날 밤. 나는 밤 12시까지 쿵쿵쿵 뭔가로 거실 바닥을 내려 찍는 보복 소음을 들어야만 했다.


남편은 당직 근무가 있어서 퇴근을 못하고 있었고, 아침은 아침이어서, 저녁은 저녁이어서 내일 아침에 세대 호출을 해주겠다는 관리사무실.. 도움을 받을 곳도, 방법도 없었다. 그냥 집에서 나와 놀이터에 앉아 있는 게 유일한 선택일 뿐.


자정이 다 될 때쯤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고 더 이상 밖에 앉아 있을 수 없어 1층 현관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탄 간 순간 문이 다시 열렸고 윗집 남자와 마주쳤다. 친구 2명과 함께 말이다. 아… 친구들을 부르셨구나.


‘저희 시끄럽나요?’


나를 빤히 쳐다보다 윗집 남자가 피식 웃으며 물어왔다.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내는 보복 소음이었구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성인 남자 3명과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싸울 수 있을까 빠르게 생각해봤다.


‘지금 시간이 몇 시예요? 그렇게 바닥을 계속 내려 찍으시면 어떡해요? 저도 이제 잠 좀 잡시다’


그렇게 한마디를 쏘아붙였고, 집에 들어가자 그제야  내려 찍는 소리는 멈췄다.


당당하게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척했지만 나는 다음날 아침, 등이 뻣뻣하게 굳고 한쪽 팔이 올라가지 않아 급하게 반차를 쓰고 병원을 찾아가야만 했다.







다시 종이를 받은 순간으로 돌아와 보자.


남편과 식탁에서 저녁을 먹다가 현관에서 뜯어 온 하얀 종이가 생각나 접어 둔 종이에 적힌 주소를 꾹꾹 눌러봤다.


화면에 나타난 건 윗집 여자의 블로그였다. 먹던 밥그릇을 그대로 싱크대에 던져 넣고 달달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빠르게 내려갔다.


[아랫집 여자는 완전히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다.]


원색적인 비난이 한가득 적혀 있었다. 우리가 집에 없었던 날에 받았던 관리실의 민원 연락도, 아파트 층간소음 방송도 모두 우리가 넣었다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랫집 미친 여자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 방송만 나오고 나면 쾅쾅쾅 바닥을 내려 찍으면서 걸어 다녔구나.. 아랫집 미친 여자가 소리를 올려 보내서 (아래에서 위로 어떻게 소리를 올려 보낼 수 있는 건지 방법이 있으면 정말 하고 싶다)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는다 써 놨다. 요즘 들어 왜 점점 시끄러워? 생각했던 모든 일들의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아마도 같이 지내다 마음이 안 맞아진 동네 놀이터 엄마들 중 한 명이겠지, 우리 집에 이 종이를 어떤 마음으로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만나면 나는 꼭 이렇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제가 그 아랫집 사는 미친 여자예요”


하지만, 나는 그 글들을 읽은 날부터

멀리서 아파트 건물만 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손이 떨려 핸들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랫집 사는 미친 여자는 집에, 아니 아파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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