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저작권 침해, 저작권, 사후 청구, 벌금, 손해배상 등 이런 창작물에 관한 시비 송사는 나와는 무관한 남의 이야기였다. 나는 남의 것을 탐하지도, 훔치지도 않으니 시비에 휘말릴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서류 결재를 하기 위해 한 공문을 읽었다. 내용은 “귀사는 본 회사의 폰트(글씨체)를 연구지 제작에 무단사용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사용료를 지불해 주시기 바랍니다. 응하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요구한 금액은 많지 않았지만, 도용했다고 지적받은 글꼴은 언뜻 보기엔 평범한 한글체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협박을 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잠시 스쳤다.
담당자는 “유료인지 몰랐습니다. 요즘 이런 식으로 출간물이나 연구지를 확인해 무단 사용 시 사용료를 청구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비용은 지불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조사해 보니, 인터넷상에 유료 폰트를 올려두고, 누군가 무단 사용한 것을 찾아내 청구하는 방식으로 수익화하고 있었다. 비용은 지불했지만, 뭔가 뒷맛이 씁쓸했다.
지인에게도 폰트와 관련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서면에서 컴퓨터 관련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학원 내에 있는 모든 컴퓨터에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서 설치해 두었다. 물론 폰트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단속이 나왔다. 특별히 잘못한 건 없었지만, 긴장되었다. 노트북으로 작업 중이던 그는 일손을 멈추고 단속반을 맞았다. 그들은 USB를 가지고 컴퓨터마다 돌아가며 꽂아 확인했다.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휴”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그들은 돌아서 나가려다 말고 그의 개인 노트북을 확인했다. 그 노트북에는 작업 중이던 유료 폰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쓰는 것이고, 삭제하려던 중이었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벌금은 정가의 30배에 해당하는 3,000만 원이었다. 그 회사와 합의를 통해 2백만 원에 구매하고 마무리되었다.
‘방심은 금물이다’ ‘설마가 2백 원짜리였다.’
얼마 전, 나는 평생학습관에서 ‘나도 작가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자책을 발간했다. 나는 컴퓨터에 깔려 있는 아래 한글로 작업했다. 원고를 정리할 때, 선생님은 “아래한글 기본 글꼴은 사용하지 마세요. ‘눈누’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저작권 문제가 없는 무료 글씨체를 다운로드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은 폰트 저작권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나도, 단속에 걸린 지인도, 전자책 발간을 도와주신 선생님도 모두 창작자가 아닌 사용자이며 단속의 대상들이기도 하다. 창작자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보상이고, 저작권법은 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런데 왜 구매한 자는 뒷맛이 개운치 않았을까?
억울하면 출세하란다. 나도 이제 전자책을 낸 작가가 되었으니 창작자의 입장이 된 격이다. 출간의 기쁨과 함께 걱정거리도 생겼다. ‘내 책을 무단 도용하면 어떡하지?’, ‘삽입된 사진이나 그림을 출처 표기도 없이 자기 것인 양 올리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나, 돈이 문제가 아닌데...’
사용자로서 씁쓸했던 기억이 창작자로 입장이 바꾸어지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 그렇지, 그래야지, 끄덕끄덕.
※ 사진은 2025년 4월에 스페이스 나무 카페(양산 소재)에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