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급할미 Jul 24. 2024

일요일의 동네 예술가들


 장마 속 무더운 일요일 오후, 지하철 학여울역 부근 영동6교 아래 예술가 한 분이 떴다. 반바지에 곱슬 퍼머 스타일로 오카리나를 든 40대 후반 남성, 중국 노래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月亮代表我的心)’에 이어 ‘떠나가는 배’를 연주한다. 7080 세대에게 어느덧 전설이 된 정태춘의 곡. 나처럼 가만히 서서 그의 연주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연습이라기엔 거의 한 음도 엇나가지 않는 솜씨, 무심한 듯 악보를 뒤적이며 몇 곡을 연달아 연주하는 그의 옆으로 킥보드를 타고 놀던 딸과 아들이 달려온다. 이제 좀 놀아달라는 듯한 눈빛. 그는 싱긋 웃으며 악보를 주섬주섬 챙기고 함께 자리를 뜬다.      


 일요일의 뮤지션들이 우리 동네에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우쿨렐레나 아코디언을 맨 중년 여성이 공원 소나무 아래 앉아 트롯 가요 연습 삼매경에 빠진 모습, 멋지다. 젊은 할배 서너 명이 다리 아래 공간을 점유하고 벌이는 세상의 모든 노래 대잔치 콘서트도 좋은 공짜 공연. 엄청 신나 보이는 연주자들의 표정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주5일은 사회 인간으로 성실한 의무 복무를 하는 이들이리라. 주말 이틀은 각자 제 멋대로 살 권리를 누려 마땅하다. 일상을 벗어난 어떤 몰입, 악기든 춤이든, 운동이든, 그것은 치유와 자기 회복의 시간이기도 하다.     


 1929년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외쳤다. “한 개인이 최소한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려면 연간 500 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그 시대 500 파운드의 현재 액면가는 모르겠으나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외침은 이 시대에도 절박하게 유효하다. 그리고 그 방은 굳이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진 않을 터. 자기 몰입이 가능한 어떤 심리적, 정서적 여유 공간의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악기나 글쓰기, 그림이나 춤, 목공이나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숨은 열정을 화산처럼 분출해 보는 것. 이건 어쩌면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받은 상처를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자기 처방이 아닐까.      


 우리 동네 모든 일요 예술가들의 명랑한 ‘부캐’활동을 응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