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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구리 Oct 03. 2020

향기 나는 친구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릴 적 내 친구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그러나 향기 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사람 하나 가까이 있는 것도 성공한 삶 아닐까 생각한다.

내게는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 10대 여고시절에 만난 친구, 은선이. 그녀에게서는 향기가 난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고적대'라는 것이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며 행진을 하는 서클이었는데 나는 은선이를 거기서 처음 만났다. 우리는 같은 스네아 드럼(snare drum, 작은북) 파트였었다.

고2가 되면서 그 서클을 그만두었고 은선이는 같은 반이 되어 나는 또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었다.

대입을 위해 학교 앞 도서관에서 숙식을 하며 공부를 할 때도 그녀와 함께였었다.

여고를 졸업하고 사복을 처음 입고 하이힐을 신고 핸드백을 메고 무교동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은선이와 함께였다. 서로의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엄마들이 해주던 맛난 음식을 함께 먹으며 우리는 자랐다.

카슨 매컬러스 작, 《슬픈 카페의 노래》를 황혼이 깃든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때도 우리는 함께였었다.

대학은 달랐지만 같은 전공을 했던 우리는 자신의 학교 신문을 보내주기도 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일을 하며 잠깐 헤어져 있던 우리는 어느 사이엔가 또다시 만났다.

여자아이들은 가끔씩 토라지기도 하며 다투기도 하는데 은선이와 나는 여고시절이나 그 이후에도 싸운 기억이 없다. 언제나 배려심 많은 은선이가 참아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긴 헤어짐이 시작된 것은 그녀가 갑자기 미국행을 결정하고 나서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은선이는 가족과 함께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떠났다. 시카고로 떠난 지 채 한 달도 못 돼 나는 시카고로 달려갔다. 엄마와 함께 가겠다는 말에 은선이는 단번에 OK 사인을 날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짐도 풀기 전, 새로운 환경에 아직 익숙해지기도 전에 들이닥친 나의 행동이 참 철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도 그녀의 남편도 흔쾌히 우리의 방문을 허락해준 것이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다.

엄마는 "저 친구는 네 언니같이 너에게 잘해준다."라고 얘기했을 정도로 은선이는 내가 있는 동안 늘 무언가를 해주려고 애썼다.

은선이는 그 후, 버지니아와 LA 오렌지카운티에서 살았는데 그때 가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신 은선이가 한국에 와서 우리 집에서 함께 지냈다. 함께 지내면서 시카고에서의 그 시간에 약간의 보답을 한 것 같은 마음이었지만 언니처럼 그녀에게 해주진 못했던 것 같아 늘 아쉽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먼저 인사하는 은선이는 내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스러운 그녀"로 통한다.


그런 은선이가 어느 날 또 갑자기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선교를 위해 떠난다고 했다.

미국보다 더 멀리 떨어진 도미니카공화국이라니 이제 우리는 더욱 만나기 힘들겠구나 싶었는데 병원 검사를 위해 작년에 한번 다니러 왔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가 좋아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그렇게 꿈처럼 다녀가고 난 그녀는 요즘,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려 쌓인 도시 두께사(Duquesa)에서 더위도 잊고 선교활동에 열정적인 모습이다.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일상을 교환하고 카카오톡을 통해 안부를 전하고 목소리를 듣는다.

아이티 난민들이 살고 있는 두께사(Duquesa)에서 물이 없어 잘 씻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물을 파주고 집이 없는 싱글맘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병원이 없는 그들에게 병원을 만들어주는 일을 페이스북을 통해 상세히 보고 있다.

처음에는, 선교를 위해 가진 것 모두 버리고 떠난 그녀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믿었던 신앙 덕분에 그녀는 그 어떤 환경도 두렵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묵묵히 자신을 던질 각오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이제는 나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 되었다.


통화를 할 때면 언제나 서로의 건강을 먼저 염려하게 된다. 마음은 아직도 처음 만난 10대 때 그대로인데 어느덧 우리는 그런 나이가 되었나 보다. 은선이는 특히 더 건강해야 원하는 일들을 해낼 수 있으니까 언제나 그것이 걱정이다.

예전에 어느 대통령 후보가 "나는 ○○○을 친구로 두었습니다!"라고 크게 소리친 적이 있다.

이 밤, 나도 크게 소리치고 싶다. "내게도 향기 나는 친구, 허은선이  있습니다!"라고...


사진 출처_Anne Jung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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