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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Aug 07. 2024

얼리 버드 할머니 클럽


 오전 6시 30분 경, 집을 나선다. 운동기구가 즐비한 동네 공원에 들어서면 낯익은 얼굴들이 눈인사를 한다. 해뜨기 전 6시에 이미 운동을 시작했을 얼리버드 클럽. 60대부터 80대까지 아우르는 동네 운동권 할머니들이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그녀들에게 합류하는 할배, 전동 휠체어에서 힘겹게 레그 프레스 의자로 옮겨 앉는 할배도 있다.       


 그들 사이에 늦잠꾸러기로 통하는 나도 슬슬 스텝 사이클이며 레그 스트레처에 앉아 오가는 이야기를 듣는다. 주로 체중 관리나 너나없이 겪고 있는 허리, 무릎 통증에 유효한 운동 정보 들. 젊은이들 눈에는 ‘오래 살려고 몸부림치는 노인들’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건강하려 애쓰는 할머니들은 사실 건강보험의 적자 재정을 줄여주는 건보 애국자들!    

  

 나는 자전거 바퀴를 돌리며 근처 옥수수 밭을 바라본다. 공원 일부 지역에 조성된 체험농장으로 인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아이들의 견학 명소. 옥수수 대는 이미 누렇게 시들고 그 옆 벼논의 벼들은 씩씩하게 가을로 가는 중이다.      


 황홀하게 피어나던 배롱나무 꽃 빛깔은 조금씩 바래는 중. 무성한 여름도 결국 끝날 것이다. 그 옆 마로니에나무와 감나무엔 각각 갈색, 녹색 열매들이 매달려 있다. 내가 놀고먹는 동안 나무들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내지 않았는가. 나무들에게 은근 열등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매화나무들과 벚나무들을 바라보며 앉은 자세로 20번 역기 들기를 마친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걷기 시작한다.    

 

 밝은 불빛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실내 운동기구들에 주눅이 들어 스포츠센터를 포기한 나. 나무들과 꽃들에 둘러싸인 공원 속 운동기구 존이 그래서 적성에 맞는다고나 할까.  물론 비나 눈이 내리면 공원 운동기구를 이용하기 힘들다. 며칠 씩 기구 사용을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그냥 걸어주면 된다. 형편이 이러니 운동 효과를 제대로 얻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설령 플라시보 효과인들 어떠랴. 내겐 벚나무 옆에서 자전거 바퀴를 돌리는 아침이 바로 존재의 럭셔리한 순간인걸.   

  

 집으로 가는 길에 미니 메타 세콰이어길을 느릿느릿 통과한다. 나무 데크를 깔아 여유로운 산책이 가능하다. 부추를 닮은 맥문동 초록 잎들 사이로 연보라빛 꽃들이 장관이다. 올해 도깨비 장마를 견뎌내고 이리도 청초한 꽃을 피워 올리다니. 기특하다. 새삼 꽃들의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올해도 매화꽃 향기에 취하던 봄날이 있었다. 장미에 이어 피어나고 시들던 찔레꽃과 능소화를 목격하며 전율한 여름까지. 그 순간들을 누리는 모든 오늘들이 좋다. 젊은 날엔 꿈도 못 꾸던 시절이자 존재감 제로의 심심한 하루하루. 야심이 없는 자가 누리는 저렴한 행복이랄까. 이것이 바로 옛 어른들이 말하던 ‘근근이 살아가는 즐거움’인가? 이래저래 실실 혼자 웃는 일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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