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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Jun 08. 2020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어른

씽씽카와 핸드카, 맥주와 바나나우유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엄마가 나를 불렀다. "핸드카 좀 갖고 내려와라." 짐 실을 게 많아서란다. 덤으로 나는 짐꾼. 베란다에 있는 핸드카를 갖고 나와 털레털레 집 앞으로 내려왔다. 


엄마가 짐을 내리는 동안, 귀를 스쳐 간 소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였다. 참 오랜만이었다. 코로나19로 모든 사람이 집 안에만 머무르게 되자 아이들의 소리도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웃음소리는 리터럴리 "꺄르르." 듣기 좋았다. 아이들은 씽씽카를 타고 주차장 옆 농구장을 돌고 있었다. 농구공을 튕기며 골대로 전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9~10살 나잇대 아이들도 제 나름의 고민거리가 있을 것이다. 눈높이 숙제 안 한거? 선생님께 인사하기 부끄러워서 모른 척 지나친 것에 대한 죄책감? 나에겐 하찮고 그저 귀여운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엄청난 문제겠지라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오후 7시, 부모님이 "저녁 먹으러 들어와라"라고 말하기 직전인 시간. 친구와 함께하는 씽씽카, 상쾌한 바람, 뉘엿뉘엿한 노을, 자유로운 웃음소리는 나의 20여 년 전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유난히 아이들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씽씽카를 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킥보드라고 해야 하나. 아빠를 졸라 킥보드를 샀던 기억도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황금만능주의에 찌들었던 아이라, 황금색을 좋아했고, 아빠는 황금색 킥보드를 사 왔다. 


갑자기 킥보드가 타고 싶어졌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것은.... 거뭇한 초록빛의 핸드카. 먹고살기 위해 부모님이 애용하는 그 핸드카만 있을 뿐이었다. 


순간 핸드카를 타고 싶어졌다. 핸드카도 씽씽카랑 비슷하지 않나? 차이점은 브레이크가 없어서 죽을 수 있다는 거 정도? 까짓거 타면 안 되나? 


라고 생각했지만 이성이 붙잡았다. '나는 어른이야. 이러지 말자. 그래도 저 아이들과 나는 먹은 밥만 2만 그릇 정도 차이는 될 텐데 키워주신 부모님께 밥값은 하자.' 


결국 조용히 핸드카를 끌고 집으로 올라왔다. 괜히 아쉬워 핸드카만 빙빙 돌려봤다. 


탈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오후 8시가 되자 어둑해졌지만 어떻게든 타겠지. 나는 어른이니까. 자전거를 타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하고 나가는 찰나, 엄마가 말했다. "가는 김에 심부름 좀 해라." 나는 어른이지만 엄마 심부름은 해야 한다. 엄마 집에서 사니까. 


공원으로 나가 자전거를 타고 싶었지만 엄마 심부름(무려 2개였다)을 하고 나자 9시를 훌쩍 넘겼다. 내일 출근 전에 봐야 할 자료가 있어서 들어가야 했다. 젠장. 이 와중에 심부름값은 받고 싶어 마트에 들렀다. 조용히 맥주 코너에 섰다. 그리고 유제품 코너에도 가봤다. 둘 사이를 서성였다. 냉장식품이라 그다지 거리가 멀지는 않았다. 맥주를 살까, 아니면 바나나 우유를 살까? 아, 모르겠다. 나는 어른이니까 둘 다 살래. 재난지원금 카드로. ㅎㅎ.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어른이, 어른인 척 하면서 어린 행동을 하는 스스로가 웃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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